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 전 이사 “이사였다는 이유만으로 엄청난 공격에 시달려”...재단 해산 시 직원들 고용관계 자동 종료
화해치유재단 이사였던 A 씨가 던진 일성이다.
‘한일 위안부 합의’를 토대로 설립된 ‘화해치유재단’이 출범 2년 4개월 만에 공식적인 해산 절차에 돌입했다. 설립 직후부터 끊임없이 잡음에 휩싸인 재단은 오래전부터 사실상 기능이 마비된 상태다. 하지만 일본 정부 출연금 10억 엔 처리, 법적 해산 절차 등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남아 있어 완벽한 해산까지는 앞으로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여기에 재단 소속 직원들의 거취도 관심이 집중되는 사안이다. 화해치유재단은 불과 지난해 초까지 신입 정규직 직원을 선발했다.
지난 21일 정부가 한일 위안부 합의에 기초해 설립된 화해치유재단의 해산을 발표했다. 사진=박혜리 기자
11월 21일 정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화해치유재단의 해산 결정을 공식 발표했다. 하지만 재단 해산 절차와 일정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된 부분은 없다. 여성가족부는 “재단을 둘러싼 현재 상황 및 그간의 검토 결과를 반영하여 화해치유재단 해산을 추진하고 재단 사업을 종료하기로 했다”며 “이번 해산 추진 발표 이후 청문 등 관련 법적 절차를 밟아나갈 예정이며, 재단 잔여기금에 대해서는 지난 7월 편성된 양성평등기금 사업비 103억 원과 함께 합리적인 처리 방안을 마련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화해치유재단의 해산이 일반적인 재단 해산보다 길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남은 일본정부 출연금 58억 원과 사업비 103억 원의 처리 방식에 대해 벌써 의견이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여가부는 아직 ‘일본정부와의 협의를 통해 출연금 반환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지만 일본이 이를 거부할 것이라는 추측이 우세하다.
문해수 행정사는 “재단 해산까지는 채권·채무 공고, 청산등기 등 여러 법적 절차가 있어 보통 4개월 정도 걸리지만, 화해치유재단의 경우 재산 처리 방식에 논란이 있는 만큼 6개월~1년 정도 걸릴 거로 예상한다”며 “재단 해산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잔여 재산 처분이고 나머지는 사실상 행정적인 절차다. 재산 처분에 있어 담당 행정기관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논란이 되는 사안인만큼 이 과정에서 담당 기관도 굉장히 신중하게 접근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의 해산 발표 직후 본격적인 해산 절차가 시작된 만큼 재단에 남은 직원들의 향후 거취에 대한 궁금증도 적지 않다. 여가부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화해치유재단 내에는 재단 고용직원 4명, 외교부 파견직원 1명이 재직 중이다. 재단 이사진은 지난해 12월 전원 사퇴해 지금은 정무직 공무원 2명만 당연직 이사로 남아 있다.
화해치유재단이 고용한 직원들은 모두 정규직으로 재단은 지난해 2월까지 서류·면접전형을 치르는 공채 채용을 통해 신입 직원을 모집했다. 주로 여성 권익, 역사 및 국제관계 분야 학위가 있거나 관련 분야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11월 27일 기자가 서울 중구 화해치유재단 사무실에 방문하니 모든 직원이 출근해 근무 중이었다. 향후 거취에 대해 묻자 한 재단 관계자는 “여가부로부터 해산 결정에 대한 통보를 받았을 뿐 거취에 대해서는 아직 들은 바가 없다”며 “지금 상황이 직원들로서는 어려울 수밖에 없지만 일단 관계부처와 계속 협의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여가부에 따르면 화해치유재단이 해산되면서 직원과 재단의 고용관계가 자연스럽게 종결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재단은 채용공고를 통해 신입직원의 임용 기간을 ‘임용일로부터 재단 해산 시까지’로 규정하고 있다. 단 정부 부처에서 파견된 직원과 이사진은 재단 해산 시 본래 근무처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여가부 관계자는 “일단 청산이 사업장의 폐지를 의미하다 보니 고용관계 종결이 진행될 거 같다. 시기와 방식에 대해서는 좀 더 검토가 필요하다”며 “설립허가취소처분이라는 것이 불이익 처분이다 보니 행정법상 일단 당사자들의 의견을 청취하는 청문절차를 추진하고 이후 설립허기취소처분 절차에 본격적으로 돌입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재단 해산이 결정되었다는 소식에 전 화해치유재단 관계자들은 충분히 예상했다는 반응을 나타낸다. 또 현 정부가 한일 위안부 합의에 문제가 있다는 판단 하에 재단 해산을 결정한 만큼 소모적인 논쟁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한일합의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힐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전 화해치유재단 이사 A 씨는 “외교부에서 TF를 꾸려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한 진상조사를 진행할 때부터 사실 이사들은 재단 해산을 예상했다. 화해치유재단은 한일합의를 토대로 한 재단이기 때문에 합의 자체에 대한 진상조사가 시작되면서 기초적인 업무도 수행할 수 없는 분위기가 됐다”면서 “지난해 이사진들이 단체로 사임한 후 여가부에서 새로운 이사를 구하려고 했으나 찾지 못한 걸로 알고 있다. 재단 이사였다는 이유만으로 엄청난 공격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한일 위안부 합의는 분명 내용·절차 면에서 부족했고, 사과는 한 번만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그렇기에 재단 이사들은 일본정부에 적극적인 합의 이행을 요구하고자 했었는데 국내 환경이 너무 좋지 않으니 무엇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토로했다.
이어 A 씨는 “피해 할머니들을 만나 뵙고, 의견을 확인해보니 ‘합의는 미흡하지만 금전적인 배상은 받아들이겠다’는 의견이 많으셨고 ‘피해자중심주의’의 원칙에 따라 34명의 할머니께 합의금이 지급됐다. 하지만 일부 단체에서 마치 재단이 분별력이 없는 분들을 꼬드겨 합의금을 받도록 했다고 몰아갔다”며 “할머니들께서 계신 후원시설에 찾아 뵙겠다고 공문까지 보내며 요청했지만 시설에서 거절했는데, 일부 언론에는 재단에서 찾아뵙지도 않았다고 보도됐다. 재단이 할머니들을 만나뵙는 걸 할머니가 아닌 시설에서 컨트롤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혜리 기자 ssssch33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