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체육회장배, 천년고찰 봉은사에서 2회 대회 열려…윤남기(전국) 김희중(시니어·여성) 우승
사찰에서 열린 바둑대회. 시니어·여자부 예선(32강) 대국 장면.
[일요신문] 바둑과 가람이 다시 만났다. ‘덕숭 총림’ 수덕사에 이어 ‘도심 속 천년고찰’ 봉은사에서 1년 만의 재회다. 제2회 대한체육회장배 전국바둑선수권대회가 12월 15일 서울 강남구 봉은사 보우당에서 개막했다.
대회는 15일부터 16일까지 이틀 동안 전문체육 4개 부문(전국 최강부, 시니어·여자 최강부, 중·고등 최강부, 초등 최강부)와 생활체육 1개 부문(전국 동호인 단체전)으로 나뉘어 치러졌다.
대회가 열린 봉은사는 서울 중심지인 강남구 삼성동에 있다. 신라 원성왕 10년(794년) 고승 연회국사가 창건해 명맥을 이어오다 조선 명종 때 보우스님이 활동하면서 한양 도성의 중심 사찰이 되었다. 서산대사 휴정, 사명대사 유정과도 인연이 깊은 절이다.
개막식에서 대한바둑협회 신상철 회장은 “바둑과 사찰은 어쩐지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듭니다. 스포츠 대회가 절에서 열리는 경우를 잘 보지 못하셨을 텐데 이는 바둑이라서 가능한 일입니다. 대한체육회장배는 작년에 수덕사, 올해 봉은사에서 열립니다. 대한바둑협회는 대한체육회장배와 같이 전문체육과 생활체육을 아우르는 통합을 지향점으로 삼고 있습니다. 참가선수들 모두가 즐기는 축제의 장이 되길 바랍니다”라고 축사했다.
제2회 대한체육회장배 시니어·여성부에서 우승한 김희중 선수.
대회를 후원한 봉은사 주지 원명스님은 환영사에서 “불가에 여러 가지 수행법이 있지만, 그 요체는 정신집중입니다. 자연스럽게 마음을 모을 수 있는 바둑은 정신건강이 요구되는 요즘 시대 가장 필요한 스포츠입니다. 불교의 수행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이들이 다성(茶聖) 초의선사의 ‘차를 마시는 일은 참선과 다를 바 없다’는 선다일여(禪茶一如)를 말합니다. 저는 ‘정신을 집중해 바둑을 두는 일이야말로 참선의 경지와 다를 바 없다’는 뜻에서 선기일여(禪棋一如)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한 수, 또 한 수를 찾아가는 기사의 마음과 움직임은 깨달음을 찾아 용맹정진하는 선방 수좌와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
대회 1일차(토)는 오후 2시부터 예선 더블일리미네이션 예선 1~3회전과 본선 16강 토너먼트까지 치러졌다. 봉은사 보우당에 퍼지던 바둑돌 소리에 뭉근한 종소리가 더해지던 저녁 6시 즈음에 각 부문 본선 멤버 여덟 명이 가려졌다. 대회 2일차(일)는 오전 10시부터 본선 8강 토너먼트를 시작해 결승전까지 이어졌다.
제2회 대한체육회장배 전국 최강부 결승전 복기 장면. 우승자 윤남기(왼쪽)과 준우승자 안병모.
대회결과 전국 최강부 우승은 윤남기(명지대 3), 시니어·여성 최강부 우승자는 김희중(68)이었다. 중·고등 최강부에선 양민석(장수영 도장), 초등 최강부는 신유민(장기초 6)이 우승을 차지했다. 제2회 대한체육회장배 경기규정은 총 호선으로 생각시간은 10분에 20초 3회가 주어졌다. 결승전을 포함해 제2회 대한체육회장배 주요대국은 유튜브 채널 ‘CLUB A7’에서 모두 볼 수 있다.
시니어·여성 최강부에서 우승한 김희중은 1999년 프로 9단에서 은퇴했다. 2013년부터 아마대회에 나오기 시작했지만, 우승은 아주 드물었다. 결승 대국 직후 김희중은 “곧 저승 갈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준 선물 같다. 내가 전직 프로기사라 아마대회에 나오는 걸 불편하게 생각하는 바둑팬이 많다. 어떤 대회에선 모르는 노인분이 옆에 와서 호통을 치기도 했다. 프로세계에선 은퇴했지만, 죽을 때까지 바둑돌을 만지고 싶은 마음을 이해해주면 고맙겠다”라면서 “단체전은 달랐지만, 그동안 개인전은 우승 생각 안 하고 마음 편하게 두어 왔다. 이번 대회도 무념무상으로 뒀는데 결승전에서 상대가 아주 쉬운 수를 착각해서 운 좋게 이겼다”라고 설명했다.
제2회 대한체육회장배 전문체육부문 우승자와 준우승자 단체사진. 왼쪽부터 김희중, 박정헌, 신유민, 윤남기, 안병모, 이동학, 양민석, 최호철 선수.
준우승자 최호철 선수는 “김희중 사범님과 많이 둬 봤다. 내셔널리그와 같이 30분 정도 시간이 주어진 바둑이라면 자신이 있다. 그러나 20초 초읽기에 시달려야 하는 이런 대회에선 ‘속기 달인’에게 이기긴 어렵다. 바둑은 초반에 착각해 다섯 점을 잡히고 형세가 어려워졌는데 중반에는 형세를 많이 따라잡았다. 그러나 마지막 초읽기에서 마음이 흔들렸고, 대마 수상전에서 또 착각이 나오면서 패했다”라고 총평했다.
초등 최강부 신유민 선수는 “다른 대회에서 준우승만 하다 처음으로 우승해 아주 기쁘다. 일반 아마대회는 대부분 체육관에서 열려 음이 울리고, 어수선하다. 절은 다른 대회장보다 고요한 느낌이 들어 더 맑은 정신으로 대국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전국 최강부 윤남기 선수는 명지대 바둑학교 3학년에 재학중인 학생이다. 윤남기는 “작년 수덕사에서 열린 대회에선 예선 탈락했는데 이번에 우승으로 유종의 미를 거두며 한 해를 마무리할 수 있어 기쁘다. 상대가 예전에 같은 도장에서 공부했던 잘 아는 후배라 마음 편하게 둘 수 있었다”라는 소감을 남겼다.
제2회 대한체육회장배는 (사)대한바둑협회가 주최·주관하고 대한체육회·국민체육진흥공단·봉은사가 후원했다. 1, 2회 대회는 이기흥 대한체육회장 뜻에 따라 사찰에서 열렸다.
박주성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