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진 부산교통공사 사장 후보 “어떤 선물 받았는지 모른다” 해명…보은인사·엘시티 연루 의혹에 정의당·시민사회도 “인사 철회” 주장
부산지하철노조가 25일 부산시청 광장에서 조합원 결의대회를 갖는 장면(왼쪽)과 부산시장 출마 공식 기자회견 당시 정경진 부산교통공사 사장 내정자의 모습(오른쪽).
논란의 발단이 된 시점은 서병수 전 시장이 재임하던 지난해 2월이다. 당시 부산시는 엘시티 비리사건을 수사하던 검찰로부터 2010년부터 2016년 2월까지 엘시티 시행사로부터 선물을 받은 28명의 전·현직 공무원의 명단을 통보받았다.
하지만 부산시는 검찰로부터 인사과를 통해 전달받은 내용을 감사관실에 다시 통보하지 않고, 기획재정관과 행정부시장 및 시장의 결재를 거쳐 자체적으로 인사에 불이익을 주는 선에서 마무리했다. 공무원 비리와 관련된 사항은 감사관실에서 직접 조사해 혐의를 확인하고, 확인된 혐의에 따라 징계 수위를 결정해야 하는 데도 이를 지키지 않은 것이다.
민선 7기 출범 이후 부산시는 이 같은 사실을 국무조정실 현지 조사를 통해 확인하고 재조사를 벌였다. 시는 현재까지 재직 중인 현직 공무원 4명을 조사해 이 가운데 직무 관련성이 있는 3명을 청렴의무 위반으로 징계하기로 결정했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정경진 부산교통공사 사장 후보와 김종철 스포원 이사장 후보 등 공공기관장 내정자 2명이 엘시티 시행사로부터 선물을 수수한 사실이 드러났다. 두 사람은 공직자 재임 시절 엘시티 시행사로부터 1회당 30만 원씩 여러 차례에 걸쳐 300만 원 안팎의 명절 선물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시는 두 명에 대한 관련 자료를 시의회에 통보하고 검증을 요청했다.
이에 따라 사상 최초로 부산 공공기관장 내정자에 대한 부산시의회의 인사검증회가 23일과 24일 이틀간 펼쳐졌다. 특히 정경진 부산교통공사 사장 내정자에 대한 인사검증이 이뤄진 24일에는 많은 이목이 시의회로 쏠렸다. 정 내정자가 올해 상반기에 진행된 지방선거에서 여권 예비후보로 부산시장에 도전했기 때문이다.
이날 부산시의회 인사검증특별위(특위) 제1소위원회는 정경진 내정자에게 엘시티 시행사로부터 30만 원가량의 선물을 8차례 받았다는 사실을 물으며 직무 관련성이 있는지 여부를 따졌다.
이에 대해 정경진 내정자는 “당시 이 부분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 어떤 선물을 받았는지 모른다”고 해명했다. 이어 “후회한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부패 척결을 외쳤는데, 부패의 상징인 엘시티로부터 선물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는 참담하고 부끄러웠다. 시민의 뜻으로 새롭게 출범한 민선 7기 오거돈 시장에게 누가 되지 않을까 죄송하다”며 사과했다.
정 내정자는 직무 관련성 부분에 대해선 “해당 부서에 있지 않았고, 부시장 재임 시절은 인허가가 완료된 이후였다. 검찰의 수사를 받은 적도 없다”며 연루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보은인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선거 전 모든 후보와 원팀을 합의했다. 교통공사 사장을 하려고 선대위원장을 맡은 것이 아니다. 내 철학과도 맞지 않다”고 대답했다.
정경진 내정자의 이 같은 사과와 해명과는 상관없이 논란은 점점 확산되고 있다. 먼저 자유한국당이 맹공격을 펼쳤다. 김진홍·오은택 의원 등 자유한국당 소속 시의원 5명은 인사검증이 진행된 23일과 24일 부산시청 1층 로비에서 오 시장을 규탄하는 피켓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부적격 후보를 알고도 추천했다”며 오 시장의 사퇴까지 요구했다.
부산지하철노조는 25일 부산시청 광장에서 조합원 결의대회를 갖고 정경진 부산교통공사 사장 내정자에 대한 지명철회를 요구했다.
정의당 부산시당은 24일 논평을 내고 “정경진 부산교통공사 사장 후보자와 김종철 부산지방공단 스포원 이사장 후보자가 엘시티 시행사 측으로부터 장기간 주기적으로 금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며 “오거돈 부산시장은 두 후보자에 대한 인사를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정의당 부산시당은 “높은 도덕성이 요구될 뿐 아니라 엘시티라는 매우 민감한 사안과 관련이 있기에, 금품의 직무관련성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웃기는 일”이라며 “선물을 받은 줄도 몰랐다는 변명도 궁색하다”고 정 내정자를 정조준하며 비난했다.
시민사회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부산참여연대는 “부산의 가장 큰 적폐인 엘시티의 이영복 사장으로부터 관리를 받은 사람을 공공기관장으로 앉히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액수가 적고 김영란법 시행 전의 일이라고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질타했다.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인 부산지하철노조는 23일 자극적인 논평을 배포한 데 이어, 25일 부산시청 광장에서 조합원 결의대회를 가졌다. 이날 노조는 “박종흠 현 사장 체제에 만들어진 쓰레기와 같은 노사 관계가 신임 사장의 취임으로 정리되길 바랐지만, 현재로서는 기대하기가 힘들다”며 포문을 열었다.
노조는 이어 “부산시가 뜨거운 감자를 시의회에 돌려 면죄부를 받거나 책임을 미루려 한다. 부산시의 밀실 보은 낙하산 인사의 관행이 전혀 변하지 않았고 있다”며 날을 세워 비판했다. 그러면서 “시민과 노조가 참여하는 제도를 마련하는 등 기관장 선출 과정을 전면적으로 개편하라”고 촉구했다.
이에 앞서 부산시의회 특위에서도 지명을 철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특위는 지난 23일 비위 의혹에 연루돼 도덕적으로 하자가 있는 2명의 후보자에 대한 지명철회를 부산시에 요청했다. 특위는 이날 긴급회의를 통해 해당 후보자에 대한 검증 절차를 보이콧하기로 논의했으나, 의원들의 의견이 서로 엇갈렸다. 결국 시에 지명철회를 요구하고 인사검증은 진행하는 방향으로 결론을 지으면서 인사검증회를 예정대로 진행했다.
부산시와 오거돈 시장은 25일 현재까지 이번 논란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과거에 비해 보다 엄정한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는 점과 ‘보은인사’라는 단어에서 파생한 시민들의 따가운 시선 등을 감안할 때, 시가 계획대로 인사를 단행하려면 험로를 걸어야만 할 것으로 보인다.
하용성 기자 ilyo3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