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형태근로종사자 신분인 골프장 캐디, 절대적 약자일 수 밖에 없어...노조설립도 현실적으로 어려워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인 골프장 캐디들은 고객 뿐 아니라 회사 관계자에게도 상습적인 갑질을 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래픽=백소연 디자이너
특수형태근로종사자는 사업주에 종속되어 있지만 스스로 고객을 찾거나 맞이하고 업무량·실적에 따라 소득을 얻는다는 점에서 일반 근로자와 구분된다. 대표적으로 캐디, 택배 기사, 학습지 교사, 보험설계사 등이 이에 속한다. 사실상 근로자와 다를 바 없이 일하지만, 법적으로 근로자로 분류되지 않아 근로기준법, 감정노동자보호법 등 노동관계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산재보험 가입률도 11.2%에 그친다.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골프장 캐디들은 고객으로부터 상습적인 성희롱·갑질에 시달린다. 지난 10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서는 캐디들이 노동운동가 출신인 자유한국당 임이자 의원에게 쓴 자필 편지가 공개돼 화제가 됐다. 해당 편지에는 ‘한 번 주면 홀인원 하겠다’라는 등 황당한 성희롱·추행 사례들이 적혀 있었다. 최근에는 한 일식 프랜차이즈 업체 회장이 골프장에서 캐디의 엉덩이를 골프채로 때렸다는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더욱 심각한 점은 캐디들을 향한 갑질이 비단 고객에 의해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캐디를 포함한 특수형태근로종사자들은 대개 노조가 없어 부당한 대우를 받더라도 이를 알릴 창구가 마땅치 않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해에는 캐디들에게 골프장 전체에 쌓인 눈을 치우라고 명령한 골프장의 사례가 접수된 것으로 확인됐다.
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캐디들이 직장 내에서 당하는 비상식적인 일을 토로한 청원이 올라 왔다. 청원인은 “경기과 마스터가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인 캐디의 약점을 이용하여 라운딩 종결 후 캐디가 고객에게 받는 캐디피를 교육 차원의 라운딩이었다는 명목으로 갈취하고 있다”며 “겨울에 카트 시트 세탁비를 내야 한다는 황당한 명목 등으로 100여 명의 캐디에게 만 원씩 걷어 골프장 본부장과 나눠 갖기도 했다. 하지만 캐디들은 보복이 두려워 경찰에 고소하지 못하고 퇴사 후 다른 골프장으로 이직했다”고 토로했다.
이어 청원인은 특수형태근로종사자들에게도 고충을 털어 놓고 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 싸워 줄 창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청원인은 “모 그룹의 골프장에서 경기과 남자 직원에게 성폭행을 당할 뻔한 캐디가 마스터에게 상담했으나 자신의 자리보전을 위해서 방관했고 오히려 꽃뱀 취급을 했다”며 “신고 및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기관이나 센터가 생긴다면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는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민단체에서는 특수형태근로자들을 향한 직장 내 갑질이 개선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노조 설립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2007년 공정거래위원회는 근로기준법에 적용받지 못하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예규(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대한 거래상 지위남용행위 심사 지침)을 만들었지만 지난 5년 간 사건접수 건수가 109건에 그쳐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
직장갑질119 관계자는 “직장갑질 119에 접수되는 갑질 신고의 99%는 노조가 없는 회사에서 발생한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들도 노조를 만들 수는 있지만,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하기에 목소리를 내는 데 한계가 있고 이 때문에 노조가 오래 유지되지 못한다”며 “예전에는 골프장 캐디 노조도 많이 있었지만, 지금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학습지 교사 노조원도 많을 때는 5000명이 넘었지만, 지금은 많이 깨졌고 그나마 화물연대, 건설·기계 쪽이 유지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노조가 없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 직군의 경우 온라인 모임을 활성화하는 것도 임시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권고한다. 앞의 직장갑질 119 관계자는 “회사와 지역은 옮겨도 대개 업종은 잘 바꾸지 않는다. 노조가 없는 업종은 온라인 모임을 통해서라도 고충을 모아야 한다”며 “(직장갑질119에서도) 앞으로 업종별 온라인 모임을 활성화하고 상담을 진행할 예정이다. 현재 어린이집 교사들이 네이버 밴드를 통해 사람들을 모았고 현재 1300여 명이 모여 원장 갑질을 제보하는 등 고민을 나누고 있다”고 말했다.
박혜리 기자 ssssch33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