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진은 떨리는 눈길로 두 장의 사진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잘못 보고 있는 것이 결코 아니었다. 30년도 넘은 과거의 사진 쪽이 훨씬 흐릿하기는 했지만, 악인(惡人)의 전형처럼 치솟은 눈썹과 가늘게 이어진 눈매들은 착각으로 보기에는 너무나도 서로 흡사했다.
아니야, 아닐 거야-그는 얼떨떨해진 고개를 가로 저었다. 실제로 말이 안되는 노릇이었다. 수십 년 전 자살한 이성귀가 현재에 나타났다면 그것은 귀신이라는 소리나 마찬가지인 탓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뭔가가 이상했다. 옷차림과 체구는 틀림없이 그가 알고 있는 오광태였다. 물론 두 사람의 얼굴은 완전히 달랐다.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도 오광태의 얼굴은 이성귀와는 조금도 비슷하지 않았다.
부장의 닦달 탓에 잡지사 안은 온통 어수선해져 있었다. 형진은 사진을 가져 온 동료 기자에게 다가갔다.
“왜, 김 기자?”
“궁금한 게 있는데 말이야. 이 사진 혹시라도 조작되지는 않았을까?”
“조작? 아냐. 그럴 리는 없어. 내가 화면을 보면서 직접 복사했는걸.”
젠장, 그의 입술이 와락 깨물렸다. 동료 기자가 반문했다.
“자네가 아는 얼굴인가?”
“응? 아, 아니.”
형진은 애써 시치미를 떼며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쳤다. 자리로 돌아온 그의 등줄기에 다시금 서늘한 소름이 돋았다.
그때였다. 불안하게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형진의 시야에 문득 잊고 있었던 서류철이 들어왔다. 그는 순간적으로 벌떡 몸을 일으켰다. 이성귀, 그 작자를 알아볼 수 있는 인물이 단 한 사람 떠오르고 있었다.
“이봐! 어디 가는 거야?”
부장이 부르고 있었으나 대꾸할 틈조차 없었다. 윗도리를 챙겨든 형진은 허둥지둥 사무실을 뛰쳐나갔다. S양 사건도, 재벌집 며느리 사건도 그에게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89>
박미영은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 스스로도 믿지 못했다. 여관방이었다. 그것도 그녀의 학교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여관방 안이었다.
“대단해, 박 선생. 당신이 이렇게 화끈한 여자인 줄 몰랐어!”
끙끙거리는 남자는 아예 반말을 지껄이고 있었다. 그랬다. 그 유부남 선생이었다.
살결끼리 맞부딪치는 민망한 소음이 방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미영은 실오라기 하나없이 벌거벗은 채 침대 위에 엎드려 있었다.
일식집을 빠져나온 두 사람은 곧바로 여관을 찾았다. 그녀가 먼저 여관 문을 밀고 들어섰고, 재빨리 주위를 살핀 뒤 따라 들어온 유부남이 방값을 치렀다.
방문이 닫히기 무섭게 미영은 옷을 벗기 시작했다. 남자 역시 샤워조차 귀찮다는 듯 바지춤부터 끌어내렸다. 그가 침대에 오르자마자 달려든 그녀는 남편에게 했던 것처럼 허겁지겁 그를 맞이했다. 그리고 아무런 부끄럼도 없이 자신의 엉덩이 뒤쪽을 사내에게 내밀었다.
한쪽 구석의 TV화면에서는 외국산 포르노 영화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여자 배우의 요란한 신음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미영도 지지 않으려는 양 남자를 돌아보며 교성을 질러댔다. 그러나 유부남 선생은 이미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그는 고작 두 손으로 붙든 그녀의 희뿌연 엉덩이만 세게 움켜쥘 따름이었다.
“아아…!”
고개를 젖힌 미영은 안타깝게 도리질을 쳤다. 아니었다. 이 사내도 그녀의 욕구를 거의 채워 주지 못하고 있었다.
“아, 안돼. 제발….”
유부남이 격렬하게 몸뚱아리를 들이밀었다. 이윽고 활처럼 휘어졌던 그녀의 등이 파르르 떨리며 무너져내렸다. 그녀는 불만족의 탄성을 막기 위해 침대보에 얼굴을 파묻었다.
