공민왕의 총애가 극도로 높아지자 그의 위세가 하늘을 찔렀다. 그가 행차를 할 때는 100여 명의 수행원들이 따르고 생불을 보려는 부녀자들로 길이 메워졌다. 사대부의 부인들은 신돈의 명성이 높아지자 그의 설법을 듣고 복을 빌기 위해 찾아왔다. 하루는 얼굴이 해사한 젊은 부인네가 신돈을 찾아왔다.
“네가 무엇을 소원하느냐?”
신돈은 눈을 지그시 감고 부인네에게 물었다.
“높으신 거사님….”
부인네는 감히 신돈의 얼굴을 쳐다보지도 못했다.
“가까이 오라.”
부인네가 황공하여 절을 하면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신돈의 집 깊숙한 내당이었다. 그 내당은 기현의 처와 신돈의 두 여종밖에 출입할 수 없었다. 신돈은 휘장이 늘어진 방석 위에 정좌를 하고 앉아 있고 방안에는 은은하게 촛불이 켜져 있었다. 어느 방에서인지 은은하게 목탁을 두드리고 독경을 외는 소리가 들렸다. 어딘지 모르게 신비스러운 분위기에 부인네는 압도되고 있는 것이다.
부인네가 두려움에 떨면서 신돈의 앞으로 바짝 다가가서 앉았다. 생불이라고 불리는 명성 높은 신돈이 만나 준 것만 해도 감지덕지한 것이다.
“나는 거사가 아니라 부처다. 나에게 너의 소원을 빌라.”
부인네가 가까이 다가와 앉자 지분냄새가 물씬 풍겼다.
“부처님, 아들 낳기가 소원입니다.”
“내 너의 소원을 들어줄 것이다. 이제 부처가 너에게 현신할 것이니 광명을 보리라. 너는 눈을 감은 채 아미타불만 외우라. 부정이 타면 안 되니 현신이 끝날 때까지 아미타불을 외워야 할 것이다.”
신돈은 부인네를 눕히고 능숙하게 치마저고리를 벗기기 시작했다. 부인네는 행여나 부정을 탈까봐 몸을 달달 떨면서 아미타불을 외웠다. 그러나 육중한 사내의 몸이 실리자 아미타불만 외우고 있을 수가 없었다. 신돈이 거칠게 밀어붙이자 부인네의 입에서 가쁜 숨결이 토해지고 신음소리가 잦아졌다.
신돈은 자신을 찾아오는 부인네들을 방으로 끌어들여 부처가 현신한다면서 이처럼 서슴지 않고 간통했다.
신돈은 파렴치한 음행을 저지르고 국정을 농단했으나 개혁정치도 실시했다. 공민왕에게 전민변정도감(田民辨整都監)을 설치할 것을 건의하고 스스로 판사가 되어 시행했다. 전민도감은 일종의 토지개혁이다. 권력자들과 부호들이 강탈한 농민들의 토지를 다시 농민에게 되돌려주는 획기적인 조치였다. 신돈은 이로 인해 역사가들로부터 개혁주의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신돈은 도감을 설치한 뒤에 농민들의 토지들을 강탈한 권력자들과 토호들에게 토지를 반환할 것을 포고했다.
“국내 사람들의 세업인 전민(田民:농민)들의 토지는 대부분 권력자들과 토호들이 강탈하고 점령했다. 이로 인하야 백성들에게는 해독을 끼치고 나라를 궁핍하게 하고 있는데 하늘이 분노하여 물난리, 가뭄, 역질이 잇따르고 있다. 이제 도감을 설치하고 그 시정사업을 담당케 하였으니 서울(개성)에서는 15일 이내로, 지방에서는 40일 이내로 자기 잘못을 알고 시정하는 자는 그 죄를 묻지 않는다. 그러나 기한이 경과한 후에 발각된 자는 엄중하게 처벌할 것이다.”
신돈의 포고령이 내리자 힘없는 전민들의 토지를 강탈하고 있던 권문세가들이 땅을 모두 농민들에게 반환했다. 권력자와 부호들에게 땅을 빼앗겼던 농민들은 일제히 환호했다. 신돈은 공도대의(公道大義)를 표방하여 노예들이 스스로 양민이라고 주장하면 모두 양민으로 만들어 주었다. 이것은 노예 해방이나 다를 바 없었다. 수많은 노예들이 신돈을 찾아와 해방시켜 줄 것을 청했고 신돈은 그들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었다. 권세를 누리던 관리들이나 부호들은 신돈에게 이를 갈았다. 그러나 신돈의 이러한 정책은 고려를 개혁하고자 하는 신진사대부들의 지지를 받았다.
“성인이 나왔다!”
노예들도 신돈을 부처처럼 떠받들었다. 그러나 진정한 개혁주의자는 못되었다. 여자들이 소송을 걸면 얼굴이 예쁜 여자들을 동정하는 체하면서 간음을 하고 재판에서 이기게 해주었다. 공민왕은 의심이 많은 인물이었다. 신돈은 6년 가깝게 국정을 농단했으나 공민왕이 의심하는 눈치를 보이자 그를 살해하기로 결심했다. 신돈은 기현, 최사원, 이춘부, 김란 등 심복들에게 갑사들을 모으라는 영을 내렸다. 이내 무예에 출중한 갑사들이 속속 신돈의 집으로 몰려왔다. 그는 공민왕이 헌릉과 경릉을 배알할 때 갑사들에게 지시하여 암살하라는 영을 내렸다.
