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엣가시 빼려던 ‘검’ 눈만 다쳤다
그 후 5년간 치열한 법정 공방전을 벌인 끝에 지난 2003년 야스다 변호사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검찰이 항소, 아직도 ‘힘겨루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그 후 야스다 진영은 약 1천3백 명 이상의 변호사까지 가세, “검찰이 사형제를 반대하고, 오움진리교 교주 변호를 맡아 검찰을 맹비난한 야스다 변호사를 의도적으로 곤경에 빠뜨리려는 의도가 있다”며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여기에 검찰도 1심에서 짓밟힌 명예 회복을 벼르고 있는 상황이다.
야스다 변호사는 일본 법조계 내에서 ‘절대 야인’으로 꼽힌다. 시민을 옹호하는 자세와 탁월한 변호 기술로 ‘변호사 중의 변호사’라는 칭호가 붙기도 했다.
그가 돌연 일본 경시청에 체포된 것은 98년 12월6일이었다. 그에게 씌워진 혐의는 강제집행방해죄. 야스다 변호사가 고문변호를 맡고 있던 부동산회사 ‘슨즈’사가 채권자로부터 회사 소유 임대 빌딩 임대료를 압류당할 상황에 처하자 회사로 하여금 유령회사(ABC사 등)를 이용해 임대료(총액 2억1천만엔)를 은닉하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야스다 변호사를 경시청에 고발한 것은 동료 변호사였다. 그를 낭떠러지로 민 사람은 정부 특수법인으로 예금보험기구에서 100% 출자한 일본주택금융채권관리기구(주관)의 사장이자 오사카 변호사협회 회장인 나카보 변호사였다.
야스다 변호사는 왜 자신이 검거됐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일단 묵비권을 행사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검찰은 야스다 변호사의 공소 사실을 확정했다. 주요 내용은 이렇다.
“슨즈사는 도심에 약 30채의 임대 빌딩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 아자보 가든하우스와 시로가네다이 선플라자의 임대료가 주요한 수입원이었다. 그러나 이곳 임대 실적이 좋지 않아 슨즈사는 현금 유동성에 큰 위기를 맞았고 순즈사 빌딩을 담보로 돈을 빌려준 ‘논뱅크’에게 이자를 지급하지 못하는 형편에 이르게 됐다.
결국 93년 2월12일 논뱅크가 슨즈사에게 ‘연체 이자도 갚지 못하면 빌딩 임대료를 압류하겠다’고 최후통첩을 해왔다. 당황한 슨즈사 S사장은 야스다에게 해결책을 물었다. 야스다 변호사는 ‘슨즈사는 유령회사를 만들어 그 쪽으로 빌딩 임차권을 넘기고, 유령회사가 입주자에게 빌딩을 재임대한 것으로 서류를 조작하면 압류를 피할 수 있다’고 일러줬다. 또한 임대료 수납 계좌를 유령회사 명의 계좌로 옮길 것을 지시했다.
그로부터 4일 후, 논뱅크는 ‘5일 이내에 연체 원리금을 갚지 않을 경우에는 기한(期限)의 이익을 상실한다’는 최고장을 슨즈사에 보내왔다. S사장은 2월19일 또 다시 야스다 변호사 사무실을 찾았다.
야스다 변호사는 슨즈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임대료 은닉’밖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야스다 변호사는 그 자리에서 입주자에게 임대료 수납처가 변경됐음을 알리는 통지서 견본을 보여주면서, 유령회사의 계좌를 이용하라고 다시 조언했다. 그때까지 갈팡질팡하던 S사장도 야스다 변호사가 일러주는 대로 임대료를 유령회사 계좌에 은닉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검찰은 슨즈사가 강제집행을 피할 목적으로, 임대료를 은닉했기 때문에 강제집행방해죄를 적용했다. 야스다 변호사는 임대료 차압을 막기 위해 순즈사에게 유령회사를 만들어 임대료 은닉을 교사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야스다 변호사는 첫 공판부터 검찰의 기소 혐의를 완강하게 부인했다. 야스다 변호사는 “92년 11월께 슨즈사 사장으로부터 임대료 차압에 관한 얘기를 들은 뒤, 내가 한 일은 슨즈사를 여러 계열사로 분리 독립시킨 뒤 슨즈 본사가 자산을 매각해서 채무를 변제하도록 제안한 것뿐”이라고 주장했다.
야스다 변호사는 “본사로부터 분리된 계열사에 본사 건물 기존 입주자에 대한 임대인 지위를 양도하고, 반면 새 회사는 입주자로부터 받은 임대료 중 대략 60%를 일괄 임대임차료 명목으로 본사에 지불하라고 조언했는데, 이는 어디까지나 법적으로 하자가 없는 임대인 지위의 양도”라고 못 박았다. 거짓 양도가 아닐 뿐만 아니라 애당초 강제집행을 방해할 목적도 없었다는 것이었다.
사건은 이처럼 ‘임차권의 계열사 양도’가 쟁점 화두로 부각됐다. 검찰측 입장대로 임대료 압류를 의도적으로 피하려는 목적에서였는지, 아니면 슨즈사의 생존을 위한 전략 차원이었는지를 놓고 재판 때마다 양측의 팽팽한 공방전이 계속됐다.
