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플래카드 두고 “성희롱” vs “임의로 관객 찍어 신곡홍보에 사용“ 맞서
래퍼 산이가 ‘여혐’ 논란에 휩싸였다. 사진=브랜뉴뮤직 제공
이날 산이는 무대에서 관객들과 대치하는 모습을 보였다. 성기 길이를 비웃는 의미로 ‘6.9cm’, ‘추하다 산이야’라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든 관객들을 맞닥뜨린 탓이었다. 이들 가운데는 공연을 마친 산이에게 같은 문구가 적힌 인형을 집어던진 사람도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결국 산이는 관객을 향해 “남성 혐오를 하는 메갈, 워마드(극단적인 여성우월주의자)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라 정신병, 사회악” “너네(관객)가 나를 존중하지 않는데 내가 너를 존중할 필요는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고 외쳤다. 관객석에서 항의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공연이 잠시 중단되자, 브랜뉴뮤직의 수장인 라이머가 올라와 대신 사과까지 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관객들이 산이를 비난한 데에는 그의 앞선 행적이 한몫했다. 지난 11월 중순 이른바 ‘이수역 폭행 사건’이 사회적 이슈로 급부상할 무렵, 산이는 폭행사건의 피해자로 추정되는 여성 2명을 몰래 찍은 영상을 SNS에 올렸다. 그리고 이를 자신의 신곡 ‘페미니스트’의 홍보용으로 사용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페미니스트’는 남성 화자가 여성들의 주장을 하나씩 반박하는 식으로 곡이 전개된다. 그런데 “지금의 너(여성)가 뭘 그리 불공평하게 자랐는데” “합의 아래 관계 갖고 할 거 다 하고 왜 미투해? 꽃뱀?” “유치하게 브라 안 차고 겨털 안 밀고 머리 짧게 잘라, 그럼 뭐 깨어있는 듯한 진보적 여성 같애?” 등의 가사가 여성혐오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이후 여성들의 거센 비난이 이어지자 산이는 “여성을 혐오하는 곡이 아니고, 곡에 등장하는 화자도 제가 아니다”라며 “노래 속 화자처럼 겉은 페미니스트, 성평등, 여성을 존중한다 말하지만 속은 위선적이고 앞뒤도 안 맞는 모순적인 말과 행동으로 여성을 어떻게 해 보려는 사람을 비판하는 내용”이라고 해명하기에 이른다.
분노한 여성들을 위한 해명이었지만 이는 오히려 그를 옹호하던 남성들에게 불을 지른 꼴이 됐다. 당시 ‘페미니스트 곡’ 공개 후 “시원하다, 제2의 유아인이다” “남성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줬다”며 찬사를 이어가던 남성들은 산이의 해명문을 보고 “결국 여성 편…실망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결국 양측 모두에게도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한 셈이다.
이처럼 산이의 앞선 행보에 반감을 품은 여성 관객들의 분노가 브랜뉴이어 콘서트에서 터졌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산이의 주장처럼 당시 콘서트에 참석한 관객들의 대다수가 산이를 모욕 주기 위한 이유만으로 표를 구매한 ‘메갈’이나 ‘워마드’가 아니었다는 데에 있다. 이날 공연에는 스페셜게스트로 보이그룹 워너원의 이대휘와 박우진이 참석했으므로, 전체 관객 수로 따진다면 이들 팬덤의 비율을 무시하지 못할 정도였을 것이다.
산이 발언으로 촉발된 관객들의 공식 사과 및 공연 티켓 환불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사진=트위터
브랜뉴뮤직 측은 지난 4일 사태에 대한 짤막한 공식 사과문을 냈을 뿐, 팬들의 요구에는 침묵을 지켰다. 반면 산이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이용해 적극적으로 반박을 이어갔다. 지난 4일 자신의 사건을 다룬 SBS 뉴스에 대해서는 “여혐 래퍼라는 프레임을 짜기 위한 가짜 뉴스”였다고 강하게 비난했고, 공연 당시 자신을 향해 ‘6.9cm’ 등으로 비난한 관객들에 대해서는 성희롱 등 혐의로 강경 법적 대응하겠다는 입장까지 밝힌 상황이다.
브랜뉴이어 공연에 참석했던 워너원 멤버들의 팬덤을 포함해 관객들은 “할 테면 해 보라”는 입장이다. 이들은 산이에 대해 “공식 사과를 하지 않으면 명예훼손과 모욕 등 가능한 모든 사안에 대한 법적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이는 산이가 허락을 받지 않고 공연 당시 관객들의 영상을 찍어 자신의 SNS에 올리고, 이를 또 다시 신곡 발표의 홍보로 이용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브랜뉴이어 콘서트에 참석했다는 한 여성 관객은 “그날 공연은 산이만의 단독 콘서트가 아니었고 다들 자신이 좋아하는 뮤지션을 보기 위해 모인 자리였다. 그런 곳에서 일부가 자신을 비난하거나 자신에게 호응해주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전체 관객을 향해 ‘메갈’ ‘워마드’로 매도하고 함부로 영상을 찍어 돈벌이로 이용하는 게 프로로서 적합한 행동인지 묻고 싶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여성들에게 걸레니 XX년이니 하면서 디스하는 건 힙합 스웨그고, 자신에게 6.9cm라고 하는 건 성희롱인가. 여성 래퍼가 남성 래퍼들의 성희롱을 고소한 걸 가지고 ‘래퍼답지 못하다’고 까던 게 한국 힙합 신인데 대체 어느 장단에 맞추라는 건지 모르겠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한편 산이는 지난 3일 자신들을 비난한 관객들을 대상으로 한 신곡 ‘웅앵웅’을 발표해 ‘디스’를 이어가고 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