“알겠느냐? 어떤 일이 있어도 실패해서는 안 된다.”
신돈이 눈을 부릅뜨고 갑사들을 다그쳤다.
“예!”
갑사들이 일제히 절을 하고 물러갔다. 그러나 공민왕이 헌릉과 경릉을 배알하고 돌아왔는데도 갑사들은 암살을 하지 못했다.
신돈이 갑사들을 노려보면서 추궁했다.
“경비가 삼엄하여 접근할 수가 없었습니다.”
갑사들이 두려움에 떨면서 대답했다.
“너희 같은 겁쟁이들은 무용지물이다.”
신돈은 갑사들에게 화를 벌컥 냈다. 그러나 암살 계획은 계속 추진되었다. 신돈에게 벼슬을 얻으려고 문객 노릇을 하는 이인이라는 자가 있었다. 그는 신돈의 음모를 낱낱이 기록했다가 두 번째 거사가 임박하자 강직한 대신 김속명의 집에 던져 넣었다. 김속명이 경악하여 공민왕에게 보고했다.
“국사가 이럴 리가 있는가?”
공민왕은 이인이 날조한 것이라고 의심했다.
“그들을 잡아들여 신문하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김속명의 제안에 공민왕은 신돈의 심복들을 잡아다가 국문했다. 고려 조정은 신돈의 역모 사실이 밝혀지자 발칵 뒤집혔다. 신돈은 신우의 생일이어서 광명사에서 중들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신돈의 심복들은 잔인한 국문이 계속되자 마침내 모든 사실을 자백했다. 공민왕은 기현, 최사원 등 5명을 처형하고 3명을 귀양 보냈다. 신돈은 수원으로 귀양을 보냈다가 다시 서울로 압송했다. 이부(理部) 헌사(憲司)가 역적들의 삼족을 멸해야 한다고 공민왕에게 아뢰었다.
“문하성이나 중방에서는 어찌 아무런 의견이 없느냐?”
공민왕이 대신들을 다그쳤다.
“신돈은 천한 중놈인데 과도한 은총을 받아 권모술수로 국권을 농단하고 은밀히 편당을 만들어 반역을 도모했습니다. 다행히 하늘의 도움이 있어서 역적들을 모조리 숙청했습니다. 그러나 역적의 괴수 신돈은 서울 밖으로 축출했을 뿐 아직까지 목숨이 붙어 있으니 응당 극형에 처해야 하고 그 자식과 동생들도 모조리 죽여야 합니다.”
중방 도평의사가 아뢰었다.
“대역의 죄는 천하 만세에 용납 못할 죄인데 신돈은 살아 있으니 옳지 않습니다. 그를 극형에 처하고 가산을 몰수한 뒤에 연못을 파소서.”
문하성에서도 아뢰었다.
“법은 천하 만민의 공법으로 내가 어찌 사사로운 정으로 용서할 수 있겠느냐? 마땅히 상주한 대로 극형에 처하라.”
공민왕이 신돈을 극형에 처하라는 영을 내리고 신돈으로 인해 귀양을 갔던 최영 등을 불러들였다. 신돈이 서울로 압송될 때 임금이 소환하는 것이라고 거짓으로 말했다.
“오늘 나를 임금이 다시 부른 것은 아기가 나를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신돈이 말하는 아기는 신우를 말하는 것이었다.
“네가 일찍이 ‘부녀자들을 가까이 하는 것은 그들을 매개로 하여 양기하는 것이지 감히 사통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더니 이제 듣건대 자식까지 두었다니 이런 일이 맹서문에 있느냐? 성중에 호화로운 집을 일곱 채나 지었다니 이것도 맹서문에 있느냐?”
공민왕은 찰방사 임박을 시켜 신돈의 맹서문을 보여주면서 꾸짖었다.
“원컨대 당신은 아기를 보아서 나를 살려주시오.”
신돈은 사형을 집행하는 순간이 다가오자 찰방사 임박에게 애원했다. 그러나 그의 애원은 부질없는 것이었다. 신돈은 효수를 당한 뒤에 사지를 베어 각을 떠서 각 도로 조리돌림을 한 뒤에 개성 동문에 효수되었다.
“이번에 신돈을 처단한 것은 국가의 큰 경사다. 그런데 또 큰 경사가 있으니 그대들은 알아두라.”
찰방사 임박이 사관들에게 말했다.
“큰 경사라니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사관들이 어리둥절하여 물었다.
“상감께서 궁인을 가까이해 아드님을 보았는데 금년에 나이가 7세가 되었다. 그 아기를 신돈이 남몰래 양육하면서 다른 사람에게는 알리지 않았으니 이 죄만 해도 죽을 죄다. 사관들은 마땅히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우왕은 과연 누구의 아기인가. 이는 죽은 신돈만이 알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