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 뚱뚱한 여자의 이름이 뭐였더라? 그래. 김경실. 개그우먼과 이름이 같아서 김상복이 절대로 잊지 않을 것이라고 가르쳐 주었는데 까맣게 잊었으니 시작부터 초를 치고 있군. 어쨌든 얼굴에 철판을 깔고 대시해야 한다.
“김 여사님에게 꼭 투자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형편이 어려우시면 전주를 소개해 주십사 하고 드리는 말씀입니다.”
오준태는 김경실을 떠보았다. 설명을 충분히 했으니 이제는 김경실이 결정을 내릴 차례다. 그러나 김경실은 깊이 생각에 잠겨 있었다.
“주 교수라는 여자가 오준태 씨 선배예요?”
“예, 신원이 확실합니다. 그리고 말씀 놓으십시오. 나이로 보나 뭐로 보나 동생 아닙니까?”
오준태는 슬그머니 수작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어떻게….”
“그래야 저도 자유스럽게 누님으로 부를 수 있습니다.”
오준태는 김경실의 커다란 젖무덤을 훔쳐보면서 숨이 막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옷을 벗겨 놓으면 하얀 살덩어리가 볼 만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걸 어떻게 해야 깔고 눌러 앉아서 옷을 벗기지? 육덕이 커서 올라가면 푹신하겠지만 천천히 생각하기로 했다. 일단은 사업이야기가 우선이었다.
“그냥 이대로 지내요. 그들을 한번 만날 수 있어요?”
김경실이 오준태의 이야기를 점잖게 튕겨버렸다.
“물론입니다. 남편은 공직자니까 돈에 대한 이야기는 삼가 주십시오. 그냥 서로 인사나 나누는 걸로 하죠.”
오준태도 재빨리 물러섰다. 김경실이 튕기는데 덤벼들었다가는 본전도 못 건진다.
“우리가 이 일을 같이 하면 오준태 씨에게는 어떤 이익이 있어요?”
“솔직히 저에게 구전을 떼어주셔야 합니다.”
“얼마나?”
김경실의 얼굴이 차가워졌다.
“2.5%입니다.”
“너무 많은 거 아니에요?”
“제가 부동산 소개를 하고 있는 걸로 아십니까? 저는 정보를 팔고 있는 것입니다.”
“1%만 해.”
김경실이 야멸차게 잘라 말했다. 제기랄, 이놈의 여편네가 돈 냄새를 맡았나. 왜 이렇게 인색하게 나오는 거야? 1.5%나 잘라 버리는 것은 거저먹겠다는 수작이나 다를 바 없었다.
“좋습니다. 그 문제는 차후에 논의하기로 하고 이틀 안에 결정을 내려주십시오.”
오준태는 단호하게 말했다. 이럴 때는 강하게 밀고 나가야 한다.
“알았어.”
김경실이 고개를 끄덕거리고 술잔을 비웠다. 오준태도 천천히 술잔을 비우면서 김경실을 뚫어질 듯이 쳐다보았다. 뚱뚱한 여자들이 대개 그렇듯이 김경실은 살결이 눈이 부시게 희고 눈에는 쌍꺼풀까지 져 있었다. 몸이 뚱뚱한데도 옷은 검은색 스커트와 하얀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다. 재산가답게 천연 실크인 듯 블라우스가 질감이 좋아보였다.
“왜 그렇게 봐?”
김경실은 오준태의 시선이 거북한 듯이 헛기침을 했다.
“죄송합니다.”
오준태는 염치없이 김경실을 쳐다보는 체하다가 시선을 떨어뜨렸다. 대체 이 여자의 브래지어는 얼마나 큰 것일까. 아직 이렇게 뚱뚱한 여자와 섹스를 해본 일이 없다.
“사람 그렇게 쳐다보는 거 실례야.”
“솔직히 말씀드려 누님이 저를 빨아들이고 있는 겁니다.”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눈이 너무 예쁩니다. 입술도 귀엽고….”
뚱뚱한 여자에게 예쁘다고 말하면 희롱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특정한 부분이 예쁘다고 하면, 그래 내가 몸은 뚱뚱해도 눈은 예쁘지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김경실이 눈을 흘기는 시늉을 했다. 예쁘다는데 싫어하는 여자는 없다. 목소리도 약간 누그러져 있었다.
“뽀뽀하고 싶은 입술입니다.”
“객쩍은 소리 하지 말고 그만 일어나.”
오준태의 집요한 공격이 거북한지 김경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오준태는 재빨리 옷걸이에서 김경실의 코트를 내려 어깨에 걸쳐주었다. 그리고는 갑자기 김경실의 허리를 안고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누님.”
