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한국의 미 알리기<3>
수필가인 윤삼만 전 사천초등학교 교장이 쓴 수필의 한 구절이다.
지금이야 김치 냉장고네 타파웨어네 해서 이런 옹기들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예전에는 각종 옹기가 늘어선 장독대는 집안의 가장 신성한 곳이었다. 거기에 우리를 먹여 살릴 먹거리가 담겨 있었고 우리의 신앙이 그 위에 떠돌고 있었던 것이다.
평범한 주위환경과 잘 어울려 친근한 느낌을 주는 옹기는 형태에 있어서도 쓰임새에 있어서도 우리 서민들의 소박한 감정과 깊은 맛을 담는데 적격이었다.
배 부분이 둥글게 튀어나온 항아리의 자연스러운 곡선은 억지로 멋을 부리거나 조작한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필요성에서 나온 가장 인간적인 조형미였다. 더구나 흙으로 만들며 별다른 기교를 부리지 않았기에 그 질감도 푸근하다.
옹기에 넣어진 문양도 어떤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표현되는 가운데 활달하고 개방적이며 생동감 넘치는 기운과 꾸밈없고 수더분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특히 대표적인 장식 기법인 수화문은 세계 도자에서 유래가 드문 독특한 방법이다. 유약의 두께를 감정하기 위한 필요로 시작되어 문양으로 발달한 것으로 손가락만을 이용, 힘찬 터치와 대담한 선의 변화로 덤덤하면서도 소박하게 표현되어졌다
옹기는 질그릇과 오지그릇을 총칭하는 말로써 ‘瓮’ 또는 ‘饔’이라고 쓰며, 외국어 표기도 ‘onggi’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만큼 옹기를 많이 그리고 오래 사용한 곳이 없는 모양이다.
다른 용기와 비교해서 내용물이 쉽게 변색되지 않고 인체에 무해하며, 오래 보관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어 선조들의 사랑을 받아온 옹기는 만드는 방법에 따라 질그릇과 오지그릇으로 나뉜다.
질그릇은 유약을 입히지 않아 기공이 메워지지 않았다. 그래서 공기의 유통이 좋아 곡식을 담아 두어도 벌레가 생기지 않는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저장 용기로 발달되었다. 반면, 오지그릇은 질그릇과는 달리 유약을 입혀 다시 구워내어 내화력이 강하고 흡수성이 적기 때문에 취사, 운반, 수납 등에 이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