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규제’ 비난에도 규제 만들더니 이행은 ‘나 몰라라’
특히 국표원은 신체에 직접 부착해 사용하는 마사지 기기가 안전인증을 받지 않은 채 수십만 대 판매되는 동안 규제 미이행 사실조차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표원은 이중규제를 만들었다는 비판과 함께 규제 제정에만 집착, 제정 이후 관리에는 소홀했다는 지적을 피하지 못하게 됐다.
‘일요신문’이 단독 입수한 안전인증 미이행 소형 배터리 목록에 따르면 국표원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중심으로 화제가 된 A 업체의 ‘전기 근육 자극(EMS)’ 미니 마사지 기기가 소용량 배터리 안전인증을 받지 않은 채 판매됐다는 사실을 지난 10월에야 파악한 것으로 드러났다. A 업체가 지난 7월 이 마사지 기기를 출시한 것을 고려하면 약 3개월 동안 미인증 배터리 장착 기기가 시장에 팔려 나간 셈이다. 출시 첫 달에만 30만 대가 넘게 팔린 것을 감안하면 지금까지 이 마사지 기기의 판매는 엄청날 것으로 보인다.
국가기술표준원이 소용량 배터리에 대한 안전인증 규제를 제정하고도 규제 미이행 제품에 대한 제재에는 소홀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요신문
앞서 국표원은 2016년 4월 에너지 밀도가 ‘400와트아워퍼리터(Wh/L) 이상’이던 전지(충전지) 인증 규제 대상을 ‘400Wh/L 이하’로 변경, 지난해 1월 1일부터 소용량 배터리 제품도 시험인증 기관에서 인증을 받게 했다. 이전까지는 에너지 밀도가 400Wh/L 이하인 배터리는 국제표준인증 외에 별도 인증을 받지 않았다(‘일요신문’ 제1377호, [단독] ‘소용량 배터리 규제’ 시험인증기관만 배불린다 기사 참조).
국표원의 이 같은 조치는 국제전자기기 상호 인증제도(IECEE)에서 이미 인증한 배터리를 국내에서 또 인증받으라는 것이어서 이중규제라는 비난이 불거졌으나 국표원은 지난해 규제 시행을 밀어붙였다. 국표원 관계자는 지난 10월 4일 열린 국무조정실 규제 혁신 관련 비공개 회의에 참석해 “우리나라는 특히 안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 에너지 밀도가 낮거나 국제인증을 받은 배터리인지 아닌지 관계없이 규제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며 “소용량 배터리 규제는 안전인증을 받지 않을 시 국내 판매 자체가 불가능하도록 하는 것으로 국민 안전을 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A 업체의 마사지 기기 사례에서 볼 수 있듯 국표원은 규제 미이행 감시 등 사후관리에 허술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가로 세로 각각 4cm 크기인 A 업체의 EMS 미니 마사지 기기에는 출력전압 3.7볼트(V), 80밀리암페어시(mAh) 용량의 배터리가 장착돼 에너지 밀도 400Wh/L 이하다. 이는 국표원이 제정한 안전인증 규제 대상이지만, A 업체는 이를 따르지 않았다.
다만, A 업체의 마사지 기기에 장착된 배터리는 외국 기업에서 제조한 것이며, 마사지 기기 또한 중국에서 제조해 들여오는 제품이다. 이 때문에 국표원은 관리 소홀 잘못을 관세청으로 떠넘기고 있다. 규제를 제정하고 근거법을 마련한 것은 맞지만, 배터리가 수입제품이어서 이를 감시하지 않은 것은 관세청 잘못이라는 것이다.
국표원 제품안전정책국 관계자는 “소용량 배터리 안전인증 규제를 새로 만들면서 수입·판매 제품의 경우에도 기존의 전파 KC인증에 배터리 KC인증을 모두 받아야 반입해 판매할 수 있도록 했다”면서 “배터리 안전인증을 받지 않은 수입제품에 대해선 일차적으로 관세청에서 담당한다”고 말했다. 반면 관세청 관계자는 “세관에서 하는 수밖에 없다는 국표원 설명은 잘못을 완전히 떠넘기는 처사”라며 “수입해 들어온 전자제품의 경우 관세청은 국표원이 통관 요건으로 넘겨준 사안에 비춰 해당 서류만 확인한다”고 반박했다.
국표원은 지난 10월 초에야 현장조사를 진행, 같은 달 16일 배터리 미인증에 따른 불법 유통을 확인했지만 현장 조사 결과가 나온 지 한 달 만인 지난 16일에야 A 업체를 경찰에 고발했다. 국표원 제품시장관리과 관계자는 “불법 유통이 확인돼 법에 따라 행정조치하는 것”이라며 “전산 문제가 생겨 고발조치가 늦어진 것이지 다른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배동주 기자 ju@ilyo.co.kr
국표원 방치하는 동안 관련 업체는 KC인증 받아 국표원이 A 업체를 소용량 배터리 불법유통 업체로 지목하고도 고발조치를 미루는 사이 A 업체가 KC인증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A 업체는 국표원 의뢰를 받은 한국제품안전관리원이 현장조사를 벌인 후 ‘A 업체가 소용량 배터리를 불법유통했다’는 결론을 내린 지난 10월 16일 이후 일주일여 만에 KC인증을 받고 재판매에 나섰다. 한국제품안전관리원에 따르면 A 업체는 지난 7월 EMS 미니 마사지 기기를 출시한 후 지난 10월 24일까지 기기 내 소용량 배터리 안전인증을 고의 누락해 안전확인 신고를 하지 않았다. A 업체가 배터리 납품은 물론 조립까지 중국에서 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방식으로 진행하는 만큼 A 업체는 관련법상 배터리에 대한 국내 안전인증을 추가로 진행해야 한다. 그러나 A 업체는 지난 7월 판매를 시작한 후 3개월여가 흐른 지난 10월 24일 해당 배터리에 대해 국내 안전인증을 진행했다. 한국기계전기전자시험원(KTC)은 안전성 ‘적합’ 판정을 내렸다. A 업체 관계자는 “배터리 안전성의 문제는 애초에 없는 안전한 제품이라는 것”이라며 “국제전자기기 상호 인증제도(IECEE)에서 이미 인증한 배터리를 계속 사용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A 업체는 배터리와 마사지 기기를 수입하는 과정에서 통관 문제도 겪지 않았다. 배터리 업계 한 전문가는 “IECEE에서 이미 인증한 배터리인 경우 업체가 안전상 위험이 없다고 판단, 국표원 눈을 속이는 사례가 더러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에너지 밀도가 낮은 소용량 배터리는 화재나 폭발 위험이 없어 국표원도 쉬쉬하는 분위기”라고 했다. A 업체는 KC인증을 받은 이튿날인 지난 10월 25일 ‘품절’이라고 밝혔던 공고를 내리고 기기 재판매에 나섰다. 최근엔 마케팅을 오히려 강화,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 A 업체 관계자는 “현재까지 판매량은 밝힐 수 없다”면서 “배터리 불량으로 인해 화재나 폭발이 발생했다는 신고는 단 한 건도 접수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