“왜 이래? 이런 식으로 나오면 사업 같이 안할 거야.”
“누님 냄새가 너무 좋아요.”
오준태는 마치 어리광을 부리듯이 김경실의 커다란 가슴에 얼굴을 문질러댔다. 김경실은 오준태를 뿌리쳤으나 노골적으로 싫은 기색은 아니었다. 오준태가 떨어져도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화를 내지 않았다.
‘오늘은 여기까지다.’
오준태는 적당한 선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서두르면 오히려 낭패를 당한다. 김경실에게 모범택시를 태워보내면서도 누님과 같이 있고 싶다, 다음번에는 누님을 절대로 그냥 보내지 않을 거야, 누님은 내꺼야, 하고 귓전에 속삭여 주었다. 김경실은 잔뜩 달아올랐지 싶었다. 얼굴이 붉어지고 입에서 단내를 풍기는 것을 여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오준태는 우두커니 거리를 바라보았다. 강남의 대로는 IMF인데도 여전히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실업자가 되어 노숙자로 전락하고, 가정주부들이 집에서 뛰쳐나와 매춘을 하고 있는데도 강남공화국은 흥청대고 있었다.
오준태는 택시를 타고 집 앞의 큰길에 이르렀다. 시간은 이제 밤 9시밖에 되지 않았다. 오준태는 느릿느릿 골목길을 걸어 올라가려다가 골목에 있는 술집으로 들어갔다. 실업자로 지낼 때 몇 번 드나든 적이 있는 술집이었다. 낮에는 인삼차 따위를 팔고 밤에는 맥주를 파는 집인데 주인과 30대 과부 한둘이 있는 그런 곳이었다.
“어머나, 며칠 전에 오더니 또 왔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마담이 반색을 했다. 며칠 전에 와서 외상값 20만 원을 갚은 일이 있었다.
“내가 오는 게 싫어? 술 팔기 싫으면 그냥 가고….”
“내가 언제 싫다고 그랬어?”
마담이 눈을 흘기면서 주먹으로 가슴을 때리는 시늉을 했다.
“내가 마담이 이뻐서 오는 게 아니야. 마담이 거시기를 잘해 줘서 오는 거지.”
오준태는 칸막이 커튼을 들추고 안에 들어가서 털썩 앉았다. 칸막이는 세 개지만 세 곳에 모두 손님이 드는 경우는 드물다. 술값도 꽤 비싼 편이다. 이런 술집에서 노골적인 성행위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여자들이 손으로 장난을 해준다. 룸살롱이나 단란주점에 갈 수 없는 하류인생들을 위하여 있는 술집이다.
“마침 잘 왔어. 아가씨가 새로 들어왔는데 신삥이야.”
“아가씨는 무슨…. 세상에 아가씨들이 다 죽으면 이런 집에 아가씨가 오겠다.”
오준태는 마담의 스커트 안에 손을 넣으면서 이죽거렸다.
“아유 술도 마시기 전에 더듬으면 어떻게 해?”
“그동안 살 좀 붙었나 보고….”
“아가씨 있잖아. 술 기본이지?”
기본이라는 것은 맥주 다섯 병과 안주 하나를 일컫는다.
“당근이지. 아가씨에게 교육 잘 시켜 들여보내. 시원찮으면 마담하고 마실 거야.”
“걱정 말아. 한 군데 거쳐 온 애니까 술도 잘 마셔.”
마담이 칸막이를 부지런히 드나들면서 술과 안주를 차린 뒤에 아가씨를 데리고 들어왔다.
“미스 문?”
마담이 데리고 들어온 아가씨를 본 오준태는 깜짝 놀랐다. 그녀는 뜻밖에 오준태가 다니던 회사에 경리로 근무하던 문지영이었다. 부서가 달라서 가깝게 지내지는 않았으나 활달하고 밝은 아가씨였다.
“오 대리님….”
문지영도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 문지영은 오준태를 보자 당황하여 다시 밖으로 나갔다. 오준태는 그녀를 잡을 수가 없었다. 문지영은 마음을 달래는지 담배 한 대를 피우고 들어왔다. 마담이 아는 사이였어? 그럼 밀린 이야기나 나눠, 하고 눈치 빠르게 밖으로 나갔다.
“저…, 이렇게 살아요.”
문지영이 눈물을 글썽이면서 말했다.
“괜찮아. 이렇게 살면 어떻고 저렇게 살면 어때?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야. 살아남는 게 중요하다구. 나도 한 달 전까지 실업자로 지냈어.”
문지영의 눈에서 눈물이 굴러 떨어졌다. 오준태는 문지영의 옆자리에 가서 어깨를 안아주었다. 문지영이 오준태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