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한국의 미 알리기<1>
등잔은 기름을 담아 불을 밝히는 데 사용되던 물건이다. 그러나 전깃불이 광물성이며 이성적이라면 등잔불은 인간적이며 감성적이다. 흙이나 쇠로 그릇을 만들고 여기에 기름을 붓고 심지를 박아 불을 켜는 과정은 사람의 입김과 체온이 그대로 담겨진다. 그 불빛도 전깃불처럼 방안 전체를 속속들이 밝히는 것이 아니라 사방 한팔 정도의 둘레만을 비출 정도지만 그 빛깔은 따스하고 정감이 어려 있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등잔불을 단순한 조명기구로 보지 않았다. 문방사우(文房四友)에는 끼지 못했지만 문방사우에 버금가는 존재였다.
등잔은 재료에 따라 나무 등잔, 청동 등잔, 유기 등잔, 도자기 등잔, 사기 등잔 등이 있으며 형태상으로는 종지형, 호형(壺形), 탕기형(湯器形) 등이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삼국시대에는 토기 등잔이 일반적으로 사용됐으며, 고려시대는 자기나 청자 등잔이, 조선 시대에는 옹기나 백자 등잔이 널리 사용됐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등잔은 신라의 다등식등잔(多燈式燈盞)과 백제 무녕왕릉에서 발견된 등잔으로 그 세련된 모양과 실용성이 돋보인다.
우리나라는 석유가 생산되지 않으므로 예로부터 동물의 지방이나 씨앗에서 짜낸 식용유를 등잔에 넣어 불을 밝혔다. 당시 사용되던 등잔은 종지형이었지만 조선시대 말 석유가 수입되면서(1876년이 공식 수입연도다) 심지뽑이가 달린 호형 등잔이 더 일반적인 형태가 되었다. 등잔 중에는 일정한 높이에 얹어 사용하도록 한 등가(燈架), 높이를 서너 단계로 조절하도록 만든 등경(燈?), 외피를 씌워 들고 다니도록 만든 제등(提燈), 벽에 걸도록 만든 괘등(掛燈), 들보나 서까래에 매어 달게 한 현등(懸燈), 실내 바닥에 놓는 좌등(坐燈) 등이 있어 실생활에 편리하게 이용되었다. 불을 더 밝게 하기 위한 쌍심지 등잔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