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카카오톡 ‘오픈채팅’ 악용한 불법 도박사이트 피해자 속출 내막
‘고수익 투자 상담’을 미끼로 재테크 카페 회원들을 도박 사이트로 유인한 뒤 투자금을 받고 잠적하는 사기가 극성이다. 이에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이들 일당이 카페 회원들을 관리하는 창구로 택한 방법은 익명 채팅방인 ‘카카오톡 오픈 채팅’이다. 이들은 대포폰이나 타인의 명의로 카톡 아이디를 개설하고 거액의 투자를 유도한 뒤 강제퇴장 시키는 방식으로 피해자를 양성하고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카카오톡을 통한 재테크 상담을 미끼로 도박 투자를 권유하고 수억원을 가로 채는 범죄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늘고 있다.
A 카페를 통해 재테크 사기를 당했다는 이 아무개 씨는 수 개월 전 고수익의 투자방법을 알려준다는 이메일을 받고 A 카페에 가입했다. 다른 피해자들과 마찬가지로 이 씨 역시 카페 게시판에 이름과 연락처를 남겼고, 얼마 뒤 상담팀장라는 사람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 씨는 상담팀장이 ‘거래소라는 사이트를 통해 파워볼, 사다리 등에 참여하면 하루 평균 수익률이 100~150%이며 이곳은 합법적으로 등록된 유일한 거래소라고 안내했다’고 주장한다. 이후 이 씨는 100여 명의 사람이 참여하는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 초대됐다.
단체 채팅방에는 게임과 일명 ‘프로젝트’라 불리는 고액의 투기에 참여해 이익을 얻었다는 사람들의 인증 글이 쏟아졌다. 거액의 돈다발을 닉네임과 함께 찍은 사진, 거래소에서 입금한 내용을 캡처해 올리면 다른 사람들이 축하의 메시지를 보냈다.
이 씨는 “인증 글을 올린 사람들은 바람잡이 역할을 하는 A 카페 관계자들로 추측한다. ‘몇억 프로젝트’ 등으로 불리는 것들은 2000만 원~5000만 원을 투자하면 수일 내로 최대 10배까지 불려주는 것”이라며 “나도 지난달 4000만 원 넘게 프로젝트에 투자했고, 그 방에 있는 사람들을 포함해 10여 개에 달하는 오픈 채팅방 사람들도 개인당 수 천만 원 씩 투자한 것으로 알고 있다. A 카페 관계자들은 원금이 보장된다며 일반 게임보다 프로젝트 참여를 권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돈을 입금하자 상담팀장은 이 씨를 오픈 채팅 방식으로 운영되던 단체 채팅방과 개인 채팅방에서 강제로 퇴장시켰다. 이후 이 씨가 거래소 사이트에 접속을 시도했지만 ‘로그인할 수 없는 아이디’라는 알림창이 떴다. 이 씨는 최근 자신과 같은 피해를 본 20여 명을 모았고, 이들이 입은 피해액만 8억 원이 넘는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온라인상에는 A 카페로부터 이 씨와 같은 피해를 봤다는 사람들의 글을 쉽게 볼 수 있다. 현재 A 카페는 접근이 불가한 상태다.
네이버 관계자는 “(A카페 운영자가) 직접 카페를 폐쇄한 것은 아니고 (네이버에서) 불법적인 요소가 있다고 판단해 카페 접근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했다”고 설명했다.
문제가 지적된 A 카페는 현재 접속이 제한된 상태다.
이 씨는 “(A 카페 관계자들의) 카카오톡 아이디는 대포폰으로 개설했고, 거래소 사이트가 해외 서버로 알고 있다. 전국 각지에 피해자들이 있는데 특히 지방 쪽의 경우, 수사관들이 ‘너무 사건이 방대해 힘들다’며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며 “그들은 현재도 사이트 이름을 바꿔 같은 사기를 저지르고 있다. 훨씬 많은 피해자가 있을 거로 예상하지만, 오히려 도박으로 처벌받을까 봐 두려워 선뜻 경찰에 신고하지 못할 것”이라고 토로했다.
현재 이 씨를 포함해 전국 각지에 흩어진 피해자들은 담당 경찰서에 A 카페 관계자에 대한 수사를 의뢰한 상태다. 서울 동작경찰서 관계자는 “A 카페 피해와 관련해서는 현재 수사 중에 있다. 카카오톡을 이용해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은 대개 타인의 명의로 아이디를 개설한다”며 “요즘은 카카오톡뿐 아니라 개인정보를 요구하지 않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인터넷에서 범죄를 하기 쉬운 구조”라고 설명했다.
피해자들은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이 별다른 신분 인증 절차 없이도 개설할 수 있고, 방장이 특정인을 강제퇴장하면 대화 내용을 복구할 방법이 없어 대규모 범죄에 악용될 소지가 크다고 말한다. 반면 어떤 메신저나 마찬가지로 대포폰을 사용할 경우 범인 특정이 쉽지 않은 건 마찬가지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이 씨는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복구하기 위해 사설업체에 의뢰했지만 ‘일반 채팅방과 달리 오픈 채팅방 대화 내용은 복구할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며 “더 이상의 범죄를 막기 위해서는 오픈 채팅방 개설 시 카카오뱅크 계좌 개설처럼 신분 확인 절차를 철저히 하고, 그 내역이 기록에 남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로썬 오픈 채팅방 참여자들이 대화 기록을 남기는 방법은 수시로 카톡 내용을 백업하거나 캡처본을 만들어 놓는 것이다.
이에 대해 카카오 관계자는 “일반채팅방과 오픈 채팅방 모두 중간에 대화 내용을 캡처하거나 백업해 두지 않는 이상 본사에서 공식적으로 이를 복구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지는 않는다”며 “오픈 채팅방은 채팅방 이름과 닉네임 설정 시 금칙어를 적용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카카오톡을 이용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개설·참여가 가능하다. 문제가 있을 시 방장과 참여자 모두 신고 가능하며 신고 접수 시 내부 운영 정책에 맞춰 이용정지 등 제재를 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혜리 기자 ssssch33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