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 최경태 | ||
김형진은 여자의 신음소리, 아니 분명 비명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했다. 그의 어깨가 있는 힘을 다해 방문을 들이받았다.
우지끈 소리와 함께 문짝이 부서졌다. 하지만 미친 듯이 방 안으로 돌진해 들어간 그는 잠시 동안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갑자기 밝아진 시야를 되찾느라 눈을 껌뻑여야만 했다. 그리고 다음 찰라 몸서리를 치며 그 자리에 못박혔다.
“여, 여보!”
넋나간 음성이 흘러나왔다. 형진은 자신이 바라보고 있는 광경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커다란 침실 한가운데에 호화로운 더블베드가 놓여 있었다. 그 위에 질퍽하게 땀에 젖은 한 쌍의 나신이 뒤엉켜 있었다. 아내였다. 그의 아내 박미영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뚱아리를 사내 앞에 들이대고 있었다.
그것은 꿈도 착각도 아니었다. 오광태가 네 발 짐승처럼 한껏 엎드린 그녀의 등 뒤에서 몸을 부대끼고 있었다. 형진이 뛰어든 그 순간에도 두 사람은 한창 열락에 빠져 있었다.
“우하하하, 낄낄낄낄!”
오광태는 형진을 보고도 전혀 놀라지 않는 얼굴이었다. 오히려 모든 걸 예상했다는 듯 기괴한 웃음소리를 터뜨리고 있었다.
“안돼!”
경악한 형진이 다짜고짜 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자 오광태가 허공에 팔을 뻗었다. 형진의 몸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그는 컥컥거리며 사지를 버둥거렸다. 그의 목덜미에 시퍼런 손자국이 그려지고 있었다.
“이거 뜻밖인걸. 용케도 여기까지 쫓아왔구나, 김형진.”
“여보! 여보!”
형진은 보이지 않는 손길에 얽매인 채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애타게 아내를 불러댔지만 미영은 몽롱한 표정으로 그를 응시할 뿐이었다.
“너무 늦었다, 후후후. 소용없어. 이년은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오광태가 즐겁다는 투로 이죽거렸다. 실제로 미영은 남편을 알아보기는커녕 달아오른 신음만 내지르고 있었다. 초점을 잃은 그녀의 눈동자는 이미 뻥 뚫린 까만 구멍 같았다.
“오, 오광태! 죽여…. 죽여 버릴 테다!”
“호오, 나를 죽이시겠다고? 천만에. 너는 나한테 손 끝 하나 댈 수 없다.”
오광태는 미영의 벌거벗은 몸을 쓰다듬으며 형진을 조롱해댔다. 아내를 코앞에 두고도 형진은 옴짝달싹조차 할 수 없었다.
“멈춰! 그만 둬! 으으윽….”
형진이 악을 써대자 오광태가 손가락을 오므렸다. 피가 몰린 형진의 입가에서 허연 거품이 튀어나왔다.
“아직도 뭘 모르는군, 벌레. 네 마누라는 스스로 나에게 애원해댔다. 제발 이 주인님의 물건을 넣어 달라고 말이야.”
형진은 애써 부정하기 위해 도리질을 쳤다. 그러는 사이에도 오광태는 미영의 몸속에 들락이는 동작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쾌락에 물든 그녀의 표정이 점점 더 안타깝게 일그러지고 있었다.
“하필 이런 때에 나타나다니 안됐구나. 나는 김형진 너를 섬에서 처음 봤을 때부터 언젠가는 방해가 되리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가장 치욕적인 보복을 안겨 주고 싶었지. 어떠냐? 사랑하는 아내가 다른 남자를 받아들이고 있는 장면을 본 소감이?”
“아, 아내를 놔줘! 나는 너의 정체를 안다, 오광태! 너는 이성귀에게 혼을 빼앗긴….”
형진이 안간힘을 쓰며 외쳤다. 그러나 그의 말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오광태가 손을 치켜들었다. 형진의 몸이 공중에 번쩍 들어올려졌다.
“꽤나 시끄럽게 구는군. 아직도 더 고통이 필요한가?”
오광태는 자신의 하체를 내려다보더니 거칠게 미영의 머리채를 움켜쥐었다. 그녀는 머리카락을 잡아채는 손길에도 비명조차 지르지 않았다. 잔인한 지껄임이 들려 왔다.
“네가 무엇을 원하는지 말해라, 노예.”
“주인님, 주인님의 아이를 갖게 해 주세요! 저는 주인님의 씨앗을 원해요!”
미영이 교성을 질러댔다. 형진이 소스라쳤다. 그녀의 엉덩이를 철썩철썩 내리치며 오광태가 흡족하게 키들거렸다.
“잘 봐라, 김형진. 네 마누라는 나의 노예일 뿐이다!”
순간적으로 눈이 뒤집힌 형진은 그제야 자신이 무엇을 지니고 있는지 기억해냈다. 그는 허겁지겁 허리춤을 뒤적였다. 오광태의 눈빛이 번뜩였다.
“낄낄낄, 고작 그런 것 따위로 나를 막으려고 했나?”
형진은 손바닥에 불에 데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가까스로 끄집어낸 물건이 속절없이 바닥에 떨어져 버렸다.
