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년생 ‘이창호 키드’ 새로운 도전…“바둑 강의, 내가 제일 잘해! 차원 다른 해설 보여주겠다”
동영상 플랫폼인 ‘유튜브’에 동영상을 올리는 이들을 유튜버(Youtuber)라고 부른다. 유튜버로 활동하는 프로기사 진동규 7단.
[일요신문] “프로기사 해설은 너무 어렵습니다. 해설에 대한 갈증이 저를 이 길로 이끌었어요. 군 제대 후 보급현장을 찾아다니며 많이 고민하고 연구했습니다. 바둑강의는 내가 제일 잘한다고 자부합니다.”
동영상 플랫폼인 ‘유튜브’에 동영상을 올리는 이들을 유튜버(Youtuber)라고 부른다. 게임이나 보드게임과 같은 분야는 의외로 유튜브와 궁합이 아주 잘 맞는다. 프로기사가 드문 유튜브 세계에 진동규 7단은 ‘동규의 바둑’이란 채널을 열었다. 스스로 보급기사라고 말하지만, 실력은 현역 바둑 유튜버 중에서 가장 세다. 바둑계 황금세대를 경험한 이창호 키드의 새로운 도전이다.
진동규는 부산 사람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허장회 도장에서 서울 생활을 시작해 고2가 되어 입단했다. 대략 1984년부터 1991년 사이 태어나 이창호를 꿈꾸며 바둑을 배우고 입단한 세대를 ‘이창호 키드’라고 부른다. 86년 태어난 진동규도 대표적인 이창호 키드다. 진동규도 한창 바둑을 배우던 시절 ‘이창호 9단, 연 수입 10억 원 넘겨’라는 제목을 스포츠신문 1면에서 봤다고 한다. 당시 10억 원이면 야구스타나 축구 톱랭커가 받았던 연봉이다.
동규의바둑 유튜브 채널 홈.
90년대 중반 바둑교실은 아이들로 넘쳐났다. 이들이 입단한 2000년 초반은 한국기원이 주최한 본격 기전만 15개 이상이었고, 각종 세계대회와 이벤트 대회도 많았다. 입단을 하면 10대라도 예선과 본선 대국료만으로 일반 직장인 연봉은 벌었다. 프로기사는 사회적으로 존중받았고, 경제적으로 풍요로웠다. 진동규는 “내가 입단하고 10년 정도는 승부에만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지금 후배들의 현실은 그때와 다르다. 내 또래가 바둑계 호황을 누린 마지막 세대였다”라고 말한다.
진동규도 각종 대회 본선과 바둑리거로 활약했고, 한국랭킹도 22위까지 올랐었다. 사실 유명해진 건 승부사 시절보다 군 제대 후 찍은 ‘바둑공식’이란 바둑TV 프로그램에서다. 쉽고 독특한 강의로 마니아층이 꽤 있다. 지역 문화센터 바둑강좌에선 아예 진동규 강좌를 그대로 틀어주며 강의하기도 한다.
경제적인 이유로 유튜버 세계로 뛰어들었냐고 묻자 진동규는 “언젠가는 돈이 되겠지만, 수입을 기대하고 시작한 건 아니다. 기존 바둑TV 강좌는 시간 제약이나 내용면에서 한계가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 강좌를 마음껏 해보고 싶었다. 중국시장도 개척할 생각이다. 내 동영상 강좌에 중국어 자막을 달아 공개할 중국 플랫폼을 찾아보고 있다. 중국어는 이미 몇 년째 공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유튜브강좌를 직접 편집하고 있는 진동규 7단.
유튜브 강좌에 나온 바둑공부 팁을 묻자 “인터넷기력 5단 이하는 정석 공부를 할 필요가 없다. 주변 배석을 잘 살피고 방향만 맞게 두면 충분하다. 프로나 인공지능을 흉내 내지 마라. 타개와 수읽기가 강한 고수들의 행마로 따라두면 망하는 경우가 많다. 공격주도권을 갖는 것이 아마추어 바둑에선 승률이 높다. 굳이 바둑공부를 하려면 매일 10분 정도 쉬운 사활 3~4개를 풀고, 한판이라도 바둑을 ‘천천히’ 두라고 권한다. 연구생이나 7단 이상 고수라면 한 수 두면서 수마다 몇 집 가치를 가지는지 계산하는 공부를 해야 한다. 일반인에겐 권하고 싶지 않은 방식이다”라고 설명한다.
‘동규의 바둑’ 유튜브 강좌는 대부분 10분 내외 분량이라 시간에 큰 부담이 없이 볼 수 있다. 바둑강좌 외에 바둑계 이슈와 뒷이야기도 적지 않다. 진동규는 “어려운 수들을 쉽게 풀어서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내용으로 만들어 업로드한다. 이론을 공식화해서 바둑에 대해 체계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방식이다. 감히 최고의 강의라고 자부한다. 직접 자막과 음악을 삽입하고, 영상편집에도 노력하고 있다. 15분짜리 영상에 편집하는 시간이 3시간이 넘을 정도로 심혈을 기울여서 만들고 있다”라고 말했다.
유튜브 채널 운영 외에도 일상은 아주 바쁘다. 다른 프로기사들은 쳐다보지 않는 유치원 바둑강사나 초등학교 방과후 학교 선생님도 스스럼없이 한다. 지역 바둑협회 노인그룹지도나 바둑도장 연구생지도 등 다른 일정도 꽉 차있어 요즘은 대회에 나갈 시간이 없는 형편이다. “가끔 예비군 훈련으로 다른 프로기사에게 제 일정을 대신 부탁하는데 다들 굉장히 힘들어해요. 어떻게 하냐고 묻는데 전 아무렇지도 않아요. 바둑을 가르치는데 가장 중요한 건 인내심입니다”라며 웃는다.
유치원 바둑강사로 출강하는 괴짜 프로기사 진동규. 수입은 얼마 되지 않지만, 아이들을 통해 많을 걸 배운다고 말한다. 유치원에 가기 위해 수원 집에서 서울 봉천동까지 왕복 4시간을 마다하지 않는다.
진동규와 같은 86년생 프로기사는 송태곤·허영호·백홍석·박진솔·배윤진·김혜민 등이 있다. 다양한 활동으로 바둑계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이들 86년생 중에서도 진동규는 ‘괴짜’로 불렸다. 프로기사답지 않은 소탈함이 가장 큰 이유였다. 진동규는 “프로기사들은 대회에서 바둑을 두면 대국료가 한 판에 몇 십만 원, 많으면 몇 백만 원이다. 가끔 다른 프로에게 내가 하는 일자리가 생겨 제안해도 금액이 안 맞아 고사하는 경우가 많다”라며 말한다.
진동규는 입단을 준비한 7년, 프로가 된 후 15년을 바둑과 함께했지만, “아직도 바둑이 재미있다”라고 말한다. “바둑은 기력이 올라갈수록 보는 깊이와 재미가 달라진다. 일류기사의 바둑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는 게 프로가 되어서 가장 좋은 점이다. 아마추어 바둑팬과 이 즐거움을 같이하고 싶다. 바둑을 재미있게 보기 위해서는 해설이 가장 중요하다. 프로들만 이해 가능한 내용을 해설이라 말하는 건 직무유기다. 앞으로 내 유튜브에서 격이 다른 해설과 강좌를 보여주겠다”라고 말했다.
박주성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