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그. 이제 철부지 같은 것들 꼴을 보지 않아서 살 것 같네.”
수향과 결혼식을 마치자 수향의 어머니가 무거운 짐을 내려놓았다는 듯이 웃으면서 말했다. 김광호는 수향의 어머니가 말하는 뜻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대학에 입학하고 수향은 아기를 낳느라고 1년 동안 휴학을 했으나 김광호는 대학 4년 동안 부지런히 공부하여 산업특기생으로 오성물산에 입사했다. 물론 복무기간이 끝난 뒤에도 오성물산 해외파트에서 근무했다.
오성그룹 구조본부장 김영수가 우즈베키스탄으로 날아왔다.
“김 사장, 이제 우리는 카나미스를 포기하기로 했네.”
김광호가 공항에서 영접을 하자 김영수가 우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본부장님, 어떻게 이렇게까지 된 것입니까?”
김광호는 가슴으로 찬바람이 훑고 지나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차창으로 고원의 나라인 우즈베키스탄의 농촌 풍경이 지나갔다.
“지분구조가 취약한 탓이야. 한국의 기업들 다 그렇지 않은가?”
“너무 억울하지 않습니까?”
“국제 금융시장은 냉정한 경제논리만 존재하고 있네. 약육강식의 잔인한 무대지.”
“그렇다고 해도….”
“카나미스를 포기하지 않으면 오성물산이 위험해지네. 당장 경영권이 넘어가지 않는다고 해도 엄청난 혼란이 올 거야.”
“그러면 지금까지 투자는 어떻게 합니까?”
“투자금만 회수하기로 했네.”
“얼마입니까?”
“2억 5000만 달러.”
2억 5000만 달러면 오성에서 투자한 금액의 절반에도 이르지 못한다. 오성물산이 투자한 돈이 5억 달러이고 인재들의 파견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것이다.
“너무 적군요.”
“오성물산이 소유하고 있는 47%의 지분 중 자네에게 10%, 고려인 회장 빅토르 최에게 10%를 넘기네. 나머지는 영국 자본과 교환하네.”
영국 자본은 이미 카나미스의 지분 10%를 갖고 있었다. 지분 30%를 갖고 있는 빅토르 최에게 10%의 지분이 넘어간다는 것이 의아했다. 그렇게 되면 영국 자본보다 빅토르 최의 지분이 더욱 많아지는 것이다. 김광호는 그들이 경영권 장악에 목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런던증시 상장에 목표가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그들은 경영보다 투기에 목적이 있는 것이다.
“자네는 어떻게 주식 매입대금을 마련할 것인가?”
김영수는 영국계 투기자본의 목적이 런던증시 상장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을 것이다.
“스위스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예정입니다.”
“영국계 은행이군.”
“예.”
“뭐 상관없네. 그래도 우리나라 사람, 오성물산 직원이었던 사람이 대표가 되는 것이 훨씬 낫지. 자네는 오성물산에서 10년 이상 근무하지 않았나? 오성맨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을 것일세. 언젠가는 우리 오성과 다시 인연을 맺을 수도 있겠지. 어려울 때는 오성에서 도울 것이고….”
오성그룹이 다른 재벌들과 다른 점은 그만두는 직원들까지 철저하게 관리하여 오성을 적대시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김영수 구조본부장의 말에 김광호는 가슴이 뭉클했다. 김영수는 카나미스에 도착하자 오성물산에서 파견된 직원들과 면담을 하기 시작했다. 오성그룹에서 반드시 필요한 사람들은 몇 시간이고 설득하여 복귀하게 했다.
김영수가 한국으로 돌아간 것은 사흘 만의 일이었다. 그가 돌아가고 나자 아내 수향이 한국에서 날아왔다. 김광호는 호텔에서 저녁을 사주면서 영국으로 이민을 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아내에게 설명했다. 아내는 10억 달러를 소유한 부자가 된다는 말에 놀랐으나 이민 간다는 말에는 걱정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그럼 우리는 한국에 못 와요?”
아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김광호를 쳐다보았다.
“그렇지는 않아. 생활 터전을 영국으로 옮기는 것뿐이지 언제든지 한국에 오고 싶을 때 올 수 있어.”
“한국에 남을 수는 없어요?”
“남을 수 없는 것은 아니야. 영국에서 이민을 받아줄 때 가야지.”
김광호는 오성물산과 한국을 배신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말을 차마 아내에게 할 수 없었다. 아내는 아무리 설명을 해도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당신에게 생긴 거예요.”
“내가 가장 적임자이기 때문이야. 나는 카나미스를 런던증시에 상장해야 돼. 우리 인생에 이런 기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거야. 이 기회를 버릴 수는 없어.”
“맞아요. 반드시 잡아야 돼요.”
아내가 배시시 웃으면서 말했다. 저녁식사를 마치자 김광호는 아내를 데리고 호텔의 스카이라운지로 올라갔다. 호텔의 스카이라운지에서는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여보. 내 인생에서 가장 성공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
라운지에서 칵테일을 한 잔씩 마실 때 아내가 아름다운 밤풍경을 내려다보면서 김광호에게 물었다.
“모르겠는데.”
김광호는 평범한 가정주부가 성공이라고 내세울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서 고개를 흔들었다.
“당신을 잡은 거지 뭐야.”
아내가 까르르 웃으면서 김광호의 가슴에 얼굴을 기대왔다.
달이 높이 떠 있었다. 고원의 나라 우즈베키스탄의 만월이 신비스러운 월광을 뿌리고 있는 것이 창으로 내다보였다. 호텔에서 남편의 사택으로 돌아오자 먼저 달려든 수향이었다. 남편이 10억 달러를 소유한 부자가 된다는 기쁨과 영국에 가서 총리를 면담하는데 자신과 부부동반한다는 사실이 흥분하게 했는지 모를 일이었다. 견딜 수가 없었다. 수향은 남편의 하체로 얼굴을 가져갔다.
“으음.”
남편은 수향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기꺼워하고 있었다. 남편과 이런 시간을 갖는 것은 오랜만의 일이었다. 몸 안의 모든 기운이 소진될 때까지 사랑을 나눌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때요?”
“좋아. 당신이 최고야.”
“그럼 나만 사랑할 거죠?”
“물론이지. 나에게는 당신밖에 없어.”
입술에 침도 바르지 않는 거짓말이라고 해도 수향은 기분이 좋았다. 몸을 일으켜 가슴을 남편의 얼굴로 가져가서 문질렀다. 남편이 그녀의 가슴을 두 손으로 잡아서 주무르다가 입속에 넣었다. 수향은 구름을 탄 것 같은 기분이었다. 황홀한 전율이 혈관을 타고 물결처럼 출렁거린다. 남편이 그녀의 몸속으로 깊숙이 들어왔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