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구조사 제도의 허점에서 기인...병원 인건비 때문에 선호하지만, 사고시 책임엔 ‘뒷짐’
서울 송파의 A 병원은 지난 6월 수술실 보조로 ‘수술실 경력자 우대’를 조건으로 응급구조사 채용 공고를 냈다. 경기도에 있는 B 종합병원도 최근 구직사이트에 ‘수술실 PA(Physician Assistant) 채용’이라는 제목의 공고를 냈다. 모집부서는 간호부 수술실, 자격요건은 ‘1급 응급구조사 또는 간호조무사’로 내걸었다.
이들 병원뿐만이 아니다. 종합병원이나 의원급 병원에서조차 응급구조사들의 수술실 채용은 흔하게 볼 수 있다. 최근 응급구조사 채용공고를 내건 병원 관계자는 “환자 이송 때문에 응급구조사를 뽑는다. 수술을 마친 뒤에 X-레이를 찍기 위해 병동에 올라갈 때 환자를 옮겨야 해서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병원들의 수술실 응급구조사 채용에 대해 간호사들은 ‘불법 의료행위 자체’라고 강하게 입을 모았다. 간호사 A 씨는 “응급구조사는 현장 이송체계를 담당해야 할 주역들이다. 병원 내 수술실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며 “환자에게 주사를 놓을 수 없는 응급구조사들이 수술실에 있다는 점 자체가 불법이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응급구조사는 응급환자가 발생한 현장에서 상담과 구조, 이송 업무를 수행하는 직업이다. 이들의 업무범위가 심폐소생술을 위한 기도유지, 정맥로 확보, 인공호흡기 사용, 일부 약물투여(이상 1급) 등 15가지로 제한된 까닭이다.
대한간호협회 관계자도 “응급구조사는 응급상황 발생시에 응급차 안에서 필요한 인력”이라며 “병원 내에는 간호사가 있기 때문에 응급 구조사를 뽑을 이유가 없다. 응급구조사가 중환자실과 수술실에서 일하는 것은 전부 불법”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병원들은 응급구조사의 수술실 보조 채용을 관행처럼 여기는 눈치다. 때문에 응급구조사의 불법의료 행위에 대한 제보도 이어지고 있다. 앞서의 간호사 A 씨는 “응급구조사들이 봉합수술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며 “의사들이 메인 수술을 하면 뒤처리는 손발이 맞는 구조사들이 처리했다. 간단한 수술을 하면 의사가 ‘니네들이 마무리해라’고 하면 구조사들이 봉합을 했다”고 주장했다.
봉합수술을 진행한 응급구조사들이 처벌을 받았던 사례도 있다. 2011년 8월 충북의 종합병원에서 한 응급구조사는 의사의 지시에 따라 얼굴이 찢어진 40대 남성환자에게 봉합수술을 시행했다.
결국 법원은 병원에 과징금 처분을 내렸다. 의사는 의료법 위반 교사죄로 벌금형과 행정처분을 받았다. 응급구조사에게는 의료법 위반죄로 기소유예 처분이 내려졌다. 2012년 11월 5일 제주지방법원은 봉합수술을 시행해 의료법위반 혐의로 기소된 응급구조사에 대해 벌금 300만 원을 선고했다.
국회 보건복지위 관계자는 “응급구조사의 업무범위가 바뀌어야 할 필요가 있다. 2003년 이후 15년 넘게 바뀌지 않았다”며 “다른 의료직종은 의료 행위에 대한 ‘업무 일체’로 규정한다. 하지만 응급구조사는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구체적인 행위만 적시한다. 그래서 환자들의 응급구조사에 대한 고소고발도 많이 일어난다”고 밝혔다.
응급구조사들 사이에서도 수술실 근무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대형 포털 사이트의 응급구조사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응급 구조사들의 수술실 근무는 합법인가”라고 묻는 내용의 글이 종종 올라온다. 대부분의 커뮤니티 회원들은 “거의 전부 불법이다. 업무범위 외의 일은 불법이다”고 답변했다.
응급구조사들의 수술실 근무는 응급구조사 제도의 허점에서 기인한다. 응급구조사는 1995년 성수대교·삼풍백화점 붕괴 등 대형 재난 이후 응급 의료 시스템 구축을 위해 탄생한 직업이다. 하지만 응급처치 상황에서도 일정한 범위의 의료행위가 제한된 것은 물론 병원 내의 진료보조마저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병원들은 인건비 절감을 위해 응급구조사 채용을 급격하게 늘렸다. 상당수의 응급구조사들이 응급실은 물론 중환자실과 수술실을 출입하게 된 배경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의사는 “응급구조사들의 수술실 출입을 완전히 불법이라고 볼 수는 없다. 지역의 중소종합병원이나 의원급에선 같은 인건비용이라면 간호사보다 응급구조사를 선호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응급구조사와 함께 일하는 간호사들의 불만은 상당하다. 간호사 A 씨는 “병원에서 의사들이 응급구조사에게 주사를 통한 약물 투여를 시키는 경우가 많다”며 “응급구조사들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 약제에 대한 급여를 청구할 권한이 없다. 하지만 응급구조사들이 간호사와 의사의 아이디를 교묘히 써서 병원 심사과에 올리는 경우가 많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심평원 관계자는 “일단 응급구조사의 행위 자체가 위법인지 여부가 정해져야 한다. 응급구조사들의 아이디를 도용한 급여 청구가 부당하다고 전제하고 답변하기는 어렵다”며 “과거에 의사나 간호사나 의사 아이디를 이용해 급여를 부당청구한 사례도 없다. 의료법이나 응급의료법상 위법이 확인되면 심평원에서 부당 청구를 적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