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더 큰 이익” vs “경제관점 접근해야” 30년 묶은 구상, 청와대 청원 게시판 등장까지
일본 규슈(九州) 북단 히가시마쓰우라(東松浦) 반도 가라쓰(唐津)의 한일 해저터널 탐사용 갱도 공사 현장이 공사를 주관하고 있는 국제하이웨이 건설사업단에 의해 최근 공개됐다. 연합뉴스
사단법인 한일터널연구회(공동대표 서의택·이용흠)는 연구회 창립 10주년을 맞아 12일 오후 4시 부산에서 ‘한일해저터널 건설에 관한 국제심포지엄’을 열었다. 연구회는 2008년 창립된 단체로 서의택 부산대 석좌교수, 이용흠 일신설계 회장 등 수도권과 부·울·경지역에 320명의 회원들이 참여한 연구기관이다.
‘한일터널사업의 경제적 파급효과 고찰’이라는 주제로 발제에 나선 박진희 한국해양대 교수는 “동북아 지역은 향후 새로운 세계 경제의 중심지가 될 것이다. 다자간 지역협력의 원활함을 위해서라도 한일해저터널 건설에 따른 동북아 통합 운송망이 구축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이날 한일해저터널 사업의 경제적 파급효과와 관련된 분석 결과도 발표했다. 박 교수 분석에 따르면 한일해저터널 건설 시 한국의 생산유발액은 총 55조 1716억 원, 부가가치유발액은 총 17조 442억 원으로 추정됐다. 23만 8230명의 고용 유발 효과도 언급했다. 한일해저터널 건설에 따른 비용 추정액은 약 110조원, 건설 소요 기간은 15~20년이다.
일본 측도 화답했다. 일본의 니시가와 요시미츠 동양대 교수 역시 “한일해저터널은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상징적 프로젝트’다. 한일터널은 한일 양국민의 ‘마음의 터널’도 구축할 수 있다”며 “한반도의 남북화해와 평화통일을 위한 프로젝트이고, 동북아지역 협력기구의 창설에 기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일본은 1983년 일한터널연구회를 조직한 이후 수년간 한일터널 논의를 이어오고 있다.
이에 대해 류정우 한일터널연구회 사무총장은 “한일해저터널은 빨리 해야 한다. 경제적 효용성이 있기 때문에 건설을 서둘러야 한다”며 “최근 한일 관계에서 서로 물적 교류와 인적교류가 엄청나게 활발하다. 부산을 중심으로 터널을 뚫는다면 한일이 상생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제는 한일해저터널이 공교롭게도 ‘남북화해 분위기’와 맞물리면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는 점이다. 2018년 9월 19일 청원인 A 씨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부산과 일본을 잇는 해저 터널의 금지를 청원한다”며 “남한과 북한의 협상으로 시베리아 횡단 철도가 연결된다면, 일본은 숟가락을 얹게 될 것이다. 시베리아-부산이 아닌 시베리아-일본으로 바꾸려는 시도다”라고 밝혔다. 청원의 추천 수는 10월 10일 기준으로 9000여 명에 달했다. 일본이 한일터널을 이용해 유라시아 철도연결의 ‘이득’을 챙기려한다는 게 청원 추천의 골격이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판문점 선언의 후속조치로 국제철도협력기구(OSJD)에 가입하면서 유라시아 철도 연결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수시로 ‘동아시아 철도 공동체’를 강조하고 있다. 남북은 9월 평양선언에서 “남과 북은 금년 내 동, 서해선 철도 및 도로 연결을 위한 착공식을 갖기로 하였다”고 합의했다.
하지만 청와대 청원 게시판엔 ‘한일해저터널’ 반대에 관한 글들이 가득하다. 다른 청원인 B 씨는 “일본은 옛날부터 대륙 진출을 꿈꾸며 대한민국 영토를 침략하고 짓밟고 있다”며 “그들이 원하는 한일해저터널이 생긴다면 대한민국의 목포와 부산은 대륙의 종착점이 아니라 일본의 대륙 진출을 위한 발판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일해저터널이 1592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주창한 ‘대동아공영권’의 현대판이 될 것이란 비판이다.
