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한국의 미 알리기<4>
마을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여기에 다시 돌 하나를 얹어 타지에서 만든 자신의 부정을 씻고, 마을을 떠나는 사람들은 여기서 마을을 돌아보며 젖은 눈가를 훔치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은 손을 모아 절을 하며 소원을 빌었다.
서낭당은 이처럼 마을사람들에게 신성한 곳이었다. 이 앞에서는 부정한 행동이나 말을 삼가 하고 조심해야 했다. 특히 서낭당의 신목(神木)에 해를 가하거나 쌓인 돌탑을 훼손하면 재앙을 받는다고 믿었다.
신목인 서낭나무에는 때 묻은 저고리, 동정, 백지, 5색의 천조각, 짚신, 짚으로 만든 방망이 등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서낭나무에 환자가 입던 저고리 동정을 거는 것은 서낭신이 병을 거두어 가라는 뜻이었고, 백지를 거는 것은 행운과 초복의 기원이며, 5색 천을 다는 것은 서낭신께 드리는 예단이었다.
나그네도 이곳을 지날 때는 경건한 마음으로 돌을 얹고 세 번 절하고 침을 세 번 뱉었다. 지방에 따라서는 돌을 하나 주워다 던지고 솔가지를 꺾어다 놓으며 침을 세 번 뱉고 왼 발꿈치로 땅을 세 번 구른 다음 지나가기도 했다. 여행길의 안전을 비는 의식이다.
이처럼 우리 민족의 삶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심적 풍경이었기에 정비석의 <성황당>과 같이 우리의 전통적인 삶을 그린 소설의 소재가 되기도 하고 서민들의 감성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대중가요의 단골 소재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서낭당은 근대화의 물결에 밀려오면서 미신으로 치부돼 돌탑이 허물어지고 신작로를 만들기 위해 나무가 베어져 지금은 일부 마을에만 남아 우리 민족의 아련한 추억이 돼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