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난데 당신 어디야?”
이준기는 차로 향하면서 아내 소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까 세검정이라고 얘기했잖아요? 그런데 여기 정민구 대표 부인이 와 있어요.”
아내가 속삭이듯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대선 후보 부인들을 만나면 안 된다고 그랬잖아?”
이준기는 걸음을 멈추고 소영에게 말했다. 재벌그룹 며느리가 대선의 유력한 후보 부인을 만나면 정경유착이라는 구설에 오를 수 있는 것이다.
“그 분이 나오는지 알았으면 이 회합에 안 왔지요. 내가 오는 걸 알고 일부러 오신 것 같아요.”
“그러면 적당한 기회를 봐서 빠져 나와. 기자들 눈에 안 띄게 하고….”
소영은 아버지 이정행과 친구인 전 부총리 신익성의 딸이다. 피아노를 전공했는데 지금은 대학에 나가고 있다. 대학에서 교수 자리를 주겠다고 했지만 사회적인 위치 때문에 구설에 오를까봐 강사로 지내고 있다.
“알았어요. 당신은 어디에요?”
“아버지하고 식사하고 있어. 2차로 이어질 모양이야.”
룸살롱에서 술을 마시는 것을 숨기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
“그럼 이따가 집에서 만나요.”
소영이 먼저 전화를 끊었다. 전화 위치를 추적해 보자 세검정 쪽이 틀림없었다. 이준기는 2시쯤 들어가면 되겠다고 생각하고 친구들이 기다리는 호텔로 달려갔다.
“야, 임마 왜 이제야 오는 거야?”
이준기가 호텔에 있는 회원 전용 룸살롱 ‘귀천’에 이르자 먼저 와 있던 친구들이 손가락질을 하면서 왁자하게 웃어댔다. 친구 놈들 옆에는 벌써 반라의 아가씨들이 한 명씩 붙어 앉아 있었다.
“노친네가 붙잡고 도무지 놔줘야지. 간신히 빠져 나왔어.”
이준기는 상의를 벗고 소파에 털썩 앉았다. 마담이 재빨리 이준기의 상의를 받아서 걸었다. 귀천의 VIP 룸이기 때문에 넓고 실내 장식도 화려하다.
“오래간만인데 한 잔 해라.”
신문사에서 정치부 기자 생활을 하고 있는 기종철이 이준기에게 잔을 내밀었다.
“너는 장가 안 가냐?”
이준기는 기종철의 잔을 받으면서 웃었다. 놈을 만날 때마다 상투적으로 물어보는 말이다. 어머니가 복부인 노릇을 하여 돈을 꽤 많이 갖고 있는 기종철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장가는 뭣하러 가?”
“지금은 혼자 사는 것이 편할지 모르지만 나이가 들면 자식을 갖고 싶을 걸.”
“자식은 애물단지야.”
기종철은 벌써 옆에 앉은 아가씨의 가슴을 만지면서 즐기고 있었다. 파트너의 허연 가슴이 풍만하게 드러나 있었다.
“그런데 대통령은 누가 되는 거야? 너는 신문사 기자니까 정보를 알고 있지 않냐?”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회계법인의 후계자로 상무 자리에 있는 육삼일이 물었다. 육삼일은 얼굴이 가무잡잡하고 머리가 곱슬머리였다. 이름이 전부 숫자로 되어 있어서 학교 다닐 때는 친구들이 노름판에서 쓰이는 도리짓고 땡의 망통이라는 별명으로 불렀었다.
“여론조사를 보면 모르겠냐? 거의 매일같이 신문에 나오잖아?”
기종철의 대답은 건성이었다. 정치부 기자라고 하면 으레 묻는 말이기 때문에 퉁명스러운 것이다.
“우리나라 여론조사 엉터리라면서?”
“오차 범위가 3% 내외라고 안 해?”
“누가 그런 여론조사를 믿냐? 그건 그렇고 한방이면 보낸다는데 한방이 대체 뭐야?”
“그걸 알면 기사로 나갔지 여태 있겠냐?”
고등학교 동창들의 모임이라 시끄럽기 짝이 없었다. 그래도 재벌 2세들의 모임이었고 일정 수준의 재산이 없으면 모임에 가입할 수 없었다.
자동차그룹의 아들 정기철이 이준기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정기철은 마케팅본부의 이사를 맡고 있었다. 정기철의 할아버지가 창업한 자동차그룹은 오성그룹과 맞먹는 수준인데 시민단체가 표적을 삼고 있는 것은 오로지 오성그룹이었다.
“그건 말이야. 저 놈이 재수 없게 생겨서 그래.”
