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계절인 대선을 얼마 앞두고 국내 유력그룹과 원내 제1당이 ‘금전거래’를 한다니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금호그룹의 한나라당 당사 매입설은 ‘금호가 최근에 한나라당 당사 인수를 위한 양해각서를 교환했다’는 제법 구체적인 정황까지 나왔다.
하지만 금호쪽에선 이같은 소문이 “근거없는 것”이라고 잘라 말하고 있다. 그같은 계약을 추진한 적이 없다는 것. 재계에선 금호그룹이 부동산을 사들일 만큼 넉넉한 형편이 아니라는 점에서 한나라당사 매입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 금호산업이 시공한 여의도 한나라당사. 공사비 와 관련 양측의 태도가 의문을 자아내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타이어 사업 부문이 그나마 경쟁력과 수익성이 있기 때문에 매각을 통해 경영정상화를 이룬다는 것. 하지만 ‘타이어 매각건’은 아직도 ‘곧 매각 예정’이다. 아시아나는 부채비율이 498%(상반기 기준), 금호산업은 부채비율이 349%로 여전히 안좋다. 그런 판에 금호산업이 한나라당 당사를 사들인다는 얘기가 나오니 증권가를 중심으로 의아해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소문은 금호산업이 스스로 자초한 면이 없지 않다. 금호와 한나라당이 ‘금전적인 관계’가 있었고, 이 과정에서 ‘특혜’라고밖에는 볼 수 없는 비정상적인 금전관계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금호산업은 지난 99년 11월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있는 한나라당 당사에 근저당권을 설정했다. 채권최고액은 1백억6천8백만원. 97년 10월 완공된 한나라당 당사 공사비 74억원을 한나라당이 주지 않아 금호에서 채권보전을 위해 설정한 것. 그러나 금호산업은 공사비를 받지 않았음에도 한나라당이 당사를 쓸 수 있도록 준공검사를 받는 데 협조했다.
이어 금호는 99년 10월께 한나라당과 채무변경 협약을 맺었다. 한나라당이 공사비 74억원과 이자 10여억원을 더해 85억원을 2001년 6월말까지 내기로 한 것. 하지만 한나라당은 이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문제는 금호산업의 반응. 공사가 끝난 지 5년이 넘었음에도 금호산업은 이 빚을 받으려는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금호는 가장 최근에 보낸 빚 독촉장이 지난해 8월에 보낸 것일 정도다. 통상적으로 건물 공사 미수금의 경우 공사업체가 협조하지 않을 경우 준공검사를 받을 수 없어 건물이 완공되더라도 사실상 쓸 수 없게 된다. 또 준공검사 뒤에도 근저당권 행사와 가압류 등의 절차를 진행시켜 공사비를 받아내는 게 통상의 예이다.
하지만 금호산업은 이런 채권 회수 노력을 거의 하지 않은 셈이다. 금호쪽에선 애초에 ‘채권 회수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느냐’는 기자의 질의에 매달 독촉장을 보내고 있다고 했지만 정작 이들의 서류철에 남아있는 것은 지난해 8월에 한번 보낸 채무상환 독촉장이 전부였다.
상장기업이 아니더라도 미수 채권 회수 노력을 하는 것은 당연한 기업 활동이다. 상장기업인 금호산업이 1백억원에 달하는 미수채권을 회수하기 위한 노력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면 이는 주주들에 대한 모럴 해저드임에 다름없다.
금호쪽에선 왜 채권 회수를 하지 않느냐는 질의에 “나름대로 전화도 하고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가압류 등 통상적인 미수채권 회수를 위한 행동을 하지 않은 점에 대해선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일반적인 공사 대금이라면 벌써 가압류에 경매절차까지 끝나 미수금 회수를 했을 사안임에도 채무자의 처분만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이 점이 바로 금호의 정치권 유착설의 또다른 불씨가 되고 있는 것. 금호산업은 현재 주가가 2천원대로 액면가 5천원을 밑돌고 있다. 2000년 1천34억원, 2001년 2천8백91억원 등 연속 적자를 낸 까닭이다. 때문에 한푼이라도 아쉬운 처지의 금호산업이 미수채권 회수 노력을 왜 서두르지 않았나 하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것. 정치와 기업활동이 무관해야 함에도, 결과적으로 특정정파의 이익을 위해 주주들의 이익을 희생시키고 있다는 점에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