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려져가는 한국의 미 알리기<10>
자개장이란 자개로 만들어진 장롱을 말한다. 자개란 조개껍데기 자체를 말하기도 하지만 나무나 칠기에 조개껍데기를 박아 넣는 공예기법을 일컫는 말로 한자로는 나전(螺鈿)이라 썼다. 주로 칠기에 사용돼 나전칠기라는 이름이 더 익숙하다.
우리나라의 나전은 삼국시대 중국 당나라로부터 전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중국이 송나라 때부터 나전기법이 서서히 쇠퇴한 반면 한국에서는 고려 때 나전기법이 눈부시게 발달, 상감청자와 더불어 고려의 화려한 귀족문화를 대표하는 예술품으로 이름을 떨쳤다.
<동국문헌비고>에 따르면 고려 문종 때 이미 고려에서 요나라에 나전칠기를 예물로 보냈으며 인종 때 고려에 사신으로 왔던 서긍은 <고려도경>에서 “그 기법이 매우 세밀하여 귀히 여길 만하며 나전이 장식된 말안장도 매우 정교하다”고 찬탄해 마지않기도 했다. 원종 때는 <고려대장경>이 간행되면서 이를 담아 보관할 상자(經箱)를 나전으로 만들기 위해 전함조성도감(鈿函造成都監)을 설치했는데 이곳에서 세계적인 명품들이 만들어졌다.
이러한 나전공예의 기법은 아마도 고려청자의 상감기법에도 적지 않은 자극을 주었을 것으로 보이며 그 시대 고려청자의 놀라운 우아함과 더불어 나전 또한 품격 높은 세련미를 뽐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나전 공예도 고려왕조의 쇠운과 함께 고려청자와 마찬가지의 운명을 걸어 그 의장과 기법이 해이해지면서 성글고 거친 조선시대 나전으로 이어진다. 나전 문양은 정연한 대칭이 흐트러져 거칠고 대담한 구도로 나타나면서 고려시대의 우아 정치한 맛은 점차 민중적 취향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을 보인다. 특히 조선 말기에 이를수록 문양보다 자연 묘사가 흔해지고 십장생과 산수화를 사실적으로 표현하거나 매죽(梅竹) 화조(花鳥) 등을 익살스럽게 표현하는 기풍도 늘어나 현재 흔히 보는 고가구의 모습을 띠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