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대 치매노인과 방문계약 ‘사기’ 논란… 전기요금 절감효과도 과장 ‘주의 요망’ / 한전, 심야전기보일러 권장하더니 전기료 올려놓고 고가의 히트펌프보일러 사업 지원
한전 협력사인 경기도 수원 소재 S엔지니어링(주)이 치매 진단을 받은 90대 A씨와 체결한 시공계약서. A씨 가족들은 치매판정을 받은 노인과의 계약은 법적으로 무효라면서 계약 철회 및 원상복구를 주장하고 있다.
[양평=일요신문] 김현술 기자 = 전형적인 농촌지역인 양평군 양동면에서 최근 한전 협력업체와 심야히트펌프보일러 계약해지 관련 분쟁 사례가 발생해 논란이 일고 있다.
오래전 정부는 심야 전기료가 싸다면서 심야전기보일러를 권장했고 많은 농민들이 이것을 설치했지만 정부가 발전원가가 높아졌다면서 슬그머니 심야 전기료를 인상시키는 바람에 비싼 돈을 들여 설치한 농민들만 피해를 보게 됐다. 그러자 한전은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2014년부터 고효율 공기열 히트펌프보일러 설치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한전은 기존 심야전기보일러 사용고객이 히트펌프보일러로 교체할 경우 용량에 따라 800만~1000만원인 보일러 가격 중 200만~250만원을 고객에게 지원하고 있다. 8월말 현재 3만여대가 보급됐고 한전은 지원금으로 771억원을 지원했다.
문제는 심야 전기보일러 사용 지역이 대부분 농촌으로 집에 혼자 있는 고령의 노인이 업체와 계약했다가 피해를 보는 사례가 있어 주의가 요망되고 있다.
양동면에 혼자 거주하는 K씨(91, 남)는 한전 협력사인 경기도 수원 소재 S엔지니어링(주) 직원으로 추정되는 텔레마케터로부터 수차례 전화가 걸려와 현재보다 전기요금이 적게 나오는 보일러로 교체할 것을 권유받고 고가의 히트펌프보일러를 설치했다.
직원의 전화권유에 K씨가 설치의사를 보이자 계약 담당자는 지난 5일 K씨 집을 방문하여 상담 후 계약서에 서명할 것을 요구했다. 다음 날인 6일에는 설치팀 2명이 방문하여 설치를 완료했다.
하지만 설치 다음날인 7일 K씨의 집을 방문한 가족들은 이 같은 사실을 알고, 고령의 치매노인을 이용한 명백한 사기판매 행위라며 해약 및 원상복구를 요구하고 있다.
가족들은 “자식들이 있음을 뻔히 알면서도 확인도 하지 않은 채 고령의 치매노인에게 접근하여 급하게 계약서를 작성하고 설치한 것은 명백한 사기판매 행위”라면서, “특히, 건축물대장조차 없는 10평 남짓의 오래된 시골농가주택에 집값보다도 비싼 고가의 보일러를 설치하는 게 말이 되느냐”며 한전의 히트펌프보일러 사업을 비난했다.
K씨 가족들은 설치 다음날인 7일 영업담당자에게 계약해지 및 원상복구를 요구하였으나 ‘법대로 하라’고 하자 지난 10일 ‘계약철회’, 11일 ‘심야전기보일러 원상복구 요구’ 제목의 내용증명을 S사에 보내기에 이르렀다.
가족들은 내용증명을 통해 K씨가 계약 전 이미 동수원병원에서 치매진단을 받은 고령으로 판단이 미숙한 점과 소비자보호법에 의해 설치취소와 반품을 할 수가 있다는 점, 한전 지원금이 250만원인데 150만원만 지원한 점, 또 날짜기입이 안되어 있고 금액의 오류가 있는 등 정확하지 않는 계약서는 무효라는 점을 강조하고 계약 철회와 함께 업체에서 회수해 간 기존 심야전기보일러 히타봉 등 부속품 등을 반환할 것을 요구했다. 가족들은 고령인 노인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와 피해를 입혔다는 점에서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라 경찰서에 의뢰를 할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치매 진단을 받은 90대 A씨의 집에 설치된 히트펌프보일러 실외기. 한전은 심야전기보일러보다 전기료가 훨씬 싸다며 대당 1,000여만원 하는 고가의 히트펌프보일러 설치를 권장하며 대당 200~250만원을 지원하고 있다.
