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민 폭로가 ‘불쏘시개’…팩트체크 안 된 공식 연설문 등이 혼란 가중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신년 기자회견을 가졌다. 사진 청와대 제공.
이명박정부 청와대에서 근무했고 모 경제부총리를 보좌했던 인사의 말이다.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기재부) 사무관은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청와대 참모들에게 막혀 문재인 대통령에게 제대로 보고를 하지 못했다고 폭로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인(人)의 장막 논란에 휩싸인 이유다.
이 인사는 “신 전 사무관 폭로가 사실인지부터 따져봐야겠지만 부총리가 대통령한테 보고할 내용이 있는데 참모들이 막아서 못했다고 하면 이해 못할 상황이다. 장관급 정도 되면 대통령과 직통 연락이 가능하다. 전화나 서면보고 등 불통이라고 비판받던 박근혜정부조차도 장관들이 보고하려고 하면 열려 있었다. 현 정부에서 장관급들하고도 그런 소통이 안 되고 있다고 하면 문제”라고 말했다.
한 야권 인사는 “문 대통령이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 효과가 90% 이상’이라고 했을 때 이해가 안 됐다. 각종 경제지표나 통계를 보면 절대 그런 발언이 나올 수가 없다. 참모들이 그럴듯한 논리와 통계로 대통령 눈을 가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박근혜정부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한 인사는 “스마트폰 시대에 어떻게 인의 장막에 갇히냐고 하는데 대통령은 엄청 바쁘다. 대통령 본인이 뉴스를 찾아볼 수도 있지만 매일 참모들이 스크랩해서 올려주는 기사를 다 챙겨보기도 힘들 거다. 참모들이 어떤 뉴스를 스크랩해서 올리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여론을 왜곡할 수 있다”면서 “가끔 부정적인 기사가 보고돼도 참모들에게만 둘러싸여 있으니 정상적인 판단을 하기 힘들다. 박근혜 전 대통령 때 일이다. 모 진보언론이 굉장히 비판적으로 쓴 기사가 보고됐다. 참모들이 해당 언론사 성향을 부각시키며 평가절하했다. 그러면 대통령도 그런가보다 하고 생각이 왜곡될 수밖에 없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경제위기론은 보수기득권 이념동맹의 오염된 보도’라고 하지 않았나. 주변에 그런 사람들만 있으면 대통령도 그렇게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대통령이 한번 외출하려면 목적지까지 교통통제를 해야 한다. 경호문제로 차량이 중간에 멈춰서면 안 되기 때문이다. 세월호 때 왜 대통령이 빨리 움직이지 않았느냐고 하는데 당시 청와대 인근에서 교통사고가 있었다. 교통통제가 안돼서 대통령이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가 없었다. 대통령이 청와대 밖에 나가려면 이렇게 복잡하니까 당연히 누굴 만나거나 소통하는데 제약이 생길 수밖에 없다”면서 “대통령에게 바른 말 할 수 있는 참모가 몇이나 되겠나. 청와대에 1년만 있으면 누구나 인의 장막에 둘러싸일 수밖에 없다. 인의 장막은 문 대통령만 겪는 문제가 아니고 역대 모든 대통령이 겪었던 문제”라고 분석했다.
또 다른 청와대 근무경험이 있는 인사도 “청와대는 모든 정보가 집중되는 곳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민생현실은 가장 모를 수도 있는 곳이다. 사극에서 왕들이 일반 양민으로 변장하고 현장을 시찰했다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나. 그런 심정이 이해가 된다”면서 “문 대통령 본인도 노무현 청와대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런 현실을 잘 알 거다. 그래서 청와대 집무실 광화문 이전 공약 같은 걸 제시한 거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당선되면 청와대 집무실을 광화문으로 이전해 퇴근길에 시민들과 맥주 한잔 할 수 있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공약했었다. 하지만 집무실 이전을 검토해왔던 광화문대통령시대위원회 유홍준 자문위원은 지난 4일 기자회견을 열고 공약을 보류하겠다고 발표했다. 사실상 문 대통령 임기 내 집무실 이전 공약이 실현될 가능성은 없어졌다.
문 대통령이 공식석상에서 종종 사실관계가 틀리거나 현실과 동떨어진 내용을 언급하는 것도 인의 장막 때문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은 지난 10일 문 대통령 신년기자회견을 지켜본 후 기자들에게 보낸 문자에서 “문 대통령이 1주일에 36시간 이상 근무하는 일자리가 72만 개 줄어든 상황인데 매년 증가해온 상용직 일자리가 예년만큼 늘었다는 통계만 갖고 ‘일자리의 질이 개선되고 있다’고 했다”면서 “청와대 참모들이 ‘맛있는’ 정보만 골라서 보고하는 건 아닌지 의심된다”고 했다.
이준석 바른미래당 최고위원도 문 대통령이 젠더갈등이 특별한 갈등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언급하자 “작년 말 여론조사에서 20대 56.5%가 젠더갈등이 가장 심각한 갈등이라고 답했다”면서 “주변에 대통령의 눈과 귀를 흐리는 잘못된 세력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심지어 문 대통령은 지난 2017년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전혀 근거가 없는 내용을 연설문에 포함시켜 외교문제로 비화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선포식에서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총 1368명이 사망했다’고 했는데 일본 측은 사실이 아니라며 유감을 표명했다. 얼마 후 청와대는 실무적으로 착오가 있었다고 인정했다.
청와대 연설담당 부서에서 근무했던 인사는 “정권마다 업무 스타일이 완전히 다르다. 예를 들면 이명박, 박근혜 청와대에서는 연설기록을 총괄하는 비서관이 1명이었고, 문재인 청와대에서는 3명이다. 연설기록비서관실이 청와대 본관에 있는 경우도 있고 위민관에 있는 경우도 있었다. 대통령 성향에 따라 그런 것까지 달라진다”면서 “박근혜 청와대에서 연설담당을 했지만 문재인 청와대 시스템을 모르기 때문에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다. 어찌됐든 그런 큰 데이터가 공식 연설문에서 틀렸다는 것은 이해가 잘 안 된다. 어느 선에서든 한번은 걸러졌어야 할 실수”라고 말했다.
이 인사는 “원래 청와대라는 곳이 인의 장막이 없을 수 없다. 참모들이 대통령에게 잘못된 데이터를 전달하기가 너무 쉽다. 사람들을 편하게 만날 수 없는 자리다 보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인사는 또 “이럴 때 대통령 주변에 편하게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오래된 지인이나 가족 등이 있어야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그런 가족이 없었던 것이 불행이었다”면서 “문 대통령은 가족이 있지만 현재 그런(인의 장막을 깨는)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앞서의 전직 청와대 인사는 “참모 구성이라도 다양하게 해야 하는데 문재인정부는 너무 어공(어쩌다 공무원) 출신으로 진영이 짜여진 것 같다. 전문성이 있는 늘공(늘 공무원)이 균형 있게 배치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물론 어공도 필요하긴 하다. 어공들이 있어야 정책 추진력이 생기지만 주변에 이념 동맹인 어공들만 잔뜩 있으면 인의 장막이 더 두꺼워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