한일해저터널 구상은 비단 어제 오늘 만의 일은 아니다. 한국교통연구원이 2009년 발간한 ‘월간 교통’ 133호에 따르면, 한일터널 논의는 일한터널연구회의 ‘일한터널 기본구상’ 연구결과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일한터널 연구회가 제안한 3개 노선은 각각 큐슈지역의 가라쓰시를 기점으로 대마도를 경유해서 거제도와 부산이 종점이다.
하지만 가라쓰시는 1592년 일본이 조선을 침략할 때 전초기지 역할을 했던 곳이다.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가라쓰시에 있는 천수각에 기거했다. 날씨가 좋을 때는 대마도와 일본 사이에 있는 이키섬은 물론 대마도까지도 볼 수 있는 장소가 천수각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당시 천수각에서 조선을 바라보면서 명의 베이징을 중심으로 거대 제국을 건설하겠다는 야심에 차있었던 인물이었다.
한국교통연구원 측에서는 2009년 반일감정을 고려해 다른 노선을 제안했다. 가라쓰시가 왜군의 조선 침략 근거지였던 점을 감안해 가라쓰가 아닌 후쿠오카와 바로 연결하는 노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당시 최치국 부산발전연구원 ‘한일해저터널의 기술적 쟁점과 기본구상’에서 “한일터널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은 역사적 침략에 관련된 사죄와 과거사 청산 미흡에 대한 반감이 일본의 동북아 평화 명분보다 강하게 나타났기 때문이다”고 강조했다.
이명박 정권시절엔 한일해저터널 구상이 적극적으로 추진됐다. 국토해양부는 2010년 ‘ktx 고속철도망 구축 전략’을 발표하면서 “거대지역권 경쟁력이 국가경쟁력의 핵심으로 부상했다. 국제철도 시대에 대비해 한중해저터널, 한일해저터널의 필요성을 연구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천문학적인 건설 비용인 92조원(부산발전연구원 추산)을 두고 논란이 일었다. 일본의 대륙진출 길만 열어주고 부산이 경유지로 전락할 수 있다는 여론도 비등했다. 결국 국토해양부는 2011년 한일해저터널에 대해 “경제성이 없다“고 발표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10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한일터널의 경제성이 좀 낮았다. 100km를 뚫어야 하는데 기술적인 문제도 컸다. 당시 일본에 대한 국민 감정도 좋지 않았다. 한일관계의 민감성 때문에 구체적인 결과는 밝힐 수 없다. 앞으로 추가로 검토할 일도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중앙정부 차원에서 한일터널을 추진할 의사가 없다는 뜻이다.
앞서의 류정우 사무총장은 국토부의 결정을 비판했다. 류 사무총장은 “오래 전 일이지만 국민정서에 찬물을 끼얹는 결정이었다. 너무 단순 논리로 경제성에 대해 심사했다”며 “최근 욱일기 논란이 있었지만 당시보다는 반일 감정이 많이 누그러졌다. 한일 간의 물적 인적교류도 매우 활발하다. 반일 감정으로 덮을 게 아니라, 한일해저터널은 우리가 일본을 이길 수 있다는 경제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일해저터널은 선거 때마다 단골 이슈로 등장하기도 했다. 서병수 전 부산시장은 2014년 선거 당시 한일해저터널의 필요성을 제안했다. 2016년 부산시는 서 전 시장의 지시로 한일해저터널 건설에 관한 용역 발주 계획을 세웠다. 이후 부산시는 2017년 1월 서 부산권 발전 전략의 하나인 한일해저터널 건설을 위한 기초연구용역 수행 계획을 밝혔다.
오거돈 부산시장도 후보 시절 한일해저터널의 도입 필요성을 강조했다. 부산시청 관계자는 “시장이 바뀌었지만 용역은 계속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일해저터널을 둘러싼 시각이 부산 등 지역에 국한되는 것이 아닌 국가차원에서 검토·평가해야만 논란의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 것이란 지적이 제기된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