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강현실과 판타지 로맨스 오간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작가가 풀어낸 비하인드 스토리
15일 여의도 전경련회관 에메랄드홀에서 가진 인터뷰 자리에서 송재정 작가는 이렇게 말하며 웃음을 자아냈다. 증강현실 게임과 판타지 로맨스의 장르 결합으로 눈길을 끌었던 송 작가의 tvN 토일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 이제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다.
tvN 금토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송재정 작가가 15일 여의도 전경련회관 에메랄드홀에서 인터뷰를 가졌다. 사진=CJENM 제공
드라마 판에서 다소 생소한 ‘증강현실’을 소재로 삼게 된 계기로 송 작가는 ‘포켓몬 고’ 게임을 꼽았다. 지난 2016년 전국의 어린이들과 ‘키덜트’들을 들뜨게 했던 증강현실 게임 ‘포켓몬 고’를 하면서 송 작가는 재미에 앞서 ‘눈이 번쩍 뜨이는’ 경험을 했다.
송 작가는 “사실 ‘W’가 종영한 뒤에도 타임슬립 소재를 생각해서 ‘타임슬립 3부작’의 마지막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유진우라는 캐릭터를 만들었는데 이야기를 이끌어 나갈 욕구가 잘 생기지 않더라”라며 “소재를 더 찾아 방황하던 중에 ‘포켓몬 고’를 접하게 됐다. 저도 여의도 광장에 나가서 포켓몬을 직접 잡아봤는데 그때 ‘어, 이거 엄청난데’ 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판타지나 SF 장르 드라마를 연출하기 위해서는 막강한 자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던 때였다. 그런데 그의 앞에 나타난, 단순히 일부의 CG로 일상생활과 접목해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포켓몬 고’가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는 것이다.
송 작가는 “일상에서 아이템만 CG로 처리할 수 있으면 우리나라에서도 충분히 (SF나 판타지 드라마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타임슬립 소재를 버리고 ‘유진우’라는 인물만 데리고 증강현실을 소재로 하는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쓰게 됐다”고 덧붙였다.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스틸컷. CJENM 제공
그는 “이전에 포르투갈 여행을 갔는데 알함브라 궁전을 보고 온 작가 분들이 저와 합류했다. 그런데 그 분들이 궁전에 갔을 때 40도가 넘는 그 더위 속에서 줄을 서다가 일사병에 걸리고, 서로 다퉜다고 했다. 그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어서 ‘알함브라 궁전에 갔다가 일사병에 걸린 기타리스트가 가이드의 도움을 받아서 사랑이 싹트는 이야기를 써야지’라고 생각했다. 제목도 그 때 정해놨던 건데, 이후에 타임슬립을 생각했다가 증강현실을 생각했다가 하는 과정에서 지금의 작품이 만들어진 거다. 과정이 너무 허접하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송 작가가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에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3가지의 커다란 이야기 줄기라고 했다. 하나는 게임 자체의 재미, 그리고 유진우(현빈 분)와 그와 대립하는 차형석(박훈 분) 관련 인물들 사이의 애증과 휴먼스토리. 마지막으로 유진우와 정희주(박신혜 분) 사이의 사랑 이야기다. 그것도 곧게 뻗은 줄기가 아니라 ‘꼬아 가면서’ 드라마를 만들었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조연들의 잦은 등장에 대한 시청자들의 불만이 다소 일기도 했다.
그는 “진우의 지난 과오들, 분노와 순간적인 치기로 인한 잘못들, 형석이를 향한 복수 과정 이런 것들이 업보처럼 쌓여 있어서 그것을 해결하고, 모든 과거의 흔적을 지우고 희주에게 다가갈 수 있는지가 드라마의 중요한 주제”라며 “그것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중요한 축인 관련 인물들의 등장이 잦을 수밖에 없고, 조연들에게도 사연이 다 주어지게 된 것이다. 이들을 ‘잔가지’라고 생각하거나 이야기에서 탈락시킬 생각으로 작품을 쓰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스토리 라인에서 주연 배우들의 러브 라인이 일반적인 ‘멜로 장르 드라마’가 그렇듯 중점적으로 부각되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이에 대해서 송 작가는 “원래는 더 피폐하고 시니컬한 인생의 한 남자의 이야기였고, 희주의 역할도 ‘아저씨’나 ‘레옹’처럼 우정과 사랑을 넘나드는 관계에서 시작된 거라 멜로나 로맨스가 아니었다”라며 “그러다가 캐스팅 후 두 분 미모가 너무 아까워서 스토리 구조를 망가뜨리지 않는 선에서 멜로를 집어 넣으려다 보니 많이 힘들었다. 멜로 장르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왜 이렇게 멜로가 조금이냐’고 화를 내시는데 초기 설정에 비해 많이 노력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송재정 작가. CJENM 제공
그러면서도 “어쨌든 좀 새로운 방향의 PPL을 개척했다고 생각한다. 제작비와 타협을 좀 잘 하지 않았나 생각하는데…의외로 광고계에선 그게 성공적인 PPL사례로 쓰이고 있다더라. 조금 자랑스럽다”고 말해 인터뷰장을 웃음바다로 만들기도 했다.
남주인공인 ‘유진우’란 캐릭터는 송 작가가 테슬라 회장의 자서전을 보고 모티브를 따왔다고 했다. 송 작가는 “현빈이라는 배우를 먼저 생각하고 캐릭터를 만든 것은 아닌데, 진우는 (모티브대로) 재벌이어야 되고, 액션도 잘 해야 되고, 멜로도 잘해야 되고, 신체 조건도 완벽해야 하다 보니 우리나라에서 이 역할을 할 수 있는 게 현빈 씨밖에 없었던 것 같다”라며 “정말 너무 완벽하게 구현해 주셔서 너무나도 놀라고 감동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진우’라는 캐릭터로 이끌어 나가는 스토리에 대한 시청자들의 비판을 잘 알고 있다고도 했다. 송 작가는 “다들 저를 보고 ‘남주(인공)를 너무 굴린다’ ‘피폐한 장르를 좋아하는 변태 아니냐’는 말씀들을 많이 하시는데 제가 남주를 많이 굴리긴 한다”라면서도 “사실 유진우는 재벌인 거 빼면 너무 문제가 많은 사람이지 않나. 이런 사람이 당당하게 희주에게 가려면 그를 둘러싼 이 지긋지긋한 과거 관계를 다 끊어내야 한다. 16화까지 진우가 이들에 대한 마음의 빚을 다 갚는 이야기에 중점을 두려고 한다”고 말했다.
반면 송 작가는 유진우의 ‘마음 속 이상향’으로 정의되는 여주인공 정희주 역의 박신혜에겐 미안함이 있다고 했다. 그는 “플롯이 ‘오디세우스 신화’와 같은 전형적인 히어로물의 틀을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제 작품 속에서 여성 캐릭터가 그렇게까지 능동적일 수 없었다. 박신혜 씨도 액션 연기를 하고 싶었을 텐데 액션과 게임 속 ‘엠마’의 역할이 다른 포인트이기 때문에 같이 할 수 없어서 아쉬웠다”면서도 “다만 박신혜 씨가 엠마와 희주 역으로 지금까지 제가 본 적 없는 신혜 씨의 깊은 감정을 굉장히 잘 표현해 줬다. 엠마가 마지막까지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기대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tvN 금토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오는 20일 16회를 마지막으로 종영된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