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이 저런 옷차림으로 남자들을 유혹하는구나.’
장은숙은 여자들의 드레스가 가슴과 둔부를 강조하고 있는 것을 보고 감탄했다. 어떤 여자는 드레스 앞이 벌어져 허연 젖무덤이 반이나 드러나 있었다. 파티에 참석한 남자들도 저명인사들이었지만 여자들도 교수, 사업가, 정치인, 의사 등 상류층이었다. 정원의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테이블에는 사람들이 둘러앉아서 한담을 나누며 음식을 들고 있었다. 정원의 안쪽에서는 네 명의 젊은 여자들이 드레스를 입고 실내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별장에서 이런 파티가 벌어질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네.’
장은숙은 이상희를 따라 걸으면서 가슴이 설레었다. 넓은 정원에는 잔잔한 실내악이 귓전을 간질이고 사람들의 부드러운 웃음소리가 꽃처럼 피어났다.
“안녕하세요? 오성전자 부회장님이죠?”
이상희는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과 상냥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장은숙은 이상희 뒤에 서서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파티에 참석한 어떤 여자들보다 한참이나 수준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핫핫핫! 이 박사님이시군요. 미모가 뛰어나다고 들었는데 실제로 보니 명불허전이군요.”
오성전자 부회장이 너털대고 웃으면서 악수를 청했다.
“호호호. 과찬이세요.”
“아닙니다. 언제 식사라도 대접할 수 있는 영광을 주십시오.”
“저야 언제나 환영이죠.”
이상희는 사람들과 세련된 대화를 나누었다.
“제 친구예요. 오성전자 부회장님이야. 인사 드려라.”
이상희가 장은숙을 오성전자 부회장에게 소개했다.
“안녕하십니까. 김태경이라고 합니다.”
오성전자 부회장 김태경은 50대 중반의 중후한 인상을 가진 사내였다. 장은숙에게 거침없이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장은숙입니다.”
장은숙은 공연히 위압감을 느끼면서 두 손으로 김태경의 손을 잡았다.
“미인의 친구라 장 여사 역시 대단한 미인이군요.”
“호호호. 게다가 싱글이에요.”
“그렇습니까? 그러면 반드시 데이트를 신청해야 하겠습니다.”
김태경이 장은숙의 아래 위를 훑어보면서 말했다. 그의 눈길이 장은숙의 가슴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장은숙은 남색의 정장 안에 하얀 실크 블라우스를 받쳐 입고 있었다. 그래도 남자들이 거대하다고 말하는 가슴을 감출 수는 없었다. 김태경은 장은숙의 가슴을 한번 움켜쥐어 보았으면 하는 그런 눈빛이었다.
‘흥! 어디를 더듬는 거야?’
김태경의 시선이 자신의 풍만한 가슴께를 더듬는 것을 눈치 챈 장은숙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반도체 하나로 1년에 몇 조 원의 순이익을 남긴다는 오성전자 부회장이었다. 신문지상을 통해 그의 이름이 언급되는 것을 자주 보았었다. 이상희가 장은숙을 데리고 간 곳은 오늘의 파티를 주최한 여당 국회의원 박도형이 있는 테이블이었다. 박도형은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 이 박사님이군요. 어서 오십시오.”
박도형이 이상희를 보자 반갑게 손을 내밀었다. 박도형은 40대 후반으로 눈빛이 예리했다.
‘상희는 아예 박사로 통하는구나.’
장은숙은 자신에게 아무런 명함이 없다는 사실이 씁쓸했다.
“박 의원님은 여전히 젊으시네요? 제 친구예요.”
이상희가 장은숙을 박도형에게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장은숙입니다. 초대받지 않은 불청객이에요.”
장은숙은 텔레비전 뉴스에서 자주 보았던 박도형과 악수를 나누었다.
“불청객이라니 당치 않습니다. 이 박사님의 친구는 제 친구입니다.”
“얘가 평소에 박 의원님을 존경했기 때문에 데리고 왔어요.”
