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의 대표적인 기업가는 권력을 갖게 된다. 김광호에게도 자신이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권력이 생겼고, 권력이 생기자 우즈베키스탄의 아름다운 여인들이 따랐다. 회사에는 비서와 집이 생기고 전용차에 운전기사가 붙었다. 카나미스의 수많은 종업원들은 최고 경영자인 그에게 우군이나 다를 바 없었다. 공식 행사에는 임원들이 에스코트를 했다.
김광호는 꿈을 꾸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일들이 저절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는 강한 추진력을 갖고 있었다. 그는 카나미스에서 5년 동안 모든 정열을 바쳤다. 불도저 같은 추진력으로 일을 밀어붙여 적자기업을 흑자기업으로 바꾸었다. 직원이 6만 명에 이르는 회사를 이끄는 것은 전쟁에서 몇 개의 사단을 거느리는 것과 같았다. 월급은 오성그룹에서 이사급으로 지급되었다. 한국의 초일류기업 오성그룹의 이사는 월급이 적지 않았다. 아내는 그가 오성그룹의 이사가 되자 너무나 좋아했다. 남자의 권력이 강해지면 여자는 공손해진다. 아내는 김광호가 민망할 정도로 공손하게 받들었다.
옥산나 같은 여대생을 현지처로 거느리는 것도 즐거운 일이었다. 옥산나가 그와 동거를 하는 것은 돈 때문이다. 학비와 생활비를 대주고 때때로 보석도 사 준다. 김광호는 팔을 뻗어 옥산나의 가슴을 살짝 움켜쥐었다. 옥산나의 가슴을 만질 때마다 팽팽한 탄력에 가슴이 뛰었다.
‘제니스 윙거를 만나다니….’
김광호는 제니스 윙거와 테니스를 칠 생각을 하자 기분이 좋았다. 그녀는 김광호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 듯했다. 영국 대사 관저에서 헤어지면서 가볍게 포옹을 했을 때 무엇이라고 표현할 수 없는 좋은 향기가 풍겼었다.
‘제니스 윙거를 내 여자로 만들 거야.’
김광호는 옥산나의 가슴을 만지면서 제니스 윙거를 생각했다. 오늘 밤 잠이 오지 않는 것은 제니스 윙거 때문인 것 같았다.
김광호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기분 좋게 잠을 잤다.
이튿날도 날씨가 좋았다. 김광호는 회사에 출근하자 임원회의를 주재하고 마케팅 팀에 수출을 독려했다. 공장은 이제 큰 문제가 없었다. 완전 자동화 시스템을 갖추어 포항제철 못지 않은 공장이 되어 있었다. 김광호는 우즈베키스탄 산업부 장관과 점심식사를 같이한 뒤 오후에는 공장으로 갔다. 거대한 구리 제련공장은 자동차로 한 바퀴를 도는 데도 한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공장장 집무실에서는 제련공장 전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구리 값이 또 올랐지?”
김광호는 모니터로 공장을 살핀 뒤에 공장장인 주정훈에게 물었다. 우즈베키스탄인이 부공장장이었다. 김광호가 들어서자 공장장 집무실의 직원들이 일제히 일어나서 인사를 했다. 주정훈은 서울에서 공대를 졸업한 인텔리였다. 오성중공업에 근무를 할 때 김광호가 스카우트를 해왔다. 키가 작았으나 다부진 체격을 갖고 있었다.
“그럼요. 수출 실적도 좋아질 것입니다.”
주정훈이 작업모를 추켜올리면서 대답했다. 주정훈은 콧수염까지 기르고 있었다.
“고생했어. 카나미스는 이제 세계적인 기업이 될 거야.”
“사장님, 그런데 본사 소식을 들으셨습니까?”
“본사 소식이라니?”
“한국에 IMF가 왔지 않습니까?”
주정훈의 말에 김광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한국은 외환위기로 엄청난 회오리가 몰아치고 있었다. 대기업이 부도가 나고 은행들이 퇴출당하고 있었다. 거리에는 실업자들이 들끓었다. 신문과 CNN을 동해 김광호도 한국 실정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고 있었다.
“알고 있네.”
김광호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한국은 조국이다. 조국이 경제적으로 위기에 몰려 있다는 사실이 착잡했다.
“오성물산을 외국 자본들이 공격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한국기업은 지배구조가 취약하지 않습니까? 영국의 자본들이 오성의 주식을 대대적으로 사들이고 있다고 합니다.”
