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에 맞설 유일한 큰손인데…’ 국내 주식 비중 축소에 투자자들 화들짝
다음 날인 10월 31일 이수철 국민연금 실장은 국회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장기 목표를 통한 자산 배분에 나서기 때문에 가능한 한 리스크를 줄이는 차원에서 글로벌 시장으로 다양하게 분산 투자하는 정책을 쓰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락장에서 역할에 대해서는 “고민해 보겠다”고만 답했다.
전북 전주시의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연합뉴스
10월 증시 급락을 겪으면서 국민 노후자금인 국민연금 운용전략이 ‘뜨거운 감자’다. 돈을 맡긴 쪽에서는 투자위험 가중에 따른 연금손실 걱정이, 시장 참여자 쪽에서는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시장 비중 축소에 따른 수급 기반 약화를 우려하고 있다.
국민연금기금은 2016년부터 국내 주식투자 비중을 줄이는 대신 해외투자를 늘려가고 있다. 올 8월 말 기준 국내 주식 투자액은 123조 6000억 원으로 전체 자산(650조 9000억 원)의 19%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이 비중은 21%에 달했다. 올해 연간운용계획을 보면 국내 주식 비중은 18.7%다. 2019년 가이드라인을 보면 18%까지 하락한다. 연금자산이 불어나는 추세이니만큼 보유한 주식을 파는 것은 아니라고 해도, 최소한 적극적으로 사지는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금융투자협회 등 국내 투자자들은 국민연금의 이 같은 국내 주식 비중 축소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수급기반이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국내에서 외국인에 맞설 만한 큰손은 국민연금이 유일하다. 익명의 증시 관계자는 “지난달 말 증시가 폭락하자 정부 및 금융당국과 연기금 및 기관투자자들이 연락을 취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국민연금에 하락장의 방패 역할을 맡기는 것은 상당히 위험할 수 있다. 공무원연금이나 군인연금과 달리 국민연금은 정부의 지급보장이 아직 명문화돼 있지 않다. 그만큼 수익관리가 중요하다.
국민연금기금의 국내 주식 투자 수익률은 1988~2017년 평균 연 8.37%다. 지난해 증시가 급등하면서 2015~2017년만 보면 11.58%로 높아졌다. 나쁘지 않은 성적이다. 하지만 올해는 8월 말까지 -5.14%다. 10월 급락 분까지 감안하면 더 하락했을 가능성이 크다.
국민연금이 1988~2017년 국내 주식으로 얻은 수익금은 65조 원이다. 연초 국내 주식자산은 131조 5000억 원에서 출발했다. 10월 말까지 국내 증시가 약 16%가량 하락한 점을 반영하면 21조 원 넘는 손실을 봤을 수 있다. 30년간 쌓은 수익금의 3분의 1을 한 해에 잃을 수도 있는 셈이다. 연기금을 위탁운용하는 한 펀드매니저는 “운용자산이 커질수록 위험에 직면했을 때 손실액 절대 규모가 커질 수 있어 분산을 통해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 국민연금은 이미 그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국민연금기금은 2043년 2561조 원으로 정점을 찍은 후 점차 하락해 2060년 고갈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에는 고갈 시점이 2057년으로 당겨졌다는 추계도 나왔다. 국민연금기금 고갈을 늦추려면 운용수익이 중요하다. 기대수익이 낮고, 투자손실 가능성까지 있다면 비중 축소를 할 만하다. 특히 저출산 고령화로 현재 추세면 2043년부터는 보유자산을 팔아서 연금을 지급하는, 즉 기금운용 규모가 줄어드는 과정이 시작될 수 있다.
채권의 경우 만기조정(duration)을 통해 그나마 시장충격을 줄일 여지가 있다. 하지만 주식은 특정상대방에 한꺼번에 보유물량을 넘기는 방법이 아니라면 시장충격을 피하기 어렵다. 외국인 지분율이 36%에 달하는 상황에서 국민연금 보유물량을 받아줄 곳이 마땅하지 않을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생긴 시장충격은 증시 전체에 악영향을 미쳐 보유 주식가치를 더욱 떨어뜨리는 악순환 고리를 만들 수 있다.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비중이 높을수록 이 같은 ‘유동성 위험’은 커질 수밖에 없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국민연금 국내 주식의 약 30%가 삼성전자다. 웬만한 대형주 지분율은 10%를 넘는다. 이 때문에 최근 수익률의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 국민연금이 국내 증시에서는 더 이상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라고 설명했다.
