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의 후보가 결정되면 한 방에 보낼 수 있다.’
여당에서는 이정길과 박연숙을 향해 엄포를 놓았다. 이정길과 박연숙은 여당이 한 방에 보낼 수 있는 후보가 상대방이라고 서로 비난했다. 기자들은 엄포의 내용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박연숙의 과거부터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리 조사해도 한 방에 보낼 수 있을 정도의 큰 사건은 찾을 수 없었다.
“대체 박연숙을 한 방에 보낼 수 있다는 내용이 뭡니까?”
기종철은 이정길과 박연숙을 한 방에 보낸다는 여당의 송학제 의원에게 물었다.
“글쎄요. 그걸 지금 공개할 수 있습니까? 아직 본선이 남았지 않습니까?”
송학제가 비대한 몸을 흔들면서 웃었다.
“권력형 비리입니까?”
“이정길이나 박연숙이 언제 권력을 갖고 있었습니까?”
송학제가 반문을 했다. 노련한 정치가답게 오히려 반문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애정 문제입니까?”
“지금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대충이라도 좀 알려주십시오.”
“이 후보나 박 후보가 정치를 하기 전에 15~16년 동안 무엇을 했는지 한 번 살펴보십시오.”
“특별한 문제가 없는 걸로 보이는데요.”
“그러면 나중에 봅시다.”
송학제는 더 이상 언급을 하지 않았다. 기자들은 박연숙이 독신으로 살고 있지만 자식이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혹을 갖기 시작했다. 전직 두 대통령들이 숨겨 놓은 자식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화제가 된 일이 있었다. 박연숙이 독신으로 있으면서 숨겨 놓은 자식이 있다면 국민들을 기만한 것이고, 고고하고 깨끗한 이미지가 한순간에 날아갈 것이다. 그러나 기자들이 아무리 조사를 해도 박연숙에게는 숨겨놓은 자식이 없었다.
이정길은 주가조작 사건으로 박연숙과 여당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았다. 강남의 부동산 투기에 대해서도 비난을 받았다. 주가조작 사건에 휘말린 이정길은 자신이 투자를 해서 손해를 봤다는 CNB의 실제주인이라는 소문이 파다하여 검찰 조사까지 받았다. 그러나 CNB의 대표이사는 미국으로 도피하고 있었다. 그가 귀국하면 CNB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기 때문에 한 방에 보낼 수 있다는 여당의 주장이 이정길을 겨냥한 것이라는 말이 설득력 있게 들리기도 했다.
“어머, 웬일이세요?”
기종철이 정민구를 수행하고 퇴근시간이 되어 강남의 비밀 요정 ‘향촌’에 도착하자 마담 최숙희가 반갑게 맞이했다. 이재형의 산소 이장 사건은 신문에 보도하지 않았다. 정계에 복귀하여 대통령출마 선언을 하면 그때 기사화하기로 데스크와 합의했다. 최숙희는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해 검은색의 롱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한때 탤런트로 명성을 떨쳤기 때문에 인지도가 높은 여자였다. 그녀가 거느리고 있는 아가씨들도 예쁘고 수준이 높아서 물이 좋기로 유명했다.
“마담이 보고 싶어서 왔지.”
기종철은 최숙희의 허리를 안으면서 말했다.
“호호호. 괜한 거짓말을… 취재하러 오신 거예요? 아니면 술을 마시러 온 거예요?”
“술을 마시러 왔지.”
“혼자?”
“자기하고 둘이서….”
“정말?”
최숙희가 눈을 빛내면서 기종철을 쳐다보았다. 최숙희도 기종철이 돈이 많은 독신남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기종철이 돈이 많은 것은 어머니가 부동산투기를 했기 때문이었다. 강남에서 20년 동안 치맛바람을 일으키면서 복부인 노릇을 하더니 60이 채 안 되어 심장마비로 죽고 말았다. 어머니의 재산을 상속하고 보니 부동산이 170억 원이었고 예금이 20억 원이나 되었다. 기종철은 뜻밖에 횡재를 한 것이다. 아버지는 기종철이 어릴 때 교통사고로 죽었다.
‘돈만 잔뜩 벌더니 쓰지도 못하고 돌아가셨군.’
기종철은 어머니의 죽음이 허망했다.
