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9월 무기계약직 396명 정규직…정부 가이드라인도 무시한 서울시의 정규직 정책
서울교통공사에 이어 서울주택도시공사에서도 전현직 직원들의 친인척 채용 사실이 확인돼 공기업의 고용세습 파문이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연합뉴스
SH공사는 지난 9월 정원 외 인력으로 운영하던 무기계약직 직원 396명을 주거복지직 소속의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이 과정에서 부·차장급 직원들 친·인척 7명이 포함된 것으로 밝혀졌다. 퇴직 직원들의 친·인척까지 합치면 그 수는 15명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내부 관계자 A 씨는 “사장실 비서업무를 담당하는 이 아무개 부장의 사촌과 한 아무개 전 재무관리처장의 배우자 등이 주택관리원으로 입사해 올해 정규직으로 전환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가족 인맥으로 관리사무소에 입사하는 건 예삿일이고 직원 자녀들은 방학이면 인턴으로 일하곤 했다”고 덧붙였다.
SH공사가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이 부장의 사촌과 전 재무관리처장 한 씨의 배우자 외에도 부·차장급 직원들의 처남과 배우자, 동생 등 총 7명이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뒤 현재까지 일하고 있다. 특히 양 아무개 차장의 경우 배우자와 동생까지 모두 SH공사 직원으로 가족원 3명이 한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이들은 1997년~2003년 사이 공사 관리사무소나 위탁관리업체에 기간제 근로자로 입사한 뒤, 기간제법 및 정부지침에 따라 2009년 무기계약직으로 일괄 전환됐다. 이후 SH공사는 서울시 ‘노동존중특별시 서울 2단계 발전계획‘ 실행의 일환으로 지난달 대규모 정규직 전환을 실시했다.
SH공사는 이들이 서류심사와 면접시험을 거쳐 공정하게 채용됐으며, 무기계약직 전환도 임대주택관리업무에 2년 이상 근속해야 한다는 내부 합의와 정부의 지침에 따라 진행됐다고 밝혔다. 특히 이들이 10년 이상 근속한 장기 근로자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A 씨는 “10년 이상 일할 수 있었던 것 자체가 특혜”라며 “2007년 6월까지는 SH공사 직원을 임대아파트 관리사무소 소장으로 파견했다. 채용이나 유지 권한은 소장한테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다. 즉, 본사에 가족이나 지인이 있는 사람은 기간제 근로자로 입사하기도 쉬웠다는 추측이다.
이어 “2007년 임대아파트 관리 사업이 직영관리에서 위탁관리로 변경되고 임대사업만 공사 통합관리센터가 맡게 됐다. 이때 계약직 관리원 277명 중 88명이 공사 계약직으로 뽑혔다. 여기에도 노동조합 집행부와 본사 직원의 친·인척이 많다”고 주장했다. 이때 외주화 위기에서 살아남은 88명과 기존의 공사 소속 계약직원은 무기계약직 신분에서 올해 일반 정규직이 됐다.
A 씨는 구체적인 이름도 언급했다. 당시 교섭을 진행한 집행부 유 아무개 씨와 친동생 B 씨, 친척 C 씨, 앞서 언급한 이 부장의 조카 등이 2007년 통합센터 직원으로 뽑혔고 이후 센터 발령에서도 특혜를 받았다고 했다. A 씨는 현재 주거복지팀 총괄보조와 센터직원 근무배치 등의 업무를 맡고 있다.
한편 이와 별개로 SH공사가 이미 2009년에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직원들을 올해 또 한 번 정규직으로 전환했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현재 논란의 정점에 서 있는 서울교통공사와 같은 사례다. 이러한 무기계약직의 일반 정규직 전환은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제로화’ 정책에도 없는 내용이다.
SH공사 홍보실 관계자는 24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지난달 무기계약직 396명이 일반직으로 전환된 건 맞지만 애초에 무기계약직은 정규직과 다름없다”면서도 “기존 직원들의 반발을 고려해 별도 직군을 만들어 정원 내 인력으로 편입했다”고 답했다.
정부가 지난해 7월 발표한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가이드’에 따르면 정규직 전환 대상은 기간제 근로자, 민간 파견업체 소속의 파견 근로자, 용역업체 근로자에 제한한다. 전환 방법도 기존 정규직 직원들과의 갈등 상황을 고려해 무기계약직 전환이나 자회사 직원 채용을 권장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역시 불공정 채용 사태를 우려해 보다 엄격한 전환 절차를 거쳐 진행하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방자치단체 산하 공공부문 인사에 중앙정부가 간섭할 수는 없다”면서도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비정규직의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추진하는 정부의 정규직 전환 정책과는 관련 없는 서울시의 독자적인 정책”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서울시 산하 공기업들의 대규모 정규직 전환이 박원순 서울시장의 ‘무기계약직 정규직화‘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무리하게 단행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안팎으로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청년들의 취업문이 더 좁아질 것이란 우려도 줄을 잇는다.
한편 기존에 정원 820명이었던 SH공사 직원 규모는 금번 정규직으로 전환된 396명을 포함해 총 1216명으로 늘어났다. 9월 정규직 전환 이후 올라온 SH공사 하반기 채용 인원은 총 30명으로 작년 하반기 모집인원인 36보다 6명 줄었다. 갑자기 늘어난 몸집이 버거워 새 식구 충원에는 다소 주춤거리는 모습이다.
최희주 인턴기자 perrier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