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여성 간음 혐의 받자 “학대로부터 구조” 주장…그 실체는 전 부인 처남 살해 15년 복역한 강력범죄자
지적장애를 앓고 있는 여자와 결혼하게 해달라며 다수의 복지기관 , 인권단체에 도움을 청하던 한 남성이, 사실은 강력범죄 유력 용의자라는 점이 드러났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임준선 기자.
40대 남성인 A 씨는 자신보다 한 살 더 많은 여성 B 씨를 우연히 알게 됐다. 둘은 같은 동네에 거주해 교류가 잦았다. 마음이 잘 통했던 둘은 서로 사랑하게 됐고 연인으로까지 발전했다. A 씨는 교제 중 B 씨가 지적장애를 앓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지만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대화를 나누거나 일상을 보내는 데에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던 것. A 씨는 오히려 지적장애를 겪고 있는 B 씨를 진심으로 보살펴주고 싶어 했다.
이 과정에서 A 씨는 B 씨가 함께 사는 어머니로부터 숱한 학대를 받아 왔다는 사실을 인지했다고 한다. A 씨는 B 씨를 어머니로부터 하루빨리 격리시키기 위해 혼인을 계획, 지난 7월 30일 B 씨와 혼인신고를 했다. 일주일 뒤 A 씨는 B 씨의 짐을 모두 자신의 집으로 옮겨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A 씨는 “이미 서로 결혼생각이 있었던 만큼 아내와 충분한 논의 끝에 혼인신고를 했다”며 “아내는 평소 어머니를 무서워했던 만큼 내가 대신 어머니에게 혼인 사실을 알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B 씨의 어머니는 둘의 혼인을 반대했다. 오히려 A 씨를 납치·감금 등의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A 씨와 B 씨는 경찰 수사에서 서로 사랑하는 관계임을 수차례 증명, 진술해야만 했다. 서로 주고받던 문자메시지와 음성통화 내용, B 씨가 그간 받아온 학대 증거 등도 경찰에 제출했다. 하지만 경찰은 둘을 분리조치했고 B 씨를 피해자 보호시설로 보냈다. A 씨는 이를 두고 “아내가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둘의 관계를 인정하지 않는 건 장애인의 권익을 침탈하는 것이거니와 명백한 수사권 남용”이라며 “담당 수사관의 실적, 승진 욕심도 의심된다”라고 비판했다.
A 씨는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중랑경찰서 경찰관을 형법상 직권남용 혐의로 고소하고 서울지방경찰청에 이와 관련한 감찰을 진행해달라고 요구했다. B 씨 어머니에겐 가정학대 등의 혐의를 씌워 경찰에 고발했다. A 씨는 “장애 여성도 자신의 의사대로 혼인할 권리가 있다”며 아내의 인권침해 사실과 그 억울함을 수많은 복지관, 인권단체 등에 알려 도움을 구했다.
A 씨가 구치소에 수감된 이후에도 아내의 인권침해 정황 등을 자필로 써서 기자에게 보낸 편지.
한국장애인개발원 권익옹호팀의 명노연 변호사는 “과거 A 씨가 도움을 구한다며 찾아왔었는데, A 씨가 B 씨를 가정폭력이 만연한 곳에서 빼내온 것인지 혹은 발달 장애인을 약취 유인해 강제로 혼인 신고한 건지는 쉽게 판단내릴 수 없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B 씨가 경찰조사를 받던 당시 동석했던 사회복지사 말에 따르면, B 씨는 A 씨와 함께 살 의사가 없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진다. 심리상담 내역 등엔 B 씨가 의미도 모른 채 혼인 신고서에 도장을 찍었다는 내용이 기록된 것으로 전해진다.
사실 A 씨는 지난 2002년 살인을 저지르고 15년간 복역한 강력범죄자였다. 자신의 전 부인을 폭행하고 이혼 절차를 밟는 과정에서 처남을 살해한 것. A 씨는 살인죄로 교도소에 수감되던 당시에도 교도관, 경찰들의 태도 등을 문제 삼아 국가인권위원회에 수차례 제소하곤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A 씨는 전남경찰청이 쫓던 강력범죄 용의자이기도 했다. 과거 전남 강진군에서 초등학생 여자 2명을 성폭행 및 살해한 혐의 등을 받고 있던 것. 전남경찰청은 A 씨를 지난 2000년과 2001년에 각각 발생한 초등학교 2학년생 김성주 양, 1학년생 김하은 양 실종 사건의 유력 용의자로 추정해 왔다.
전남경찰청 관계자는 “우리 쪽에서 용의자가 된 지 10년이 넘었고 이와 관련한 정황은 많았지만 살인, 시체 유기 등은 명백한 증거가 필요해 검찰에 송치하지 못 하고 있던 상황”이라며 “A 씨가 최근 출소하면서 다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관련 자료도 모두 수집된 만큼 이번엔 반드시 마무리 지을 셈”이라고 밝혔다.
2000년대 초반에 발생한 두 사건은 실종 경위가 비슷해 연쇄실종 사건으로 알려지며 매스컴에서 대대적으로 다뤄지곤 했다. 김성주 양과 김하은 양은 모두 전남 강진군 강진읍에서 오후 1~2시쯤 하교하는 길에 사라졌다. 두 학생이 다니던 초등학교는 서로 인접해 있었다. 사건 발생 직후 경찰은 대대적인 수사에 나섰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진 못했다.
전남청은 2000년대 중반 두 사건에 대한 재조사를 시작했고 이때 A 씨를 용의자로 특정했다. 당시 언론은 경찰이 A 씨가 여행 중 자신의 죄를 합리화하는 듯한 내용의 메모를 남긴 점과 A 씨가 김성주 양이 실종된 해 7월에 군에 입대, 김하은 양이 실종되기 몇 달 전에 의병제대한 점 등을 이유로 용의자를 특정했다고 보도했다. 전남경찰청 관계자는 “이는 우리가 포착한 정황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며 그 외 정황에 대해선 말할 수 없다“고 밝혔다.
A 씨의 범행이 지금이라도 인정될 경우 A 씨는 그 처벌을 피할 수 없다. 김한규 법무법인 공간 변호사는 “2015년 7월 살인죄의 공소시효가 폐지되면서 2015년까지 공소시효가 만료되지 않은 살인죄에 대해선 그 처벌이 언제든 가능하다”며 “2000년과 2001년에 발생한 살인죄의 공소시효는 2015년, 2016년까지다. 따라서 살인을 했다는 결정적 증거나 혐의점이 드러날 경우 A 씨는 처벌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실종 학생 가족들은 자신의 딸이 살아있을 것이라 믿으며 전국을 돌아다니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전남경찰청 관계자는 “피해 가족들도 A 씨가 용의자임을 알고 있다. 죽기 전에 A 씨가 자기 딸을 죽였는지 안 죽였는지를 듣는 게 그들의 소원”이라고 전했다.
이성진 기자 reveal@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