치매노인 가족들 “1,200만원짜리 고가 보일러 대신 차라리 100만원짜리 기름보일러를..”
민주당 박정 의원 “설치 후 연락두절 등 제멋대로 영업 벌여 피해 커” 주장
박 의원 “히트펌프보일러 전기료 절감효과 50~65% 허위 과장광고, 실제론 30%대”
병원에서 치매 진단을 받은 후 요양원 입소를 위해 잠시 집에 내려와 있던 K씨가 체결한 히트펌프보일러 시공계약서에 따르면 대금 800만원, 계약금 10만원, 월 84,400원 할부금융, 본사 지원금 150만원이다.
가족들은 이 계약서 내용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계약서에 한전지원금액 200만원은 표기되어 있지도 않고 대신 본사지원금 150만원이 기재되어 있어 한전지원금 차액 50만원을 회사가 편취하려 했던 것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이들은 또 겨울이면 영하 20~30도까지 온도가 내려가는 추운지역에서 과연 사용이 가능할 수 있을지 의문이며, 1,200만원짜리 고가의 히트펌프보일러를 설치하였다고 해서 결코 전체 전기료는 줄어들지 않는다고 항변하고 있다.
대금 800만원을 10년간 분할상환하며 월 84,400원(연4.9% 이자)을 부담하면 총 가격은 1,012만원, 한전지원금 200만원을 합하면 1,212만원으로 가격의 적정성 여부에도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 고령의 노인 집에 차라리 100만원짜리 기름보일러를 설치하는 게 훨씬 이익이라는 것. 현재 치매로 수원 모 요양원에 입원 중인 K씨의 집은 비워있는 상태다.
민주당 박정 의원에 따르면 히트펌프 보일러의 전기요금 절감효과는 30%대인데 시판업체들은 50~65%의 절감효과가 있다고 허위 과장광고를 하는 한편 설치 후 연락두절 등 제멋대로 영업을 벌여 피해가 크다고 주장했다.
한전이 2014년 히트펌프 보일러 보급 사업을 시작하면서 올해 8월 현재 3만여대가 보급되면서 전체로는 약 3000억원 규모의 시장이 형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추가보급에 따라 향후 총 사업비가 3조원 이상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중견제조기업이 아니라 시장의 약 90%를 차지하는 대기업만 이득을 보고 있다는 것이 박 의원의 지적이다.
박정 의원은 “설치계획서 접수, 지원금 신청, 준공 확인, 지원금 지급이 한전과 고객 사이에서 이뤄진다는 것을 감안하면 한전의 묵인 없이는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한전의 책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S엔지니어링(주) 측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이 회사 법무팀 관계자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계약 당시 A씨의 상태는 치매라고 볼 수 없을 만큼 정상적이었다. 직원이 외진 곳에 위치한 A씨 집을 못 찾겠다고 하자 A씨가 마을회관에서 만나자고 했을 만큼 정신이 또렷했다”면서, “또, 직원이 본사 지침에 따라 A씨에게 ‘가족들과 상의 후 다시 연락하라’고 했지만 A씨가 ‘내 집인데 내가 알아서 한다’고 적극적으로 주장해 공사를 진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당시 A씨와의 대화 녹취기록은 없다고 했다,
이어, “반품을 하려면 원상복구비용 등 400만원 중 절반가량인 192만원을 내야한다”면서, “나머지 절반은 회사가 손해 보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가족들은 “치매판정을 받고 노인요양원에 입소 예정이었던 90대 노인과의 계약은 법적으로 무효”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지금 이 순간도 업자들이 지역 어르신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전화를 하는 등 세상물정에 어두운 시골노인들을 위주로 영업활동을 전개하고 있다”고도 했다.
이처럼 고가의 히트펌프보일러 구매 및 설치와 관련해 우리지역에서도 분쟁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어르신들의 각별한 주의와 함께 대책마련이 절실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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