최열희 언론인
일본보다 더한 노동인구 감소, 재정 악화 가속 국제신용평가회사 무디스(Moody’s)가 한국과 일본에 대한 인구분석 심층보고서를 내놨다. 한국을 선진 7개국(G7=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캐나다, 일본)과 비교한 것은 이례적이지만 일본보다 더한 고령화·저출산으로 치명적 문제를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요약하면 한국은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양질의 일자리는 로봇이 대체하고 늘어난 노인들은 70대가 되어서도 직접 생계를 챙겨야 하는 상황이 다가온다는 뜻이다. 정부도 이를 감당 못하고 2040년쯤 나라 빚이 급증해 이자로만 수입의 20%를 써야 할 것으로 예상했다. ▶일본보다 더한 노동인구감소=1990년대만 해도 한국의 노동인구(15~64세) 증가율은 13%에 달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5%를 밑돌기 시작했고, 2010년대에는 1% 미만으로 주저앉았다. 2020년대는 -9% , 2030년대에는 -10%를 넘을 것으로 예상됐다. 이 같은 추세는 일본과 이탈리아도 같지만, 2020년 이후 감소 정도는 한국이 독보적이다. 100명당 출생률은 일본이 7.9명, 한국이 7.8명이다. 1000명당 이민자 비율도 한국은 0.1명으로 일본의 0.4명에 한참 못 미친다. ▶여성, 노인이라도 더 일해야= 출생률은 낮은데 수명은 늘고 있다. 일본의 기대수명(65세 기준)은 남자 84.6세, 여성 89.4세다. 한국은 각각 83.4세, 87.6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수준이며, 늘어나는 속도도 가장 빠르다. 무디스가 유엔(UN) 등의 자료를 토대로 예상한 결과 2040년까지 일본은 15세 인구의 9~15%가, 한국은 4~6%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다. 결국 경제가 굴러가려면 노인도 일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2007~2017년 일본의 15~64세 인구는 240만 명이 줄었지만, 65세 이상 인구 270만 명이 노동시장에 새롭게 뛰어들었다. 노인인구의 노동참여만으로도 부족하다. 최근 일본은 5년간 50만 명의 저숙련 인력에 대한 이민허가계획을 밝혔다. 결국 한국도 같은 길을 밟을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로봇의 일자리 위협 더 커져=인구가 줄면 일자리가 남아야 하지만 꼭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생산단위인 노동이 줄어들면 산출량도 감소한다. 한국과 일본의 최근 국내총생산(GDP) 잠재성장률은 각각 3%, 1% 안팎이다. 고령화가 심해지는 20년 후 각각 2%와 0.5%대가 될 것으로 무디스는 예상했다. 결국 기업 입장에서는 자본투자와 기술혁신의 비중을 늘려 생산을 주도할 수밖에 없다. 2017년 경영컨설팅업체 맥킨지는 한국과 일본의 개별 작업 가운데 각각 51.9%와 55.7%가 자동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조사 대상 46개국 가운데 일본이 1위, 한국이 7위였다. 국제로봇협회가 집계한 2016년 기준 근로자 1만 명당 산업로봇 비율에서는 한국이 압도적 1위였고, 일본이 싱가포르, 독일에 이어 4위에 올랐다. ▶인구감소의 재앙…재정파탄=노령화와 인구감소는 세수가 줄고, 복지비용이 늘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재정에 치명적이다. 현 추세면 한국의 65세 이상 인구는 지금 전체의 14%에서 2040년 31%로 늘어난다. 같은 기간 일본이 27%에서 34.2%로 늘어나는 점과 비교하면 ‘가공할’ 속도다. 특히 비용부담이 큰 75세 이상 인구 비중은 일본 수준에 수렴한다. 정부 지출에서 연금 및 건강보험 관련 ‘의무지출(mandatory expenditure)’ 비중은 2016년 47.75%에서 2060년 65.8%로 늘어날 것이란 게 재정경제부 추정이다. 무디스는 현재 일반회계 기준 GDP의 -1% 수준인 한국의 재정적자가 2040년 전까지 -6%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일본은 현재 -4% 미만, 2040년 약 -6%다. 한국은 40% 미만인 GDP 대비 일반 정부 부채비율도 2040년엔 60%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일본은 현재 204%, 2040년 230%다. 빚이 늘어나면 이자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마련이다. 올해 한국 정부 수입에서 이자비용은 5%를 조금 넘는 수준이지만 2040년에는 20%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일본은 5%에서 9% 정도로 높아지는 데 그칠 것으로 봤다. 한국의 재정이 훨씬 빠른 속도로 악화되는 셈이다. [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