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없이 어쩌라고…’ 구본준 계열분리, 그룹 조직개편과 맞물려 ‘난항’
비록 VC사업본부가 적자 행진 중이지만 구 부회장이 애착을 보여온 사업이다. 하지만 VC사업본부에서 매출 기여도가 가장 큰 배터리 사업이 빠지면 매력이 떨어진다. 구 부회장에겐 배터리 사업을 뺀 VC사업본부를 안아 투자에 나설 여력도 없다. 권 부회장은 오히려 VC사업을 LG그룹 신성장동력으로 지목해 투자확대에 나섰다.
지난 12일 재계에 따르면 권영수 부회장은 LG전자 VC사업본부 내 배터리 사업을 LG화학에 복속하는 조직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7월 13일 ㈜LG 부회장에 선임된 후 진행한 조직개편 준비 작업에 따른 결정이다. 권 부회장은 지난 7월 LG디스플레이 파주사업장 방문 이후 LG화학·LG이노텍 등을 잇달아 방문, VC사업본부의 차량용 배터리 사업 이전을 확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3년 신설한 VC사업본부가 차량용 배터리를 GM에 납품하는 것 외 이렇다 할 성과를 올리지 못한 게 LG화학으로 사업 복속 근거가 된 것으로 보인다. LG그룹 전체서 차량용 배터리 공급계약은 GM을 제외하고 대부분 LG화학과 직접 계약으로 이뤄진다.
구본준 부회장의 LG그룹 계열분리가 그룹 조직개편에 맞물려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진은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2018의 LG전자 부스. 연합뉴스
사업 방향을 결정하는 지주회사 ㈜LG 권영수 부회장의 VC사업본부 조직개편안은 LG전자 조성진 부회장의 결정만 앞둔 상태다. 재계에서는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권 부회장에게 조직개편 권한을 넘긴 만큼 차량용 배터리 공급 일원화가 이뤄질 것으로 본다. 구광모 회장은 권영수 부회장의 ‘성과중심’ 성향을 신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구광모 회장이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및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두루 거친 권 부회장을 신임하고 있다”면서 “LG그룹 신사업 발굴을 포함한 조직개편 준비 작업이 상당 부분 권 부회장의 분석 결과로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구본준 부회장 입장에서 LG전자 VC사업본부의 배터리 사업 분리는 퍽 난감한 일이다. VC사업본부는 구 부회장이 LG전자 대표이사에 올라 신설한 조직으로 구 부회장 계열분리 시나리오의 한 축이었다. 2013년 LG전자 내에 전장사업을 담당하는 VC사업본부를 신설한 사람이 당시 구본준 LG전자 부회장이다. 구본준 부회장은 LG전자를 중심으로 한 자동차 부품 사업에 남다른 관심을 기울였다. 구 부회장이 VC사업본부를 안고 계열분리 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 이유다.
그러나 구 부회장이 배터리 사업이 빠진 VC사업본부를 안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배터리 사업은 LG전자 VC사업본부 매출의 약 60%를 차지한다. 남은 40% 매출이 VC사업본부가 생산·판매하는 차량용 디스플레이와 오디오, 모터,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ADAS) 등인데, 적자다. LG전자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VC사업부는 모바일 사업과 함께 LG전자 전체 실적을 깎아내리고 있다. 지난 2분기 VC사업본부는 매출액 8728억 원, 영업손실 325억 원을 기록했다. 2016년 632억 원 적자였던 VC사업본부는 지난해 1011억 원으로 적자폭이 확대했다.
구본준 LG 부회장이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에서 열린 김동연 현장소통 간담회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LG그룹 관계자는 “계열분리를 위해선 미래산업이라는 매력이 있다 하더라도 확실한 수익구조가 있어야 하는데 VC사업본부 매출 60%가량을 차지했던 차량용 배터리 공급이 빠진 상태로 구본준 부회장이 적자인 VC사업본부를 가져가기는 쉽지 않다”면서 “LG전자 VC사업본부는 LG화학에서 하던 차량용 배터리 공급에서 중간 마진만 챙기는 식으로 가져가는 데 그쳤고, 시장 확대는 GM 전기차 볼트EV 배터리 납품 외에는 이뤄지지 않았다. 시장 확대 자체가 안 되는 상황에서 사업 성과를 따지는 권영수 부회장에겐 원상복귀가 나아 보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LG에서 차량용 배터리 공급을 받는 대부분 완성차 업체는 LG화학과 직접 계약한다.
구본준 부회장의 VC사업본부 계열분리가 어려움을 겪으면서 LG이노텍이 대안으로 떠오르지만, 이마저 쉽지 않다. LG그룹이 자동차 전장부품 사업을 신성장동력으로 지목하고 있다는 점엔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차량용 통신부품과 일반 모터를 생산하는 LG이노텍은 LG전자 VC사업본부와 자동차 부품사업에서 시너지 효과를 내야 하는 핵심 계열사로 꼽힌다.
이에 구 부회장이 가진 ㈜LG 지분 7.72%로 LG이노텍 지분을 확보해 가져갈 수는 있겠지만 실제 계열분리로 이어지긴 쉽지 않을 것이란 의견이 나온다. 실제로 LG그룹은 LG전자 전장 분야에 대한 대규모 투자에 나서고 있다. 올해 하반기 예정된 VC사업본부 투자 예정 금액은 1조 3500억 원이다. LG전자 전체 매출의 60%를 넘게 차지하는 홈어플라이언스(H&A)사업본부 7679억 원, 홈엔터테인먼트(HE)사업본부 1632억 원 투자 계획보다 약 1.5배 많은 수준이다.
현재로선 도전적인 성향을 지닌 구 부회장의 성격으로 미루어 그룹에 남기보다 보유하고 있는 ㈜LG 주식을 팔아 LG상사 지분을 확보할 가능성이 유력하다. LG이노텍은 LG그룹의 신성장동력 핵심 계열사인 동시에 구 부회장의 자금력만으로 안정적인 지배구조를 확보하기도 어려운 게 사실이다. 반면 LG상사는 발행주식 수가 많지 않아 9000억 원가량만 투자해도 지분 100%를 확보할 수 있다.
재계 관계자는 “LG그룹 계열분리는 이른바 그룹 최고 결정 사안이니만큼 구광모 회장과 구본능 회장, 구본준 부회장 등으로 이뤄진 가족모임에서 결정된다”면서 “신성장동력 등을 감안해 권 부회장이 추진 중인 조직개편과 함께 진행될 것”이라고 했다. 한편 ㈜LG 관계자는 “조직개편 및 구 부회장 계열분리와 관련해선 아는 바가 없다”고 했다.
배동주 기자 j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