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만 배우’ 내세워 온 CJ엔터 왕좌 내주기도…기대작들 대부분 처참한 성적표
영화 ‘신과 함께’ 시리즈는 2편 모두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배급사인 롯데엔터테인먼트를 업계 1위 자리에 올렸다.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롯데에게 왕좌를 내어 준 CJ엔터테인먼트는 강동원을 내세웠던 ‘골든슬럼버’의 반타작 흥행에 이어 ‘궁합’ ‘7년의 밤’ 등도 연이은 흥행 실패를 기록했다. 추석 명절 대목에 현빈과 손예진의 케미스트리를 앞세워 내놨던 ‘협상’ 역시 누적 관객 수 195만 명으로 200만 명 넘기에 실패했다.
그나마 CJ엔터의 숨을 틔워줬던 것은 ‘탐정:리턴즈’와 ‘국가부도의 날’이었다. 전자의 경우는 권상우, 성동일, 이광수라는, 티켓 파워가 강하다고 볼 수 없는 배우들을 데리고도 무난하게 흥행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손익분기점 180만 명을 무난하게 뛰어 넘어 누적 관객 수 312만 명을 기록한 이 영화는 ‘전작보다 못한 후속작’이라는 소포모어 징크스를 깬 작품으로도 관객들에게 각인됐다.
‘국가부도의 날’은 2018년 연말을 겨냥했던 CJ엔터의 두 개의 보루 가운데 하나였다. 제작비 70억 원, 손익분기점 260만 명인 이 작품은 여배우인 김혜수를 메인 주연으로 앞세웠다는 이유로 남자 배우들이 출연을 꺼려했다는 뒷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그만큼 ‘흥행을 위해’ 남배우 위주의 무대가 된 영화판에서 김혜수를 내세운 것은 어찌 보면 제작사와 배급사 모두에게 도박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2016년부터 몰아쳤던 페미니즘 열풍으로 부상하면서 많은 여성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아 무난한 성적표를 받아낼 수 있었다.
문제는 CJ엔터의 또 다른 연말 보루, ‘PMC: 더 벙커’다. 지난해 CJ엔터 마지막 개봉작인 이 작품은 제작비 150억 원의 대작으로 알려졌다. 손익분기점은 최소 300만 명. 앞서 ‘신과 함께’ 등으로 1000만 배우 대열에 오른 하정우를 내세웠다는 점과 신선한 액션 등 볼거리로 초반 호평이 이어지면서 CJ엔터의 2018년 성적을 만회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점쳐졌던 바 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 보니 기대 이하였다는 게 대중들의 평론이었다. 언론시사회를 통한 기자나 평론가들의 평가보다 날 것 그대로인 대중들의 ‘입소문’이 영화판에 끼치는 영향은 막대하다. 영화 실제 관람객들이 평점을 기록할 수 있는 ‘CGV 에그’ 지수가 70%대로 떨어지는 상황까지 발생하면서 결국 뒷심을 발휘하지 못하고 마무리 하려는 모양새다.
부진한 성적을 기록한 것은 쇼박스도 마찬가지였다. 영화계 미투(Me Too)운동 직격타를 맞았던 ‘조선 명탐정: 흡혈괴마의 비밀’로 불안한 시작을 알렸던 쇼박스는 12월 텐트폴 영화로 꼽혔던 ‘마약왕’의 부진한 성적으로 2018년을 마무리하게 됐다.
총 제작비 230억원의 초호화 블록버스터 영화 ‘인랑’은 2018년 유례없이 처참한 실패를 기록했다. 사진=워너브라더스코리아 제공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실망 일색이었다. 평론가들은 송강호 외에 따로 노는 배우들의 연기와 편집 방식을, 대중들은 스토리와 큰 연관이 없는데도 지나치게 잔인한 장면이나 무의미한 여성의 성적 대상화를 문제 삼았다. 이처럼 악평이 이어지면서 ‘기대작’이라는 홍보가 무색하게 200만 명도 채우지 못하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고 물러날 가능성이 보인다.
그러나 앞서 흥행 실패로 언급됐던 영화들도 이 영화의 처참한 기록에는 미치지 못했다. ‘밀정’ 김지운 감독과 강동원 원톱 주연으로 주목받았던 ‘인랑’은 “이 감독에, 이 배우들을 쓰고도 최악의 기록을 갱신했다”는 평가가 잇따를 정도로 바닥을 찍었다.
총 제작비 230억 원의 대작으로 홍보했던 ‘인랑’은 개봉 2주차 만에 1일 관객이 1000명대로 떨어지는 등 급격한 하락세를 기록했던 바 있다. 3주차부터는 두 손으로 꼽아도 관객 수를 가늠할 수 있을 정도였다. 결국 총 누적 관객 수 100만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의 참패 기록을 세우고 스크린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영화계에서는 국내 영화계 변화의 중심에 세 가지가 있다고 짚었다. ‘블록버스터’ ‘1000만 배우’ ‘남성 위주의 서사’가 서서히 배제되고 있다는 것이다.
대규모 블록버스터 영화는 ‘마블 유니버스’와 같은 해외 히어로 영화나 비슷한 장르에 밀리고 있기 때문에 투자 대비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이유다. ‘1000만 배우’ ‘남성 위주 서사’는 영화를 선택하는 관객들의 외면 때문에 기대만큼 높은 성적을 받기 어려워 졌다는 이야기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관객들의 선택 기준이 변했다. 보통 남성 배우들을 내세우는 원톱 주연, 1000만 배우들이 흥행을 보증하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이들을 내세워 봤자 오히려 관객들로 하여금 ‘또 쟤네야’ ‘지겹다’는 평가가 나오고, 이것이 곧바로 관객 수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여성 관객들의 관객 참여 비중이 높아진 것도 영화계 판도의 변화에 무시 못 할 영향력을 끼쳤다고 본다. ‘미쓰백’ ‘언니’ ‘국가부도의 날’ ‘도어락’ 등 여성 주연 영화가 입소문을 타서 흥행에 성공하거나, 여성들이 느끼기에 불편할 만한 영화적 장치로 인해서 영화 자체가 부정적인 평가를 받게 되는 것은 이미 2016년부터 시작돼 왔다”라며 “지금은 국내 배급 영화 한정이지만 앞으로는 수입 외화에 대해서도 유사한 현상이 일어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배급사가 신경 써야 될 부분이 늘어난 것”이라고 짚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