“핫핫핫! 고맙습니다.”
박도형이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장은숙은 박도형과 와인을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전에 검사를 지냈기 때문인지 부드럽게 대화를 이끌었다.
“금감원에 계신 정동일 국장님이야. 코스닥을 관리하고 계셔.”
“이 박사님, 늘 신세를 지고 있는데 미인까지 소개해 주시는군요.”
정동일은 이상희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제 친구예요.”
장은숙은 정동일과 형식적인 인사를 나누었다. 테이블을 돌면서 인사를 나누고 나자 후원회 행사가 시작되었다. 정동일의 의정활동 소개, 동료의원의 축사, 박도형 의원의 인사말이 박수갈채 속에서 끝나자 사람들이 흰 봉투를 모금함에 넣었다. 장은숙은 국회의원 후원회 행사가 지루했다.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도 정치에 대한 것뿐이어서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어땠어? 즐거웠어?”
후원회가 모두 끝나 박도형 의원의 별장에서 나오자 이상희가 물었다. 장은숙은 약간 피곤한 느낌이 들었다.
“글쎄, 상류사회 파티라 나하고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장은숙은 가든파티가 유쾌하지 않았다. 파티에 참석한 여자들도 상류사회 사람들이라 자신이 자꾸 위축되는 기분이었다.
“무슨 소리야? 누구는 처음부터 국회의원이나 장관으로 태어난 줄 알아?”
“그렇게 산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잖아. 지루한 파티더라.”
“상류사회로 들어가면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어.”
장은숙은 이상희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들처럼 산다면 오히려 불편한 일이 더 많을 것 같았다.
“난 그다지 좋지 않아.”
장은숙이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장은숙은 공연히 아까운 시간을 낭비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상희가 무엇인가 골똘하게 생각에 잠겼다. 차는 미사리를 지나 시내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오후의 햇살이 강물에 반짝이면서 흘러가는 것이 차창으로 내다보였다.
“너 섹스는 어떻게 해결하니?”
이상희가 불쑥 물었다.
“남자들하고 하지 어떻게 해결해?”
“다행이구나. 참고 있는 줄 알았는데.”
“내가 무슨 조선시대 여자인 줄 알아?”
“광화문에서 내려줄게.”
차가 한남대교를 건너자 이상희가 말했다.
“우리 어디 가서 사우나나 하고 들어가지 않을래?”
장은숙은 모처럼 나왔기 때문에 일찍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이상희가 장은숙을 힐끗 쳐다보았다.
“나는 20분 후에 약속이 있어. 너도 약속 하나 잡아 줄까? 오늘 만난 사람 중에 마음에 드는 남자 없어?”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 하게?”
장은숙은 이상희가 허튼 소리를 한다고 생각했다.
“호텔에서 만나. 너라면 아무도 싫어하지 않을 걸.”
“내가 그거 못해서 환장한 줄 알아?”
“환장한 것은 남자들이야. 개처럼 침을 질질 흘리면서 달려들잖아?”
이상희의 노골적인 말에 장은숙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박도형 의원의 별장에서 만난 남자들의 얼굴을 한 사람 한 사람 머릿속에 떠올려 보았다.
“국회의원 이성배는 어때?”
장은숙이 지나가는 말투로 무심하게 꺼냈다. 이성배는 40대 초반으로 단단한 체격을 갖고 있었다.
“이성배는 안 돼.”
“왜?”
“조금 있다가 내가 만나기로 했어.”
“어머, 네가 먼저 찍었다는 말이야?”
장은숙은 이상희의 말에 입이 벌어졌다.
“넌 정동일이 어때? 주식투자를 하니까 정동일과 친하게 지내는 게 좋아.”
“정동일도 나쁘지는 않아.”
장은숙은 웃음을 깨물면서 말했다. 이상희에게는 이상하게 아무 것도 숨기고 싶지 않았다.
“내가 연락해 볼게.”
이상희가 휴대폰을 꺼내 장은숙이 만류할 시간도 없이 전화를 걸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