“그래. VIP룸에서 마실 거야.”
“아가씨는?”
“마담이나 있으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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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은 어떤 걸로 하실래요?”
최숙희가 기종철의 상의를 받아 걸면서 물었다.
“시바스 리걸.”
기종철은 최숙희의 봉긋한 가슴을 훔쳐보면서 대꾸했다.
“18년산이 있는데 괜찮으시겠어요?”
“그 정도면 괜찮지.”
“잠깐만 기다리세요.”
최숙희가 밖으로 나가자 기종철은 소파에 앉아서 담배를 피워 물었다. 향수를 뿌렸는지 방안에서 은은한 재스민 냄새가 풍겼다. 이내 웨이터가 술과 안주를 가지고 와서 탁자 위에 차렸다. 최숙희가 방으로 들어온 것은 10분쯤 지났을 때였다. 최숙희는 롱드레스 대신 보라색 계열의 슈미즈 차림이었다. 최숙희의 풍만한 육체가 은은하게 비치는 슈미즈였다.
“송학제 의원 자주 와?”
기종철은 스트레이트로 위스키를 두 잔 마신 뒤에 최숙희에게 물었다. 최숙희는 얼음을 띄워서 한 모금씩 천천히 마셨다.
“가끔이요. 요즘엔 좀 뜸했어요.”
송학제는 철저하게 부패한 국회의원이다. 기업들에게 닥치는 대로 돈을 갈취하여 악명이 높았다. 송학제는 부패한 국회의원이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나돌아 내년에 공천에서 탈락할 것이 확실시되자 여당 후보에게 충성을 보이기 위해서 야당 경선 후보들을 집중적으로 공격하는 저격수 역할을 하고 있었다.
“내 부탁 하나 들어줄래?”
“무슨 부탁인데요?”
“송학제를 불러서 술을 먹인 뒤에 야당 후보를 한 방에 보낼 수 있는 내용이 뭔지 좀 물어봐. 은밀하게 해야 돼.”
“뭐 그런걸 물어보라고 그래요?”
최숙희가 기종철에게 머리를 기대면서 웃었다. 최숙희의 몸에서 여인의 육향이 물씬 풍겼다. 기종철은 최숙희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물어봐. 내가 부탁을 하잖아?”
“알았어요.”
최숙희가 눈웃음을 쳤다. 기종철이 강남의 비밀 요정 ‘향촌’에서 돌아온 것은 밤 12시가 지났을 때였다. 최숙희는 기종철이 VIP손님이었기 때문에 최대한 서비스를 해주었다. 욕실에서 함께 샤워를 하고 침대에서 격렬한 사랑을 나누었다.
“송학제 의원은 별 거 없는 것 같아요. 이미 옛날에 매스컴에 다 보도되었던 내용이에요.”
최숙희가 전화를 걸어온 것은 나흘이 지났을 때였다. 예상은 하고 있었으나 실망스러운 내용이었다.
“누구를 겨냥한 거래?”
“이정길이요. 여당에서는 이정길을 노리고 있어요.”
여당에서 이정길을 겨누고 있다면 이정길이 야당 경선에서 승리할 확률이 100%라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여당의 정민구와 이정길이 대통령선거에서 맞붙게 될 것이다. 대통령이 결정적으로 정민구를 곤경에 빠트리지 않으면 조직에서 앞서는 정민구가 여당 경선에서 승리할 것이다.
“알았어. 고마워.”
“언제 오실래요? 맛있는 거 한 번 안 사 주실래요?”
“내일 오후에 야외에 나갈까?”
“좋아요.”
최숙희가 기분 좋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기종철은 송학제가 최숙희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신문사의 정치부 기자는 하루도 쉴 날이 없다. 특히 대통령선거 기간에는 24시간 밀착 취재를 해야 한다. 그러나 본격적인 선거가 시작되지 않았기 때문에 최숙희를 위하여 하루쯤 시간을 낼 수 있을 것이다. 최숙희의 비밀 요정 향촌에는 여당 정치인들이 무시로 출입하기 때문에 중요한 정보를 빼낼 수 있을 것이다.
“저 기종철입니다.”
기종철은 이정길 캠프의 김상호 의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당의 송학제 의원에게 정보를 캐내라고 한 것은 야당의 김상호 의원이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