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대선 출마 선언을 하자 사방에서 네거티브가 터져 지지도가 하락했다. 게다가 여당이 야당의 다크호스였던 경기도지사 장영규를 영입하면서 상황이 달라지고 있었다. 그는 이제 장영규에게도 도전을 받고 있는 것이다. 장영규는 야당에서 부동의 3위를 고수하고 있었으나 과감하게 야당을 탈당하여 여당으로 들어왔다.
‘장영규는 야당을 탈당하면서 정치적 생명이 끝났어.’
야당의 유력한 대통령후보로 거론되던 장영규는 지지도가 상승하지 않자 며칠 동안 장고를 하더니 야당을 탈당하여 여당에 입당한 것이다. 그를 설득하여 야당에서 여당으로 옮기게 만든 인물이 저명한 소설가라는 사실도 기종철을 놀라게 했다.
장영규는 여당으로 이적한 뒤에 언론으로부터 개혁주의자가 아니라 철새 정치인이라는 집중포화를 받았다. 심지어 보수 신문에서는 그가 옛날의 한 대통령에게 아부를 하던 장면까지 그대로 칼럼에 실어 국민들에게 충격을 주기까지 했다.
“장 지사의 지지도가 높은데 정 후보가 이길 수 있을까?”
D신문의 조갑인 기자가 기종철의 어깨를 툭 치면서 물었다. 정민구 진영에서는 수행기자들까지 그를 후보라고 부르고 있었다. 기자들은 자신들이 수행하는 정치인과 오랫동안 친밀하게 지내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그 정치인을 지지하고, 투표를 할 때는 자신이 수행하던 정치인에게 투표를 한다. 그 바람에 수행기자가 담당한 정치인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어 그가 정권을 잡으면 정계로 진출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글쎄. 조직력은 앞서는데 국민경선이니까 어떨지 모르지.”
기종철은 담배연기를 내뿜으면서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조갑인은 장영규를 지지하고 있었다. 정민구는 옛날 대통령들처럼 민주화 투쟁을 한 일도 없었기 때문에 대중적인 지지기반이 없었다.
“방송이 정 후보를 공격하는 것 같던데?”
“대통령이 누구를 지원하는지 모르겠어.”
“대통령이 정 후보와 사이가 안 좋다는 소문이 있어.”
“전에는 같은 코드가 아니었나?”
“대통령이 워낙 인기가 없으니까 정 후보 진영에서 거리를 둬야 한다며 비난한 적이 있잖아?”
“그야 의도적인 거지.”
“대통령은 자존심이 센 사람이야. 누가 조금만 건드려도 폭발한다구.”
“전두환 대통령은 자신을 밟고 가더라도 선거에서 승리하라고 했다는데 반대군.”
기종철이 한숨을 내쉬었다. 전두환 대통령은 대통령선거가 본격적으로 막이 오르자 노태우 후보에게 자신을 밟고 가더라도 선거에 승리하라고 했었다. 정민구에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지금의 대통령과는 다른 것이다.
“야당은 어때?”
“이정길과 박연숙의 싸움이 치열해지고 있어. 누가 이기든 엄청난 후유증에 시달릴 거야.”
“박연숙의 지지도가 높은데 왜 그런지 모르겠어.”
이정길과 박연숙은 야당 후보가 되기 위해 치열한 경합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게 말이야. 여자 후보가 그렇게 인기가 좋은 적이 여태 없었어.”
조갑인도 국민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박연숙은 당 대표를 지낸 것 외에는 뚜렷한 활동 경력이 없었다. 그녀가 한 일은 분열 직전의 야당 대표가 되어 당을 추스른 일밖에 없었다. 경제전문가도 아니고 정치전문가도 아니었다. 한국의 장래에 대한 어떤 비전도 없었다. 그러나 이정길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전자회사의 사장을 지냈고 민선 서울시장도 역임했다. 다만 제3공화국 치하에서 전자회사를 하다 보니 막대한 부를 축적했고 부패한 면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여론 조사는 그에게 50%대의 지지도를 보이고 있었다. 역대 대통령후보들 중 가장 높은 지지도였다.
