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 회장은 연설 취소···“우리가 남이가” 전경련과 재벌 총수 간 어색한 조우 연출
보아오포럼 서울회의에서 환영사 중인 반기문 이사장. 연합뉴스.
보아오포럼 지역회의가 최초로 서울에서 열린 20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 최태원 SK회장 등 대기업 관계자를 비롯한 800여명이 참석했다.
보아오포럼은 지난 2001년 ‘아시아판 다보스포럼’을 표방하며 창설된 지역 경제 포럼으로, 세계 각국의 정재계 인사들이 모여 아시아의 경제 현안을 논의한다.
지난 4월 중국 하이난성 충하이 보아오에서 열린 18회 포럼에는 시진핑 중국 주석까지 참석한 가운데 정의선 부회장과 최태원 회장, 권오현 회장 등 4대그룹 주요그룹 경영진이 총출동해 관심을 모았다.
지역회의는 그동안 런던, 시드니 등에서 열리다가 이번에 서울에서 처음 열렸다. 800여명이 참석하는 등 역대 최대 규모를 자랑했지만 재계 총수들은 오히려 참석을 꺼리는 모습을 연출했다.
실제로 정의선 부회장은 개막식에 불참했으며, 최태원 회장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차남 김동원 한화생명 디지털혁신실 상무는 연설을 취소했다. 전날 열린 환영만찬에선 전경련회장인 허창수 GS그룹 회장이 불참하기도 했다. 회의 후원사인 삼성과 SK그룹도 중국본사사장이 참석하고 재벌총수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허 회장 대신 허세홍 GS글로벌 사장만 참석했을 뿐이다.
일각에서 이번 행사의 주최가 전경련인데다가 이사장은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인 점이 재벌총수들의 참석에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청문회에 참석한 재벌총수들의 모습.
전경련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에 연루되면서 적폐로 불리며 여론의 집중포화를 받았다. 그 결과 SK, 삼성, LG, 현대차 등 대기업 회원들이 전경련을 탈퇴하고 전경련 회장인 허창수 GS그룹 회장만 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다.
심지어 올해 남북정상회담 등 남북협력기류 중에도 재계 방북단에 전경련과 회원들이 제외되면서 정부와 전경련의 불편한 동거는 계속되었다.
최근 정부가 전경련 회원들에게 대북사업 협력 요구 등으로 사이가 회복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있었지만 보아오포럼에서 그 기대는 여전히 멀기만 했다는 지적이다.
재계 관계자는 “전경련이 재벌총수들과의 조우와 협력을 내심 기대한 것은 맞다. 대부분 불참한 점은 아쉽지만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라 설명했다. 특히 “보아오포럼의 규모와 성격상 이번 회의는 의미가 있다”면서도 “반기문 이사장과 전경련에 대한 정부 측 시선이 아직 곱지만은 않을 수 있어 (재벌총수들이)이를 의식한 행동들일 수 도 있지 않겠냐”며 말을 흐렸다.
적폐로 낙인찍힌 전경련과 마찬가지로 반기문 이사장 역시 지난 대선과정에서 대통령 후보 불출마전까지 문재인 대통령 측과 날선 공방이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재벌총수들의 모습.
한편, 전경련은 지난 1961년 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장의 주도로 창설된 국내 대표적인 경제단체다. 전경련은 재벌총수와 정부간 정경유착의 상징으로 비하되기도 했지만 한국경제 발전에 기여한 공로 등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단체로 유지되어 왔다.
하지만 회원사들의 회비와 임대수입으로 운영되는 전경련은 대기업들의 회원사 이탈로 전체 80% 수준에 달했던 삼성, 현대차, SK, LG 등 회비가 빠졌다. 또 신축 빌딩에서도 잇따라 사무실을 이전하며 임대 수입마저 급감하는 등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삼성증권 IT 부문이 전경련 회관으로 사무실을 옮겨가자 삼성과 전경련의 관계 재개를 예측하기도 했다. 이에 삼성그룹 수뇌부가 보아오포럼에 공식 참석할 가능성도 높게 점쳐졌지만 결국 불발됐다. 전경련의 위상이 사뭇 과거와 다르다.
서동철 기자 ilyo100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