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놈이 물건은 물건이란 말이야.’
김동철은 김영택의 유들유들한 얼굴을 떠올리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일수록 성욕이 왕성하다. 김동철도 24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이 자리까지 올라온 것은 결코 실력만이 아니다. 실력도 뛰어나야 하지만 인맥도 철저하게 관리해야 한다. 김동철은 금융계에 자신의 사단을 만들어 나갔다. 자신을 추종하는 사람이 아니면 가차없이 잘랐고, 자신을 추종하는 자들은 무조건 밀어서 요직에 앉혔다. 정글에서는 살아남는 자가 승리한다. 그리고 승리자는 언제나 전리품을 쟁취한다.
김동철은 밤에 있는 약속을 모두 취소했다. 김영택이 소개하는 여자와 사랑을 나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김영택이 김동철을 위해 마련한 장소는 방배동에 있는 조용한 주택이었다. 누가 살고 있는 집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정원은 아름다웠고 집도 고급스러웠다. 김영택은 2층의 방을 쓰라고 했다. 김동철은 대문에서 초인종을 누르면서 긴장했다. 문을 열어준 것은 젊은 여자였다. 정원까지 마중을 나오지 않고 “들어오세요” 하고 짧게 끊어서 내던지는 듯한 말투가 비디오폰에서 흘러나왔다. 철컥 하고 자물쇠가 풀리자 김동철은 긴장한 채로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
정원의 잔디밭이나 화단, 담 쪽의 잘 가꾸어진 정원수들을 보면 한눈에 부유층 소유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김동철은 정원의 포석을 밟고 1층으로 들어갔다. 1층 현관문을 열자 대문을 열어준 듯한 젊은 여자가 기다리고 있다가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머리를 숙였다가 고개를 드는 모습을 보니 예쁘장한 얼굴이다. 김동철은 가슴이 설레왔다. 단정한 머리라던가 정장을 하고 있는 모습이 은행에서 퇴근하고 바로 이 집으로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정희숙 씨인가?”
김동철은 긴장을 늦추지 않고 젊은 여자에게 물었다. 여자는 브래지어가 받치고 있는 가슴이 크고 풍만했다.
“네. 이쪽으로….”
정희숙이 2층으로 올라가는 목제 계단을 가리켰다. 김영택의 말대로 1층에는 아무도 없는지 불이 꺼져 있었다. 계단을 밟고 2층으로 올라가자 상당히 넓은 리빙룸 겸 서재에 소파와 다탁이 놓여 있고, 다탁에는 양주와 안주가 차려져 있었다.
“벌써 술을 준비했군.”
김동철은 만족하여 양복 상의를 벗었다. 정희숙이 상의를 받아서 침실 쪽으로 들어갔다. 옷걸이가 침실에 있는 모양이었다. 열린 문으로 보자 원형의 호화로운 침대에 하얀 시트가 깔려 있었다. 김동철은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고 소파에 앉았다. 정희숙이 침실에서 나와 김동철의 옆에 앉았다. 정희숙의 몸에서 연하게 화장품 냄새가 풍겼다.
“이 집에는 아무도 없나 보지?”
김동철이 사방을 둘러보는 시늉을 하면서 물었다.
“네. 우리 두 사람뿐이에요.”
정희숙이 배시시 웃으면서 양주를 따랐다.
“불이 너무 환한 것 같지 않아? 창으로 들어오는 빛만 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김동철이 정희숙이 따른 양주를 한 모금 마신 뒤에 말했다. 그러자 정희숙이 벽의 스위치를 눌러 끈 뒤에 옆에 와서 앉았다. 리빙룸의 불을 껐지만 어둡지는 않았다. 초저녁이라 사방의 불빛이 한데 어우러져 리빙룸에 희미한 빛을 던지고 있었다.
“술 마실 줄 알지?”
김동철은 정희숙의 잔에도 술을 따랐다. 이런 일은 술을 마시지 않으면 쑥스러운 법이다. 더구나 그는 새파랗게 젊은 나이도 아니지 않는가.
“네.”
|
||
“이리 와.”
김동철은 정희숙을 안아서 무릎에 앉혔다. 정희숙이 그의 목에 두 팔을 감고 키스를 했다. 김동철은 정희숙의 둔부를 쓰다듬었다. 그의 몸이 순식간에 불덩어리처럼 달아올랐다.