이내 정민구가 환호하는 지지자들의 박수를 받으면서 집을 출발했다. 기종철도 차를 끌고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정민구의 하루 일과는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전 내내 지지자들 모임에 참석하고 틈틈이 경선에 대비하여 조직을 강화하고 있었다. 현재는 여야를 막론하고 이정길이 가장 막강한 후보였다.
“총리가 사표를 내고 출마한답니다.”
오전 11시가 되자 총리실을 담당한 기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총리가?”
기종철은 깜짝 놀랐다.
“예. 이렇게 되면 전 총리도 경선에 참여할 거고 총리 출신이 두 명이나 됩니다.”
“아직 사표가 수리된 것이 아니니 코멘트하지 않겠습니다.”
정민구는 기자들의 질문에 간단하게 대답했다. 기종철은 정민구의 코멘트를 신문사에 송고하고 정민구 진영의 움직임도 송고했다.
정민구는 오후가 되자 춘천의 한 대학에서 강의를 하기 위해 당사를 출발했다. 대학 강의는 기자들을 위한 것이고 실제로는 춘천지역의 당원들 지지를 끌어내기 위한 것이었다.
“선배, 같이 타고 가요.”
언제 나타났는지 오미란 기자가 기종철의 차에 냉큼 올라탔다. 총리가 출마할 예정이기 때문에 대학 강의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알 수 없어 오미란도 따라나서는 것이다. 오미란은 기종철과 같은 신문사지만 주간부에서 일을 하고 있다.
“차는 어떻게 했어?”
기종철은 오미란을 힐끗 돌아보면서 물었다. 오미란은 검은색 재킷 안에 보라색의 니트 셔츠를 받쳐 입고 있었다. 셔츠의 앞섶이 봉긋할 정도로 가슴이 컸다.
“센터에 맡겼어요. 소리가 좋지 않아서….”
오미란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날씨가 좋지 않네. 비가 오려나?”
기종철은 운전을 하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오미란이 재킷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담배를 꺼내 피우기 시작했다.
“선배, 나 출판사나 할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
오미란이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으면서 말했다.
“회사 그만두고?”
“어차피 주간부 인력 감축할 거잖아? 잘리기 전에 그만두는 게 낫지.”
“자본이 꽤 있어야 할 걸.”
“선배가 좀 도와줘야지.”
오미란이 기종철에게 몸을 기대오면서 눈웃음을 쳤다. 오미란의 풍성한 머리숱에서 샴푸 냄새가 풍겼다.
“얼마나 필요한데?”
“1억 5000만 원… 5000만 원은 사무실 임대비용이고 1억 원은 광고와 책 제작비야.”
“넌 얼마나 투자할 거야?”
“내가 무슨 돈이 있어?”
“그럼 나보고 전부 투자하라는 거야?”
“선배야 돈 많잖아? 가진 거라고는 돈밖에 없는 사람이면서 뭘 그래?”
“그러면 내가 사장이네?”
“에이… 무슨 소리를 그렇게 해? 선배는 그냥 빌려주는 거야.”
“그럼 나는 무슨 이익이 있어? 은행에 넣어 둬도 이자가 얼마나 늘어나는지 알아?”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이익이 있잖아?”
오미란이 말장난을 하듯이 생글생글 웃었다.
“그게 뭔데?”
“애인이 고무신 거꾸로 신지 않는 거.”
오미란의 말에 기종철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음을 터트렸다.
“도와주는 거지? 내가 부탁할게.”
“네 부탁을 어떻게 거절하겠니?”
“와! 역시 선배가 최고야. 내가 멋진 서비스를 해줄게.”
오미란이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고 기종철의 바지 지퍼를 내렸다.
“뭘하는 거야?”
기종철이 깜짝 놀라서 오미란을 쳐다보았다.
“핸드 플레이. 마우스 플레이를 해줄까?”
오미란이 웃음을 깨물었다. 오미란의 손은 어느 사이에 기종철의 바지 안에 들어와 있었다. 오미란의 따뜻한 손에 잡힌 하체가 불끈거렸다.
“사람들 보면 어쩌려고 그래?”
“차에 선팅을 할 때는 이런 짓 하려고 한 거 아니야? 싫어?”
“아니.”
기종철은 당연히 싫지 않았다. 오가는 차량에 신경이 바짝 쓰이기는 했으나 차유리는 선팅이 되어 있고 앞에서 오는 차 안에서는 핸들 밑까지 보이지 않을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