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력감 탈출 집착 ‘천륜’을 토막냈다
▲ 과천 친부모 살인 범인의 책장. | ||
이 사건은 지난 2000년 5월21일 새벽 5시 과천 별양동 J아파트에서 일어났다. 평소 엄한 아버지와 어머니 때문에 의기소침하던 이씨가 열흘 전 부모로부터 심한 꾸지람을 듣자 결국 부모를 살해한 것이었다.
이날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 이씨는 혼자 양주를 반 병 정도 마신 후 망치를 집어들었다고 한다. 그리고는 어머니가 혼자 자고 있는 방으로 들어가 어머니 이마를 세 차례 내리쳐 숨지게 했다. 네 시간 뒤인 오전 9시에는 아버지 방으로 건너가 아버지 이마를 한 차례, 뒤통수를 두 차례 망치로 내려쳐 살해했다.
자신을 낳아준 부모님을 자신의 손으로 살해한 아들은 이성을 잃고 톱과 가위, 칼 네 자루를 이용, 부모의 시신을 토막까지 냈다. 토막 난 어머니 시신과 아버지 시신은 결국 아들에 의해 서울 각 지하철 역 쓰레기통 및 아파트 및 주변 공원 쓰레기장에 나누어 버려졌다. 사건 발생 며칠 뒤 공원 쓰레기장에서 토막 난 시신을 발견한 환경미화원이 경찰에 신고하면서 아들의 ‘패륜 살인’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을까. 왜 부모를 죽여야만 했을까. 이씨가 세상 윤리를 다 저버린 것은 부모에 대한 두려움과 불신을 이겨내지 못한 탓이었다.
당시 수사 결과에 따르면, 이씨는 어릴 적부터 부모에 대해 상당한 ‘공포’를 느꼈다고 한다. 해병대에서 오랫동안 장교 생활을 해온 부친의 군대식 가정교육 방식을 무척 두려워 했던 것이다.
이씨는 해사 출신인 아버지와 명문 여대를 졸업한 어머니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부친은 86년 전역할 때까지 가족과 떨어져 지냈고, 이씨와 형은 어머니와 살았다. 멀리 떨어져 있었던 부모는 평소 자주 다투었고 급기야 각방을 썼다고 한다.
때문에 어머니는 항상 이혼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고, 그런 모습을 곁에서 지켜본 이씨는 언젠가부터 어머니에게서도 ‘공포’를 느꼈다고 한다.
부모와 등을 돌린 결정적 계기는 이씨의 부모가 99년 자신의 이름으로 은행 대출을 받아 가출한 형의 아파트를 사준 일이었다. 그전까지 부친이 바라던 서울대에는 진학하지 못했지만 소위 명문이라 불리는 K대학에 진학했고, 살아오면서 부모님 말 거역한 적 없이 나름대로 효자 노릇을 해왔다고 자위해온 이씨로서는 당연히 분개할 만한 일이었다.
더욱 이씨를 자극한 것은 부모님의 태도였다. 이씨가 난생 처음 어머니 앞에서 불만을 토로하자 어머니는 “정신병원에나 가보라”고 도리어 목소리를 높였고, 3일 후 아버지 역시 “너 같은 놈은 평생 사회생활을 못할 것”이라며 야단을 친 것.
▲ 지난 2000년 5월 ‘과천 친부모 토막살인 사건’은 둘째아들이 무기력에서 탈출하기 위해 저지른 것이었다. 사진은 현장검증 장면. | ||
검사 : 피의자가 즐겨보던 영화 중
이씨 : 이 영화는 ‘폴 슈레더’라는 사람이 각색한 영화로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인 <지하실의 수기>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영화입니다. 제가 도스토예프스키를 읽기 전부터 저의 취향에 맞는 작품이었습니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월남전 퇴역 군인인 택시 운전사로 어린 윤락녀에게 관심을 갖습니다. 결국 이 운전사는 윤락녀를 구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에 미성년자를 고용하는 포주들을 모두 총으로 쏴 죽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너무 좋아했기 때문에 인터넷상에서 ‘Taxi Driver’를 아이디로 사용했던 것입니다.
검사 : 피의자가 가입한 이메일 가입자 정보수정과 홈페이지 자기 소개란을 보면 피의자는 ‘도스토예프스키를 좋아함’이라는 내용을 기재했는데 피의자가 기재를 한 것이 맞는가요.
이씨 : 맞습니다. 사실 저는 카프카와 도스토예프스키를 좋아합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좋아하는 작가를 한 사람만 말하라고 한다면 도스토예프스키를 꼽겠습니다.
검사 :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 중 피의자가 소장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씨 : <죄와 벌>, <지하실의 수기>, <가난한 사람들>, <작가의 일기>, <악령>, <백야>, <영원한 남편>, <백치>, <미성년>, <카라마죠프의 형제들> 등을 갖고 있습니다. 그 중 <지하실의 수기>를 제일 먼저 읽었는데, 그 책이 재미가 있어서 도스토예프스키의 다른 작품들을 계속 읽었던 것입니다.
검사 : <죄와 벌>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은 무엇이었던가요.
이씨 : 경찰에서 일하는 한 사람이 라스콜리니코프의 논문인 ‘범죄론’을 보고 라스콜리니코프를 의심하게 되는 내용입니다. 논문의 내용 중에는 ‘사람을 입법자와 범인(평범한 사람들)으로 나누면서 입법자는 법을 초월한 존재이기 때문에 자신은 법에 구속을 받지 않으며 다만 법에 의한 구속을 받는 사람은 범인이다’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결국 법은 만드는 사람이 따로 있고 그 법을 따르는 사람이 따로 있다는 것이죠. 입법자는 그만큼 능력이 있는 소수이고 능력이 없는 다수는 그 법을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검사 : 법률은 국민들에 의해 선출된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만드는 것으로 결국 국민들의 합의에 의하여 법률이 만들어지는 것이지 않은가요.
이씨 : 군대를 보면 확실히 느낄 수 있습니다. 실제 장교는 규정에 어긋나게 외박도 하고 비품도 마음대로 쓸 수가 있으며 장군이 ‘오늘은 일을 하지 말고 쉬어라’고 말을 하면 병사들은 일을 하지 않고 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