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남 씨는 페이스북을 통해 자신이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피해자의 담당의였다며 장문의 글을 올렸다. 그는 “처음엔 사건에 대해 함구할 생각이었다. 당연히 환자의 프라이버시를 위해서였고, 알리기에는 공공의 이익이 없다고 생각했다”며 “하지만 사건이 보도되기 시작하고 많은 사실이 공개되었다. 그러기에 이제 나는 입을 연다”고 글을 시작했다.
캡처=남궁인 페이스북
남 씨가 목격한 피해자는 ‘침대가 모자를 정도로 키가 크고 체격이 좋은’ 청년이었다. 남 씨는 “검은 티셔츠와 청바지에 더 이상 묻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피투성이였다. 하나하나가 형태를 파괴할 정도로 깊었다. 피범벅을 닦아내자 얼굴에만 칼자국이 삼 십 개 정도 보였다. 대부분 정면이 아닌 측면이나 후방에 있었다”고 피해자의 당시 상태를 설명했다.
서른 개가 넘는 칼자국 개수 자체도 충격적이었지만 그 깊이 역시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남 씨는 “모든 상처는 칼이 뼈에 닿고서야 멈췄다. 두피에 있는 상처는 두개골에 닿고 금방 멈췄으나 얼굴과 목 쪽의 상처는 푹 들어갔다”며 “귀는 얇으니 구멍이 뚫렸다. 양쪽 귀가 다 길게 뚫려 허공이 보였다. 목덜미에 있던 상처가 살이 많아 가장 깊었다. 너무 깊어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복기했을 때 이것이 치명상이 아니었을까 추정했다”고 회상했다.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가 경찰 조사과정에서 우울증을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남 씨는 이에대한 의견을 밝혔다. 남 씨는 “그가 우울증에 걸렸던 것은 그의 책임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우울증은 그에게 칼을 쥐여주지 않았다”며 “되려 심신 미약에 대한 논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울로 고통받는 수많은 사람들을 잠재적 살인마로 만드는 꼴”이라고 밝혔다.
피해자의 처참했던 모습을 전한 그는 세상이 두려워졌고 의사로서 무기력함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남 씨는 “이렇게 인간을 거리낌 없이 난도질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 사회란 근본적으로 불가능해 보였다. 그래서 고인은 평범한 나와 같아 보였다. 우리가 어떤 노력을 할지라도 이 사실을 바꾸는 것은 절망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끝으로 남 씨는 자신의 글이 사실 관계 확인에 도움을 줌으로써 사건의 엄중한 처벌과 재발방지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며 글을 마무리했다. 남 씨는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보고도 믿기 힘들었던 비인간적인 범죄 그 자체다“라며 “그럼에도 이 글에서 무기력함이 느껴진다면 그것은 어쩔 수 없다. 우리 모두는 이 사건에 대한 무기력함의 지분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글을 마무리 했다.
박혜리 기자 ssssch33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