입이 거칠기로 유명한 제약회사 아들인 박진성이 낄낄거렸다.
“야 임마, 내가 왜 재수 없게 생겼어?”
이준기는 안주로 나온 땅콩 하나를 집어서 박진성에게 던졌다.
“야 이 자식들아, 만나기만 하면 쌈질이냐?”
박진성과 이준기가 언성을 높이자 토건회사 아들인 최도치가 나섰다. 최도치의 아버지는 현금만 수천억대를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노랭이로 유명했다. 최도치는 상무이사 자리를 맡고 있었다. 그때 마담이 이준기의 파트너를 데리고 들어왔다.
“신향란이에요.”
이준기의 파트너가 인사를 하고 옆에 와서 앉았다. 그녀가 옆에 앉자 톡 쏘는 화장품냄새가 풍겼다.
“예쁘구나.”
이준기는 신향란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신향란은 키가 작고 눈이 큰 계집애였다. 살결이 투명하고 생글생글 웃기를 잘했다. 침대에 눕혀 놓으면 착착 감겨 올 것 같은 계집애였다. 귀천이라는 룸살롱의 여자들이 물이 좋기로 유명하지만 마담이 이준기의 취향을 생각해서 특별히 골라서 넣어준 계집애였다.
재벌2세들의 술자리라고 해서 특별히 다른 것은 없다. 재벌2세들도 나름대로 열심히 일을 하고 열심히 살아간다. 무엇보다 경영을 승계해야하기 때문에 치열한 기업 경쟁도 배워야 하고 남들보다 많은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
재벌2세들의 룸살롱 문화도 일반인들과 똑같다. 술에 취하면 아가씨들과 노래를 부르고 적당한 시간이 되면 아가씨들과 룸으로 올라가서 섹스를 한다. 섹스를 하지 않고 그냥 가는 친구도 있다.
룸살롱 귀천에서도 아가씨들이 노래를 부르고 친구들이 춤을 추었다. 이준기도 노래를 부르고 신향란을 안고 춤을 추었다.
“아저씨는 뭐하시는 분이에요?”
신향란은 이준기가 예상한 것처럼 춤을 출 때 착착 안겼다.
“내가 뭐하는 사람인 것 같아?”
이준기는 신향란의 둔부를 움켜쥐어 보았다. 신향란의 둔부는 팽팽했다.
“몰라요. 회사에 다니는 분이겠죠.”
“마담이 이야기 안하디?”
“잘 모시라는 말씀밖에 별말이 없었어요. 아저씨는 딱 내 타입이야.”
“뭐?”
“나는 안경 쓴 남자가 좋아요. 안경 쓴 사람이 이상하게 멋이 있더라.”
이준기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음을 터트렸다. 세상에 안경 쓴 남자가 멋이 있다는 말은 처음 들었다. 신향란은 재잘대는 입술이 귀엽다. 이준기와 춤을 추면서 연신 깔깔대고 몸을 밀착시키면서 안겨왔다. 마치 친구들끼리 술을 마시고 있는 것처럼 웃고 떠든다. 그 모습이 술집 여자들 같지 않고 장난꾸러기 소녀 같다. 술자리는 왁자하게 계속되다가 밤11시가 되어서야 조용해졌다. 술자리에 남은 것은 이준기와 기종철, 최도치뿐이었다.
“이준기, 내일 점심이나 같이 먹자.”
기종철이 파트너의 가슴을 애무하면서 게슴츠레한 눈으로 이준기를 쳐다보았다.
“그래. 연락해라.”
이준기도 신향란의 가슴을 만지작거리면서 말했다. 내일은 토요일이었기 때문에 특별히 약속이 없었다.
“먹고 싶다.”
신향란이 몸을 비트는 시늉을 하면서 느닷없이 중얼거렸다. 신향란의 손이 이준기의 바지 속에 들어와 있었다.
“뭐?”
“나 먹는 거 좋아하는데… 방으로 올라가요.”
신향란이 뜨거운 입김을 이준기의 귓전에 쏟아 부었다.
“그럴까?”
이준기도 바짝 달아올라 있었다. 적당하게 술을 마셨으므로 시간을 끌 필요는 없었다. 이준기가 일어서자 최도치도 따라 일어섰다.
“우리는 술이 있으니까 여기서 놀란다.”
기종철이 손을 내저으면서 말했다. 이준기는 신향란과 함께 호텔의 룸으로 올라왔다. 장충단에 있는 호텔이라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신향란은 무릎을 꿇고 앉아서 이준기의 바지와 속옷을 벗겨주었다.
‘이거 보통 계집애가 아니네.’
이준기는 선 채로 눈을 지그시 감았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