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업계 “사납금이 더 문제” VS 시민들 “승차거부 등 서비스 개선부터” 싸늘한 반응
서울역 택시 승차장. 이종현 기자
서울시는 이번 요금 인상으로 택시기사의 처우를 개선하고 서비스 개선을 동시에 이뤄내곘다는 전략이지만 택시 기사와 시민의 반응은 싸늘합니다. 도대체 왜 이럴까요? ‘일요신문i’는 택시기사, 시민을 직접 만나 솔직한 생각을 물어봤습니다.
서울시는 10월 2일 오후 ‘택시 노사민전정 협의체’를 열고 기본요금 인상안을 확정하고 서울시에 보고했습니다. 생활임금(시간당 1만 148원)에 맞춰 기본요금을 4000원으로 인상해 월 생활비를 285만 원으로 맞추겠다는 정책입니다. 2013년 10월 기본요금을 2400원에서 3000원으로 600원 올린 뒤 약 5년 만의 인상입니다.
하지만 법인 택시업계의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10월 10일 오후 2시 서울 종로에서 기자가 만난 택시기사 A 씨는 “몇 년 전 추석을 잊지 못한다. 추석 20일 전에 회사가 사납금을 하루에 2000원 씩 일방적으로 올렸다. 일반 직장인들은 보너스를 받는데 사납금 인상 공고가 떴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하늘을 향해 ‘이건 인간도 아니다’라고 눈물을 펑펑 쏟았다”며 “서울시가 택시 요금을 인상해도 사납금은 함께 오를 것이고 우리의 현실은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A 씨는 서울시의 요금 인상 효과를 믿지 않았습니다. 바로 ‘사납금’ 제도 때문입니다. 사납금은 택시 차량을 대여해주는 회사에 하루 동안 벌어들인 수입의 일정액을 지불하는 제도입니다. 택시 기사가 하루 11시간 차를 몰아도, 택시 회사에 최대 17만 원의 사납금을 납부해야 합니다. 손에 쥐는 임금은 많지 않다는 뜻입니다. 법인 택시의 숙명인 셈입니다.
택시 내부 모습. 이종현 기자
서울시 법인택시 기사의 한 달 평균 수입은 217만 원이라고 합니다. 사납금 제도는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상 불법이지만 정부와 지자체의 단속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삼형 정책위원장(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은 “언제나 기본요금과 사납금이 함께 올라갔다. 2013년 때는 사납금이 하루 2만 5000원이나 올랐다”며 “택시요금을 올릴 때마다 사납금도 함께 올라갔다. 택시 회사들이 항상 요금인상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라고 비판했습니다.
서울시는 이번 인상안을 발표하면서 6개월간 사납금을 동결하고 이후 요금 인상분의 80%를 기사 월급에 반영하겠다는 예방책을 내세웠습니다.
서울시 택시정책팀 관계자는 “이번에 서울시가 택시업계 254개소 사장과 협약을 맺었다. 사납금 인상을 억제하기 위해 꽤 많은 노력을 했다”며 “택시회사가 약속을 어기면 요금인상분의 일정부분에 대한 지급을 유보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에 대해 김성재 민주택시노동조합 정책국장은 “6개월 사납금 동결은 일시적인 처방”이라며 “전액 관리를 통해서 임금 수준을 안정화시켜야 사납금 걱정을 덜고 손님을 더욱 친절하게 대할 수 있다”고 반박했습니다. 전액관리제는 택시기사가 하루 동안의 운송수입 전액을 회사에 납입하고 일한 만큼 월급을 받는 방식을 뜻합니다.
성북동 인근 기사식당 전경. 이종현 기자
이삼형 정책위원장도 “6개월 후에 사납금은 반드시 오를 것이다. 요금 인상은 택시 사업주의 배불리기 작전이다. 사납금 제도를 없애지 않는 한 택시기사들은 앞으로도 땅 짚고 헤엄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시민들의 의견은 엇갈리고 있습니다. 평소 택시를 자주 이용하는 제 아무개 씨(32)는 “1000원은 적은 돈이 아닌데 너무 갑작스럽다. 택시 요금 인상이 때에 맞춰 정기적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예측할 수가 없다”라면서도 “물가 상승률에 비해 인상폭이 적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매번 이렇게 급작스럽게 인상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강남에서 심야시간대 택시를 즐겨 이용하는 조 아무개 씨(33)는 “어느 정도 찬성하는 편이다. 다만 택시 기사의 월급이 늘어야지, 회사 돈으로 들어가는 것은 반대다”며 “하지만 심야에 승차거부를 자주 당했다. 월급 인상으로 서비스가 개선된다는 주장은 믿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택시 요금 인상’이 ‘서비스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란 의견입니다.
택시기사들의 의견은 다릅니다. 앞서의 택시기사 A 씨는 “사납금 제도가 사라지고 먹고 살만 하면 서비스는 개선된다”며 “사납금은 택시요금과 같이 올랐다. 월급을 250만 원 이상 받으면 마음이 여유롭고 손님들한테 친절하게 대하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하지만 사납금 때문에 우리같은 주황색 택시의 한 달 수입은 보통 200만 원이다. 200만 원을 맞추기 위해 11시간 동안 눈에 불을 켜고 다닌다”며 “심야 시간대 승차거부는 분명 잘못된 일이지만 액수를 맞추려고 하다보면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서울시는 요금인상과 함께 승차거부가 단 한 번만 적발돼도 운행정지 이상 처분을 하는 ‘원 스트라이크 아웃’ 도입을 추진 중입니다. 국토교통부가 도입한 ‘삼진 아웃제’보다 강력한 처벌 방안입니다.
서울시 택시정책팀 관계자는 “승차거부는 택시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것이다. 택시가 손님을 태우지 않으려면 거리에 나올 필요가 없다”며 “원 스트라이크 아웃은 택시기사가 승차거부를 한 번이라도 하면 10일 동안 자격을 정지하는 제도”라고 밝혔습니다.
서울 서대문구 연남동 기사식당 거리. 박정훈 기자
하지만 택시기사들 사이에서는 ‘원 스트라이크 아웃’ 제도가 과도한 처벌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다른 택시기사 B 씨는 “고의적으로 승차거부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밥을 먹으려다가 승차거부로 오인 받는 경우도 많다”며 “오후 1시쯤에 동료들과 밥을 먹기로 했는데 손님이 차를 세웠다. 반대편으로 돌아가야 해서 거절했는데 손님 표정이 굳어서 미안했다. 이것도 승차거부인가 싶다. 원 스트라이크 아웃 제도는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결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서울시 택시정책팀 관계자는 “밥을 먹는 장소로 이동할 때는 가운데 차선으로 가면서 태울 의사가 없다고 해야 한다”며 “본인이 문을 열고 운행할 의사가 있음을 상대에게 알려야 한다. 원 스트라이크 아웃제가 과도한 점은 있지만 승차거부 사례가 너무 심하고 많다. 행정지도로는 한계를 느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에 대해 앞서의 택시 기사 A 씨는 “저는 밥을 먹으러 가도 일단 손님이 태워달라고 그러면 태운다”면서도 “하지만 끼니를 걸러서 못 먹은 경우도 많다. 배는 고픈데 서울시내 기사식당은 몇 군데 없다. ‘빈차’ 등을 끄고 1차선에 붙어가는 방법도 있지만 그래도 손님이 탄다”고 반박했습니다.
택시는 서민들의 대표적인 교통수단입니다. 서울시의 요금 인상 추진이 법인 택시 기사들과 시민들을 위한 ‘근본적인 처방’이 맞을까요? 모두가 환영하지 않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