“그럼 우리 오성이 위험하다는 이야기야?”
“말도 안 돼. 우리 오성이 영국 자본에 넘어간다는 말이야?”
“영국의 자본을 이기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김광호는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오성물산이 한국의 초일류 기업이 되었으나 국제적인 기업사냥꾼에게는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오성물산은 이제 영국 자본에 맞서서 치열한 방어를 해야하는 것이다.
김광호는 공장 시찰을 마치고 회사로 돌아왔다. 서울에 있는 직원들에게 연락을 해보았으나 오성물산이 영국 자본의 공격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김광호는 다시 증권회사에 있는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김광호가 서울에 있을 때 주식에 대해서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선배도 처음에는 한국의 최대 그룹인 오성물산이 영국 자본의 공격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김광호가 자세하게 조사를 해달라고 부탁하자 한 시간이 지나서 외국인들이 오성물산 주식을 대대적으로 매입하고 있다고 전화를 걸어주었다. 오성물산은 카나미스의 모회사였다.
‘영국이 왜 오성물산을 공격하는 거지?’
김광호는 영국이 오성물산을 공격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김광호는 오후 4시가 되자 테니스 가방을 챙겨들고 외국인 사교클럽의 테니스코트로 갔다. 제니스 윙거는 하얀 셔츠와 스커트로 세트를 이룬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짧은 스커트로 인해 매끈한 허벅지가 아름답게 드러나 있었다. 김광호가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코트로 나오자 제니스 윙거가 손을 흔들면서 반가워했다.
“하이!”
제니스 윙거의 목소리는 경쾌했다.
“하이!”
김광호는 새삼스럽게 제니스 윙거와 악수를 하고 테니스를 치기 시작했다. 코트에는 우즈베키스탄의 저명인사들과 외국인들이 어울려 테니스를 치고 있었다. 그중에는 전 고려인회장 빅토르 최도 있었다.
“언제 식사 한 번 같이 합시다.”
빅토르 최는 김광호를 보자 반가워하면서 말을 건넸다.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김광호는 빅토르 최에게 좋은 감정을 갖고 있었다. 빅토르 최는 우즈베키스탄 정부에서 카나미스 주식을 양도받아 오성물산에 이어 2대 주주가 되어 있었다. 빅토르 최가 카나미스의 2대 주주가 될 수 있다는 것은 그가 우즈베키스탄의 실력자라는 증거다. 한국 교민이 카나미스의 주식을 갖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여 김광호는 반대하지 않았다. 김광호는 제니스 윙거와 1시간가량 테니스를 쳤다. 30분은 그녀와 함께 단식을 치고 30분은 빅토르 최와 함께 복식을 쳤다.
복식을 할 때 김광호는 제니스 윙거와 한 팀이 되었다. 제니스 윙거가 앞에 서고 김광호는 뒤에 섰다. 상대는 빅토르 최와 베르나라는 프랑스 여자였다.
‘제기랄.’
테니스는 상대방이 서브를 할 때 방어를 하기 위해 허리를 바짝 숙여 수비자세를 취한다. 제니스 윙거도 베르나가 서브를 할 때 다리를 벌리고 허리를 숙이고 몸을 흔들었다. 그럴 때마다 짧은 스커트 아래 삼각형의 팬티가 감싼 제니스 윙거의 팽팽한 엉덩이가 드러났다. 물론 선수들이 입고 있는 팬티도 유니폼이었다. 그러나 눈앞에서 제니스 윙거가 엉덩이를 흔들고 있는 것을 보자 어지러웠다.
제니스 윙거는 테니스 실력이 초급을 간신히 벗어난 수준이었다. 빅토르 최와 한 팀인 베르나는 중급이었다. 전반적으로 빅토르 최와 베르나가 김광호와 제니스 윙거의 실력을 압도했으나 사교 게임이었다. 그들은 눈치껏 적당한 선에서 이겼다.
“미안해요. 내가 너무 형편없었어요.”
제니스 윙거는 땀을 흥건하게 흘리면서 김광호를 향해 활짝 웃었다.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괜찮아요? 힘들었지요?”
김광호는 웃으면서 제니스 윙거에게 타월을 건네주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제니스 윙거는 테니스를 마치자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느라고 30분을 소비했다. 그러나 초대받은 시간이 6시였기 때문에 시간은 넉넉했다. 김광호도 정장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제 차로 가실래요?”
제니스 윙거는 화사한 드레스 차림으로 나와서 김광호에게 물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