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래? 내가 그만 한 수완도 없을까봐 그래?”
장은숙은 이영훈에게 밉지 않게 눈을 흘겼다. 코스닥에 상장되면 이영훈만 좋은 것이 아니라 장은숙도 목표한 수입을 올리게 되는 것이다. 7억 원을 투자했으니까 열 배의 수익을 올리게 될 것이다.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도 있다.
“아닙니다. 너무 고마워서 그렇습니다.”
이영훈은 좋아서 울음이라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이었다. 코스닥에 상장되면 이영훈은 벼락부자가 된다. 나름대로 사업수완을 발휘하여 e-북회사를 운영해 왔지만 코스닥에 상장한 IT회사와 일반 IT회사는 천양지차다.
“말로만 고맙다고 그러면 뭘해? 내게 뭔가 소득이 있어야지.”
코스닥에 상장할 수 있게 만든 것은 오로지 장은숙의 공로라고 할 수 있었다.
“원하시는 거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무엇이든지 들어드리겠습니다.”
“정말 들어줄 거야?”
장은숙이 소파에서 일어나 이영훈의 옆으로 다가갔다. 이영훈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장은숙을 쳐다보았다.
“영훈 씨는 내 소중한 완소남이야 그렇지?
“그, 그야….”
“지금 내가 완소남이 필요해.”
장은숙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이영훈을 쏘아보다가 엉거주춤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영훈의 무릎 위로 올라갔다. 이영훈의 얼굴이 금세 붉게 달아올랐다. 이 자식 소설 쓴다더니 순진남이네. 장은숙은 쩔쩔 매고 있는 이영훈의 지퍼를 내렸다. 이영훈은 팽팽해져 있었다.
“장 여사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제 사무실은 사람들이 드나들어서….”
“이 사장, 난 사무실에서 해보는 게 소원이었어.”
장은숙은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했다.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다만 컴퓨터를 새로 구입하기 위해 집에서 나왔을 때 정동일로부터 거래소에 서류가 통과되었다는 연락을 받자 이영훈의 회사로 곧바로 달려왔고 이영훈에게 이야기를 하자 너무 기뻐서 표정 관리가 안 되는 것을 보고 문득 욕망이 일어났던 것이다. 그것은 짜릿한 전율이고 쾌감이었다. 장은숙의 느닷없는 육탄공세가 이영훈에게도 결코 싫은 일이 아니었다. 이영훈의 아랫도리가 살아있는 생선처럼 펄떡거리고 있는 것이 그 증거였다.
박인철에게는 이영훈의 사무실로 오면서 전화를 해주었다. 박인철도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박인철도 3억 원이라는 거금을 투자한 것이다.
“그, 그럼 우리는 성공한 것입니까?”
박인철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성공한 거죠. 벼락부자 된 거 아니에요?”
“감사합니다. 모두 장 여사님 덕분입니다.”
“부인에게도 전화해 주세요. 몇 달 안에 벼락부자가 된다고요.”
“정말 배려가 깊으십니다. 제가 신세를 갚아야 하는데 어떻게 합니까?”
“정식으로 상장되면 그때 가서 봅시다.”
“알겠습니다. 제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십시오. 분골쇄신이라도 하겠습니다.”
박인철은 장은숙이 앞에 있었다면 절이라도 할 것처럼 흥분한 목소리였다. 장은숙은 속으로 미소를 짓고 이영훈의 사무실로 곧장 왔던 것이다. 이영훈은 장은숙이 불시에 들이닥치자 놀란 표정이었다. 코스닥 상장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의기소침해 있던 이영훈이었다. 이영훈에게는 장은숙이 요구할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IT회사의 부사장이라는 공식적인 직함이었다. 물론 부사장이라는 직책을 갖는다고 해도 회사에 출근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이상희와 같이 다니면서 장은숙은 그럴싸한 명함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이상희는 경제학박사라는 타이틀이 있었다.
“잠깐만요.”
장은숙이 애무하자 이영훈이 일어나 문을 잠그고 창문의 블라인드를 내렸다. 그러자 사무실이 어두컴컴해졌다. 장은숙은 이영훈을 다시 소파에 앉히고 무릎으로 올라가서 앉았다. 그가 안으로 들어오자 눈앞이 몽롱해지면서 뜨거운 기운이 전신으로 물결처럼 번져나갔다.
“좋아?”
“예. 너무 좋습니다.”
“특별한 경험이었지?”
장은숙은 뒤처리를 한 뒤에 이영훈에게 눈웃음을 뿌렸다. 이영훈의 얼굴은 아직도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예. 고맙습니다.”