“조금만 기다려라. 이제 곧 끝날 테니까.”
오광태가 비웃으며 말했다. 비로소 형진은 무슨 일이 벌어지려 하는지 깨달았다. 그는 아내의 몸 속에 들어선, 거대하고 흉측한 귀신의 하초(下焦)를 똑똑히 목격할 수 있었다.
오광태는 한층 격렬하게 미영을 다그치기 시작했다. 그들 세 사람 모두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난 것은 그때였다. 우당탕-부서진 문짝이 다시 한 번 요란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124>
“뭐, 뭐야?”
형진도 오광태도 아닌, 제삼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쏟아질 듯 오피스텔 안에 들이닥친 것은 두 명의 남자였다. 형사계장과 젊은 형사는 해괴한 광경 앞에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벌거벗은 남녀가 침대 위에서 망측한 자세로 정사를 벌이고 있었다. 그 곁에는 흠뻑 젖은 몰골의 또 다른 남자가 벌개진 얼굴로 팔다리를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형사들이 보기에 그것은 마치 변태적인 그룹섹스 행각 같았다. 남자와 여자는 그들로서도 처음 보는 얼굴이었지만, 여자의 몸을 범하고 있는 쪽은 틀림없이 그들이 찾고 있던 오광태였다.
아무도 숨소리조차 흘리지 못했다. 오직 오광태의 몸뚱아리 앞에 나신을 내민 여자만이 자지러지듯 헐떡이고 있었다.
“주인님, 저를 죽여 주세요! 주인님이 원하시는 건 뭐든지 하겠어요!”
두 형사는 당황스런 눈길로 서로를 마주보았다. 그들의 출현에 오광태마저도 잠시 머뭇거리는 듯했다.
누군가가 황급히 움직인 것은 그 순간이었다. 형진이었다. 그의 발은 어느새 바닥을 딛고 있었다. 그로서는 갑자기 등장한 사내들의 신분을 알 턱이 없었다. 그들은 그에게 아군일 수도, 거꾸로 적군일 수도 있었다.
형진은 오광태의 마수(魔手)가 헐거워진 틈을 타 재빨리 바닥에 떨어뜨렸던 물건을 주워 들었다. 그러자 젊은 형사가 허둥지둥 가슴팍에 손을 쑤셔넣었다.
“꼼짝마!”
그가 소리쳤다. 형사계장은 그 모든 행동들을 바짝 긴장한 채 바라보아야 했다. 침대 아래에 서 있던 남자가 집어든 것은 은색 날이 번쩍이는 한 자루의 칼이었다. 그에 대해 젊은 형사가 꺼낸 것은 시커먼 총신이 달린 권총이었다.
“경찰이다! 칼을 버려!”
형사들은 형진이 자신들에게 저항하려 한다고 여겼다. 하지만 형진은 도리어 그들이 자신을 체포하기 위해 나타난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야, 나는 아니야!”
형진은 발작하듯 고개를 저었다. 그는 팔을 부들거릴 뿐 칼을 놓지 않았다. 아내를 버려 두고 혼자 붙잡힐 수는 없었다.
“제기랄, 칼 버리란 말이야! 칼 버려!”
타앙, 젊은 형사가 천정을 향해 공포탄을 발사했다. 찰라 오광태의 기묘한 웃음소리가 울려퍼졌다.
“우히히히…. 마음대로 해라, 벌레들아! 너희는 나를 막지 못해.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
“아아, 주인님! 주인님…!”
형진과 형사들의 시선이 침대 쪽으로 몰렸다. 오광태는 여전히 미영의 몸 안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었다. 팽팽히 허리를 젖힌 그녀가 최후의 탄성을 토해내는 중이었다.
“오, 오광태!”
형진의 입에서 단말마적인 비명이 터져나왔다. 오광태가 절정에 달한 양 몸을 떨고 있었다.
오광태, 아니 이성귀가 아내의 육체 속에 마지막 기운을 퍼뜨린 것이었다. 형진은 마침내 가장 끔찍한 모습을 발견하고 말았다. 오광태의 얼굴이 흡사 변검(變瞼)의 한 장면처럼 변하더니 서서히 다른 얼굴로 바뀌고 있었다.
“안돼! 안돼!”
형진이 울부짖었다. 그것은 이성귀의 얼굴이었다. 그는 분명히 자신을 쳐다보며 히죽 입꼬리를 말아올리고 있는 이성귀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때였다. 눈부신 섬광이 방 안을 가득 메웠다. 빠지지직, 귀를 찢는 벼락소리와 동시에 오피스텔 안의 전등이 전부 꺼져 버렸다. 스트로보 사진처럼 어둠과 빛이 교차하는 가운데 모든 사람들이 한꺼번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김형진이 침대로 뛰어올랐다. 그를 막아서려는 듯 박미영이 몸을 일으켰다. 칼날이 허공을 가로질렀다. 탕-두 번째 총성이 불을 뿜었다.
두 갈래의 선혈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튀었다. 텅 빈 오피스텔 벽에 시뻘건 핏줄기가 흩뿌려졌다. 다른 한 줄기의 피가 새하얀 침대보 위로 왈칵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 영원 같은 침묵이 흘렀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