몸을 빼낸 남자가 화장실로 향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미영은 허공에 들어올린 엉덩이조차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후회하고 있었다. 또 한 번의 불륜을 범했다는 후회가 아니라 사내에 대한 실망감에서 비롯된 후회를 느끼고 있었다.
유부남이 돌아왔을 때 그녀는 몸을 씻지도 않고 일어나 옷을 입고 있었다. 욕정을 채운 남자가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박 선생, 당신 죽이던데? 아주 끝내 줬어.”
음탕한 찬사였다. 그는 자신이 엄연히 아내가 있는 유부남이라는 것을, 게다가 잠시 후면 제자들 앞에 서야 하는 교사의 신분이라는 것을 전혀 개의치 않는 듯했다. 미영은 대꾸하지 않으며 천천히 팬티스타킹을 끌어올렸다.
“어때? 우리 종종 이렇게 만납시다. 응?”
“싫어요.”
▲ 그림 최경태 | ||
“미안하지만 이번뿐일 것 같군요. 서로 곤란한 입장인 건 잘 아실 테니까 함부로 행동하지 말아주세요.”
미영은 여관방 문가에 서서 협박하듯 차가운 음성을 뇌까렸다. 어느새 그녀의 눈동자는 까맣게 투명해져 있었다. 마치 지금껏 벌어진 일들을 싹 잊어 버린 것 같은 눈빛이었다.
<#90>
“흐흐흐…, 아주 좋아. 그게 바로 내가 원하는 거야!”
오광태는 흡족한 웃음소리를 키들거렸다. 귀신이 말한 그 여자가 누구인지 그는 아직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 여자가 음탕한 욕구에 몸을 떨 때마다 그의 시야에는 그녀가 무엇을 하는지, 무슨 생각을 느끼는지 훤히 보이고 있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해 이제는 그가 여자를 조종하고 있었다.
남편에게 버림받은 유부녀란 언제나 가장 타락하기 쉬운 존재 중의 하나였다. 그리고 그렇게 타락할수록 여자는 점점 더 그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중이었다.
“계속해! 멈추지 말고 계속하라구, 낄낄낄!”
“아, 나도 좋아. 나도 좋아, 자기야!”
그의 아래에선 또 다른 여자의 목소리가 헐떡였다. 그 여자는 오광태가 자신에게 탄성을 보낸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새로운 벌레는 전직 영화배우라는 이혼녀였다. 수 년 전만 해도 톱스타 취급을 받던 그 여자는 지금 함연주의 오피스텔 침대 위에서 자신의 벌거벗은 몸을 격렬히 부대끼고 있었다.
그는 그녀에게 영화배우에 어울릴 만한 대접을 해 주었다. 침대 곁에는 삼각대까지 마련된 비디오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었다. 여자는 자신의 섹스 장면을 찍는 것조차 전혀 마다하지 않았다.
“미치겠어, 나 이런 건 남편한테도 못 느껴 봤어!”
오광태는 히죽 비웃음을 머금으며 손바닥을 치켜들었다. 짜악, 여자의 새하얗고 풍만한 둔부에 새빨간 손자국이 그려졌다.
“그래. 나를 때려, 여보! 더 세게 때려줘!”
연기보다도 더 실감나게 여자가 애원해댔다. 짝, 다시 한 번 짝-오광태는 그녀의 양쪽 엉덩이를 번갈아 거세게 내리쳤다. 그 모든 광경을 비디오 카메라가 속속들이 촬영하고 있었다.
오피스텔 방문이 벌컥 열린 것은 그 순간이었다.
“오, 오빠!”
세 번째 여자의 자지러지는 비명이 들려 왔다. 두 나신이 동시에 문 쪽을 쳐다보았다. 함연주였다. 그녀가 기겁한 시선으로 자신의 침대 위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난데없는 훼방꾼의 등장에도 욕정에 사로잡힌 남녀는 하던 짓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전직 여배우 또한 영화라도 찍는 듯 다른 여자 앞에서 자신의 벌거벗은 몸뚱아리를 드러내고 있는 것 따위는 하등 아랑곳 않는 표정이었다.
“지금, 지금이야 오빠!”
“안돼. 광태 오빠, 제발….”
두 여자의 외침이 한꺼번에 터져나왔다. 함연주는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침대 위의 여자가 한껏 입을 벌린 채 까무러치듯 교성을 질러대고 있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