접전 양상이 야스다 변호사쪽으로 기운 것은 공교롭게도 검찰이 증거로 내세운 슨즈사의 은행 계좌 입출금 기록 때문이었다. 야스다 변호사가 우연하게 입출금 내역을 확인하던 중 93년 4월30일 다이치은행 교토구 지점에서 2백만엔이 인출돼 논뱅크에 지불된 기록이 눈에 들어온 것이었다.
더욱 이상한 것은 이 2백만엔이 인출된 지점이 지바현 교토구 지점으로 도심과는 떨어진 은행이라는 점이었다. 결국 야스다 변호사는 수소문 끝에 슨즈사 경리를 오랫동안 맡아온 Y양이 교토구에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해냈다.
야스다는 Y양이 무언가 사건 해결의 키를 쥐고 있는 인물이라고 보고 Y양이 왜 회사 돈을 인근 은행에서 인출했는지부터 파악하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논뱅크 입금 계좌 내역에 슨즈사로부터 2백만엔이 입금된 흔적이 없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결과적으로 2백만엔이 인출된 뒤 어디론가 사라진 셈이었다.
야스다 변호사는 슨즈사의 회계장부를 다시 조사했다. 놀랍게도 슨즈사가 일본 수도국과 도쿄 전력에 지불한 수도광열비가 매년 약 9천만엔에 달한 사실이 발견됐다. 더구나 96년 12월17일의 지출 △전기료 64만9천5백72엔 △수도료 35만4백28엔(총 1백만엔), 같은 날 △전기료 1백8만3천4백66엔 △수도료 91만6천5백34엔(총 2백만엔) 등 내역별로 출금된 액수가 모두 ‘우수리’가 없었다는 점이 추가로 확인됐다. Y양이 회사 돈을 빼돌린 뒤 장부를 조작했을 가능성을 점칠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 무렵 도쿄지법에서 재판이 시작됐다. 먼저 검찰측은 슨즈사의 채권자인 논뱅크 담당자들을 소환하고 그들이 당시 슨즈사에 들어갈 임대료를 압류하려 했던 사실을 증언시켰다.
뒤이어 검찰은 Y양을 증인으로 불렀다. 그러나 검찰 신문에서 Y양은 S사장으로부터 슨즈가 입주자로부터 받는 임대료를 슨즈사 계좌가 아닌 신규 개설한 ‘ABC’사 계좌로 입금시키라는 지시를 받고도, 기존 슨즈 계좌에 입금시켰다고 진술했다. ‘야스다 변호사와 S사장이 유령회사 계좌에 임대료를 은닉했다’는 검·경의 수사 결과가 재판부 앞에서 ‘허구’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결론적으로 애초부터 돈을 빼내기로 작정한 Y양은 새로 생긴 ABC사 계좌에 거액을 입금시켰다 인출할 경우, 금방 들통이 날 것을 우려해 기존 슨즈 계좌에 여러 차례에 걸쳐 돈을 입금하고 바로 빼돌린 것이었다.
변호사의 반대신문에서도 Y양의 횡령 사실이 확인됐고, 최종적으로 일본 경시청과 도쿄지검의 자체 조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검찰은 Y양의 업무상 횡령 사실을 그대로 묻었다. Y양의 횡령 사실을 인정할 경우, 야스다 변호사와 S사장의 임대료 은닉 혐의가 부정되고 , 수사가 잘못됐음을 스스로 시인하는 것과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검찰은 “Y양은 자금 압박을 계속 받아온 회사와 자신의 앞날을 생각해 퇴직금을 미리 받은 것이었다”고 주장하는 등 이해하기 힘든 궤변을 늘어놓으며, 선고 전까지 Y양을 옹호했다.
이러던 와중에 검찰측이 공소장에서 ‘실체가 없는 유령회사’라고 단정한 ABC사도 변호인 반대신문에서 실체가 있는 회사로 밝혀진다. 검찰이 재판부에 제출한 슨즈사 회계 기록상에 ABC사의 스탬프 제작비, 전화 가설비 3건 등을 포함해 회사 간판 및 홍보자료 제작비 등이 1년여에 걸쳐 지불된 것으로 기재된 것이었다.
결국 야스다 변호사는 98년 경찰에 체포된 지 5년 만인 2003년 12월24일 동경지방법원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검찰은 즉각 항소했고, 항소심 첫 공판은 아직 열리지 않은 상황이다.
한편 야스다 변호사를 고발했던 나카보 변호사는 주택금융채권관리기구와 관련한 사건으로 기소돼 변호사 자격을 박탈당했다.
현지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사형 폐지와 오움진리교단에 대한 파괴방지법 적용 문제로 검찰과 첨예하게 대립해온 야스다 변호사를 찍어 누르기 위해 의도적으로 ‘표적 수사’를 강행하지 않았겠느냐는 시각이 대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야스다 변호사는 경찰이 오움진리교가 도심에서 가스를 살포할 가능성을 사전에 인지하고서도 이를 막지 못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등 그간 검·경에게는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였다.
야스다 변호사 사건은 수사기관과 변호사들이 세대결을 벌인 상징적 사건으로도 볼 수 있다. 야스다 변호사가 오움진리교 사건 변호인으로 활동하던 도중 전격 구속 수감되고 결국 누명이 벗겨지는 일련의 과정에서 수많은 변호사들이 가세해 응원 사격을 해줬다. 그리고 야스다를 비롯한 변호사들을 이제 검·경과의 2차전을 준비하고 있다. 검찰이나 경찰, 그리고 변호사 모두 ‘법전’을 들고 일하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정의’는 때때로 색깔을 달리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