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보컴퓨터가 두루넷으로 인해 ‘자금난’소문에 시달리고 있다. 사진은 삼보컴퓨터 CF | ||
두루넷 위기를 더이상 방치하기 어렵다는 판단 아래 그룹 계열사로 전격 편입하면서 회생을 모색하고는 있지만, 이미 그룹 전체를 감싸고 있는 어두운 그림자는 갈수록 짙어지고 있다. 최근 금융계에는 삼보그룹이 지난 8월 말 계열사로 편입시킨 두루넷으로 인해 ‘자금난’ 루머가 나돌아 긴장감을 주고 있다.
지난 8월30일자로 삼보컴퓨터는 두루넷과 두루넷의 자회사 코리아닷컴 등 4개사를 공식적으로 계열사로 편입시켰다. 그동안 두루넷은 공식적으로는 삼보컴퓨터그룹의 계열사가 아니었다. 그러다 삼보컴퓨터가 갖고 있던 두루넷의 전환사채 5백92억원어치를 출자전환하면서 종전 14.3%이던 지분이 31.9%로 늘어나면서 이전 대주주이던 소프트뱅크를 제치고 1대주주로 부상한 것이다. 소프트뱅크는 30.6%이던 지분이 20.3%로 낮아졌다.
또 삼보의 계열사인 나래앤컴퍼니도 전환사채를 출자전환해 17.4%의 지분을 가진 3대주주로 떠올라 두루넷은 명실상부하게 삼보의 계열사가 됐다. 계열사의 추가는 대개 뻗어가는 사세의 상징이었지만 삼보에게 두루넷 인수는 ‘악재’였다.
지난 9월27일 KGI증권에선 삼보가 올해 1백68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할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놓았다. 하반기에 두루넷과 나래앤컴퍼니에 대한 지분법 평가손 4백23억원이 반영되기 때문에 지난해 63억7천만원의 흑자에서 올해 적자로 반전될 것이란 얘기다.
시장의 반응은 더 냉랭했다. 증권시장에선 1만1천원대이던 주가가 인수 발표 다음날부터 뚝뚝 떨어지기 시작해 지난 10월 초에는 6천원선까지 떨어지는 등 투자자들은 삼보의 두루넷 인수에 냉담한 반응을 보인 것.
이런 투자자들의 반응은 지난 4월1일 하나로통신과 두루넷의 통합협상 결렬 선언이 나올 때부터 어느정도 예견된 상황이었다. 당시 시장에선 하나로와 두루넷의 통합협상이 성사될 경우 삼보가 두루넷 때문에 져야 할 부담이 상당부분 감소될 것이란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하나로쪽에서 두루넷이 전용회선 서비스 분야를 통합협상과 상관없이 따로 팔려고 한다는 이유로 협상결렬을 선언한 것. 그러자 증권가에선 삼보가 결국 두루넷을 계열사로 편입하고 추가로 투자해야 하는 부담을 지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것으로 예견했다. 1만5천원대이던 주가가 4월1일 이후 1만1천원대로 급락한 것. 그러다 다시 삼보의 주가가 원기회복을 할 무렵 두루넷 인수라는 악재가 다시 한번 터지면서 삼보의 주가를 6천원대로 끌어내린 것.
일단 삼보에선 ‘두루넷에 더 이상의 추가 투자는 없다’며 동요하는 투자자들을 달래고 있다. 하지만 신규지원만 아닐 뿐 갖고 있던 채권을 주식으로 전환해 두루넷을 계열사로 편입한 것은 경영에 대한 책임만 더 무거워진 것이라 투자자들에겐 삼보의 장담이 무의미해진 것이다.
▲ 매각된 두루넷 본사 건물 | ||
때문에 삼보에선 두루넷의 구조조정에 열을 올리고 있다. 건물도 팔고, 전용선 서비스 사업도 SK글로벌에 팔았다. 특히 전용선 서비스는 두루넷 자산의 20%에 해당할 정도로 큰 덩치다. 두루넷은 장부가 4천63억원인 전용선 서비스권을 3천5백56억원에 SK글로벌에 넘겼다.
두루넷의 부채는 지난해 말 1조6천6백여억원에서 지난 상반기 1조3천7백여억원으로 줄었다. 여기에 하반기에 단행한 전용선 매각대금 3천5백여억원과 본사사옥 매각대금 3백80억원, 또 광동축 혼합망을 파워콤에 넘기고 받은 4백50억원 등을 빼면 연말에 부채가 1조원대 이하로 줄 가능성도 있다. 그럼에도 두루넷의 독자생존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게 정설이다.
다른 투자자를 만나거나 통신회사끼리 합병을 통해 생존력을 높여야 한다는 것. 때문에 삼보에선 데이콤과 매각협상에 한가닥 희망을 걸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데이콤쪽에서 실사에 들어갔을 정도로 협상은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이 협상도 낙관하기에는 이르다.
일각에선 데이콤이 구조조정 결과 가입자망만 있을 뿐 이렇다할 자산이 없는 두루넷의 ‘실체’를 확인하고는 실망했다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빈껍데기 회사를 인수해서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는 것이 데이콤 내부의 목소리다. 결국 데이콤에 회사를 팔려는 삼보의 꿈은 실현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IT붐이 한창이던 2~3년 전만 해도 초고속 통신망 서비스회사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 대접을 받았다. 재벌회사들마다 하나로, 두루넷, 온세통신 등 통신서비스 회사 지분 인수를 위해 위장 계열사를 내세우며 각축을 벌였던 것.
하지만 IT붐이 꺼진 지금 초고속통신망 서비스회사의 지분 자체가 모기업의 목줄을 죄어오는 현실이 돼버렸다. 문제는 삼보컴퓨터가 두루넷을 계열사로 포함시킨 뒤 과연 이 회사를 회생시킬 수 있을 것이냐 하는 부분이다.
현재로선 매각 이외엔 묘약이 없고, 사업적인 측면에서는 재기 가능성이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두루넷의 경우 이미 알짜사업 부문인 전용회선 등이 모두 팔린 상황이고, 회생을 위해서는 절대적인 자금수혈도 국내외 투자자들의 냉담한 반응으로 사실상 진전이 없다.
한가닥 기대를 걸어온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도 이미 두루넷에 대한 기대를 포기한 지 오래된 것으로 전해진다. 게다가 일본시장의 침몰로 손 회장은 빈털터리가 될 위기에 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