“고맙긴 뭐. 나도 좋았어.”
장은숙은 이영훈을 포옹하여 키스를 해주었다.
“저기… 나 이 회사에 자리 하나 내 줄래?”
“자리요?”
“내가 명함이 필요해서 그래. 부사장 방 하나 만들고 책상이나 놓아 줘.”
“그, 그건….”
“회사 일에는 간섭하지 않을게. 나도 이 회사 대주주잖아?”
장은숙이 정색을 하고 말했다.
“알겠습니다. 명함을 만드는 대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이영훈이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대답했다. 장은숙은 집으로 돌아오자 더 이상 데이트레이딩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데이트레이딩은 혼자 하는 투자였다. 분초를 다투면서 치열하게 분석하고 매수와 매도를 반복해야 했다. 그런 일을 하는 것은 너무나 골치가 아픈 일이었다. 이제는 편안하면서도 많은 돈을 버는 일을 해야 했다. 장은숙은 데이트레이딩을 하던 주식을 모두 안전한 대기업으로 바꾸었다.
“오늘 찾아뵈려고 했는데 일이 있어서 내일 찾아뵙겠습니다.”
장은숙이 집에서 쉬고 있는데 박인철이 전화를 걸어왔다. 박인철은 아직도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목소리였다.
“박 차장님, 너무 흥분하지 말아요.”
장은숙은 박인철이 찾아오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그가 부인과 즐거운 저녁식사를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제, 제가 흥분을 했습니까?”
“여기서도 흥분한 모습이 눈에 선해요.”
“이거 참,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난 괜찮으니까 부인에게 맛있는 거 사드리세요.”
“예. 장 여사님이 지시하는 대로 하겠습니다.”
박인철도 코스닥 상장이 어려운 것을 장은숙이 인맥을 이용하여 성공시켰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박인철은 코스닥 상장이 불가능해 보이자 투자한 돈을 날리겠다고 생각했는지 장은숙 앞에서 울기까지 했었다. 그 어려운 코스닥 상장 서류가 거래소에서 통과되었으니 감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어머, 오늘 아들 보는 날이네.’
장은숙은 침대에서 늘어지게 잠을 자고 일어났다가 캘린더를 보고 깜짝 놀랐다. 시간을 보자 벌써 오후 4시였다. 남편과 이혼을 한 뒤에 한 달에 한 번씩 아들을 만나는 날이 오늘인 것이다. 장은숙은 부리나케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매만졌다. 아들은 장충동 리틀야구장에서 야구를 하고 있다. 학교에서 끝나면 곧바로 야구장으로 가서 야구를 한다. 장은숙은 망설이다가 서랍에서 아파트 등기 서류를 꺼냈다. 아들과 둘이서 지하 셋방에서 살고 있는 남편에게 주려고 마련해 놓은 아파트였다. 남편이 장만한 아파트를 그녀가 주식 투자를 하느라고 날렸으니 새로 한 채 마련해주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몰랐다. 그러나 남편과의 사이에는 아직도 앙금이 남아 있다. 자존심이 센 남편도 그녀가 주는 아파트를 선뜻 받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남편이 고생을 하는 것은 참을 수 있지만 아들이 고생하는 것은 참을 수가 없다.
장은숙은 아파트 서류를 가방에 챙기고 집을 나섰다. 밖으로 나오자 빗발이 추적대고 있었다. 다시 집으로 가서 우산을 챙겨가지고 나와 택시를 탔다. 야구장에 도착하자 유니폼을 입은 아이들이 비를 맞고 줄을 맞춰 운동장을 돌고 있었다.
장은숙은 사무실에 가서 단장에게 봉투 두 개를 내밀었다. 하나는 단장의 용돈이고 하나는 아이들의 회식비였다. 단장에게 봉투를 주지 않으면 아이들에게 신경질을 부린다.
“아이고 뭐 번번이 이런 걸 주십니까?”
단장이 입이 벌어져 허리를 숙이면서 인사를 했다. 장은숙이 단장에게 회비 외에 별도로 매달 50만 원을 주는 것은 이혼한 홀아비와 사는 아들이 멸시를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단장님, 우리 아들 잘 좀 부탁드릴게요.”
장은숙도 허리를 90도로 굽혀 인사를 했다. 학교 선생님이든 학원 선생님이든 한국에서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들에게 부모는 죄인이나 마찬가지였다. 단장과 인사를 나누고 스탠드에서 아들이 운동하는 것을 구경하는데 멀리서 남편이 우산을 갖고 오는 것이 보였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