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소시효 애매한 사건…당시 수사팀 처벌 가능성”
고(故) 장자연 씨와 임우재 전 삼성전기 고문이 통화한 사실이 알려지자 법조계 일각에서 제기된 시나리오 가운데 하나다. 검찰 과거사위원회에서 장자연 리스트 사건을 재확인해야 한다고 밝힌 지 4개월여 만에, 임우재 전 삼성전기 고문과의 통화 사실이 언론에 알려졌다. 세간의 관심은 뜨거웠다. 삼성그룹 사위와 성상납 의혹이 있었던 장자연 씨의 이름이 결부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 네이버 등 포털 검색어 상위권에 한동안 이들의 이름은 오르내렸다.
실제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장자연 씨가 숨지기 전 1년 동안 임우재 전 삼성전기 고문과 35차례 통화한 정황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 전 고문은 “장 씨를 본 적은 있지만, 친하지는 않았다”는 입장이다. ‘알고 지낸 것은 맞다’는 얘기. 그렇다면 왜 갑자기 임우재 전 고문이 등장했을까. 검찰이 그리고 있는 진짜 ‘큰 그림’은 무엇일까.
# 갑자기 등장한 임우재, 성상납 재수사 명분(?)
임우재 전 삼성전기 고문. 일요신문DB
그런데 9년이 지난 10월 초, 임우재 전 고문과 장자연 씨가 ‘서로 알고 지냈다’고 볼 수 있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검찰 과거사위원회에 따르면 장 씨와 임 전 고문이 통화한 휴대전화 명의는 임 전 고문의 아내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지만, 장 씨 소유 전화기에 저장된 이름은 임우재 전 고문이었다. 통화 시점은 장 씨가 숨지기 9달 전인 2008년 6월. 24차례는 음성 통화였고 11차례는 문자메시지였다. 통화가 이뤄졌던 장소 중에는 수원 삼성전기 본사가 있는 주변 기지국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당시 경찰과 검찰 모두 임 전 고문을 한 번도 소환하지 않았다. 임 전 고문은 이와 관련해 장 씨와 친분이 있는 사이가 아니라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임 전 고문에 대한 확인이 불가피해졌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국정감사에서 기다렸다는 듯 이를 언급했다. 이춘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박상기 법무부 장관에게 “임우재 전 고문도 불러서 조사하겠냐?”고 질의했고, 이에 박 장관은 “필요하다면 부를 수도 있지 않나 생각한다”고 답했다.
국감을 앞두고 임우재 전 고문 이름이 등장한 탓에 짜놓은 ‘각본’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검찰 출신의 한 법조계 인사는 “세간이 주목하는 이슈는 언론 보도를 통해 관심을 받아야 수사 동력이 생긴다”며 “이번 언론보도부터 박상기 장관의 발언 맥락까지, 모두 준비된 내용들이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설명했다.
# 왜 장자연 재수사 어렵나? “공소시효 끝나”
그럼에도 왜 장자연 씨 성상납 의혹 및 리스트 재수사는 하지 않을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 처벌이 불가한 상황이다. 제약도, 한계도 많다.
지난 2009년 당시 경찰은 장자연이 남긴 문건이 총 7매 분량. 여기에는 몇몇 인사들의 이름이 등장한다. 하지만 당시 경찰은 “실명과 일부 지워진 이름이 존재하지만 리스트 형태는 아니”라고 확대 해석을 우려했다.
고 장자연의 영정. 일요신문DB
더 큰 문제는 공소시효 만료다. 장자연 사건의 공소시효는 10년. 지난 8월 초로 만료됐다. 이 때문에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홍종희 부장검사)는 고 장자연 씨를 강제추행한 혐의로 조선일보 기자 출신 A 씨를 급히 불구속 기소하기도 했다.
이제 와 다시 수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앞선 법조계 관계자는 “A 씨와 함께 술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의 경우 공범자 범죄 등으로 공소시효가 연장되지만, A 씨와 함께 있던 인물이 아닌 경우 강제추행 등을 했어도 시효가 끝났다. 리스트에 오른 인물이 실제 성추행을 했다고 하더라도 처벌이 불가하다”고 설명했다.
# 그렇다면 새로운 수사 타깃은?
당시 경찰과 검찰 수사팀을 수사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분석이 힘을 받는 이유다. 12일 국감에서 이춘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런 내용을 은폐한 담당 검사도 그에 합당한 징계조치 및 사법 처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고, 이에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사실 관계를 일단 먼저 확인해 보고 고의적으로 소환을 하지 않았구나 이런 때에 대해서는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도록 하겠다”고 화답했다.
실제 당시 수사 결과는 매우 초라했다. 수사 선상에 오른 이들은 모두 20명으로 결국 구속된 이들은 소속사 대표와 전 매니저 둘뿐이다. 우선 경찰은 5명만 불구속 입건하고 13명은 불기소(6명)와 내사 종결(7명)로 처리했다. 이 과정에서 ‘장자연 문건’에 이름이 등장한 5명은 모두 내사종결로 마무리 됐다. 검찰은 더 노골적으로 사건을 처리했다. 경찰이 혐의가 있다고 판단해 불구속 입건해서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사건을 송치한 5명마저도 무혐의 처분한 것.
당시 성남지청에서 내놓은 무혐의 처분 배경은 “장자연 씨가 추행 등을 당해 힘들어 했다는 지인들의 진술이 있지만, 믿을 수 없다”는 것. 이에 대해 ‘자료를 축소 해석하고 수사를 확대하지 않으려 했다’는 게 지금 검찰의 판단이다. 실제 2009년 당시 검경 수사는 고인의 소속사 대표와 전 매니저, 단 두 명을 기소하는 선에서 끝났다.
관련 자료를 살펴 본 한 검찰 관계자 역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다”며 “진실 앞에 당당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면이 있는 것 같다. 이번에 대검찰청 등에서 장자연 사건을 다시 살펴보기로 한 것도 당시 수사팀들의 잘잘못을 따지기 위해서이지 성상납 사건을 다시 시작하겠다는 맥락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