정희숙은 젊었지만 깊고 뜨거운 몸뚱이를 갖고 있었다. 김동철은 그날 밤 전에 없이 황홀한 기분을 만끽했다. 술집의 호스티스들이나 유부녀들과는 다르다.
“너는 왜 이런 일을 하는 거지?”
김동철은 격렬한 사랑의 행위가 끝나자 침대에 나란히 누워서 정희숙에게 물었다. 어둠 속에서도 정희숙의 알몸이 물고기의 배처럼 하얗게 형광 빛을 발했다.
“그런 거 묻지 않으면 안돼요?”
정희숙이 그의 가슴에 얼굴을 얹어 놓고 반문했다. 그의 복부에 밀착되어 있는 둥근 가슴이 부드러웠다.
“나는 네가 좋아서 그래. 너는 내가 싫지?”
“아뇨.”
“나이가 많은데 싫지 않아? 네 또래들이 좋은 거 아니야?”
“아저씨도 좋아요.”
정희숙이 그의 위로 올라오면서 눈웃음을 뿌렸다. 김동철은 정희숙의 말에 가슴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젊었을 때는 사랑다운 사랑을 한 번도 하지 못했다. 오로지 고시공부를 하느라고 독서실에 파묻혀 지냈다. 30세가 가까워서야 가까스로 고시에 패스한 뒤에는 사랑을 할 시간이 없었다. 고시에 패스했다고 하여 중매가 줄지어 들어오는 바람에 몇 번 선을 보고 조건 따져서 결혼했다. 고시에 합격한 뒤에는 경제 부처의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김동철은 나이가 50세가 되고 모든 것이 안정되자 젊었을 때 가슴 시린 사랑을 해보지 못한 것이 후회되었다. 누군가를 열렬하게 사랑하고 누군가의 사랑을 받고 싶었다.
김동철의 엽색 행각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젊은 여자를 만나는 것은 대개 술집 여자들이었고 유부녀들은 발각날까 봐 조마조마하여 뜨거운 사랑을 나눌 수 없었다.
“정말 내가 좋은 거야?”
“네. 정말 좋아요. 아저씨는 내가 어때요?”
“희숙이가 좋아.”
“정말요?”
“정말이야.”
“아이 좋아.”
정희숙이 키스를 하고 몸을 마구 흔들었다. 젊은 여자가 좋은 것은 애교를 부리기 때문이다. 정희숙이 몸을 흔들어대자 김동철은 하체가 또 다시 팽팽하게 부풀어 올랐다.
“우리 자주 만날 수 있을까?”
두 번째 사랑이 끝났을 때 김동철이 정희숙의 위에서 물었다. 그의 나이에 비해서는 무리를 했다. 그러나 팽팽한 몸뚱이를 갖고 있는 정희숙과 헤어지고 싶지 않은 것이 그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저는 좋은데 시간이 있으세요?”
“있고 말고… 희숙이가 만나자고 하면 언제든지 시간을 낼 수 있어.”
김동철은 그날 밤 12시가 되어서야 방배동의 그 집에서 나왔다.
‘희숙이….’
차안에서 시트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아 속으로 가만히 그녀의 이름을 되뇌었다. 예쁘고 사랑스러운 여자였다.
이틀 후 김동철은 자신의 소유로 되어 있는 여의도의 오피스텔을 찾아갔다. 정년퇴직을 한 뒤에 한가하게 글이나 쓰면서 소일하려고 마련했던 오피스텔이었다. 전에 있던 사람이 나간 뒤에 세입자가 들어오지 않아 비어 있었다. 몇 달 동안 비워둔 탓에 먼지가 켜켜이 쌓여 있었다. 관리인을 불러 도배와 칠을 새로 하고 깨끗하게 단장을 하게 했다.
김영택이 주주총회에서 정식으로 은행장에 선출된 것은 김동철이 정희숙을 만난 지 열흘이 되었을 때였다.
“선배님의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김영택은 그날 밤에 사과박스 두 개를 가지고 집으로 찾아와서 넙죽 절을 했다. 사과박스에는 물론 현금이 들어 있었다.
“이 사람 왜 이래?”
김동철은 김영택의 어깨를 잡아 일으켰다. 김영택에게 양주 석 잔을 따라 주고 서재에서 한담을 나누었다.
“정희숙이 내가 좀 데리고 살려고 해.”
김동철은 김영택의 귓전에 은밀하게 속삭였다. 여의도 오피스텔을 새로 단장하게 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