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포 주공 재건축사업 조합원총회서 ‘현산’ 시공사 자격 박탈 이후 내부 갈등 증폭
서울 서초구 반포 주공1단지 3주택지구 재건축 사업은 올해 강남 재건축 최대어로 꼽히고 있다. 사진=여다정 기자.
지난 17일 오후 반포 주공1단지 3주택지구 입구는 예상보다 훨씬 조용한 모습이었다. 8개 건설사가 뛰어들어 치열할 것이라는 이야기와 사뭇 달랐다. 재건축을 앞둔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건설사 홍보 현수막도 거의 없었다. 다만 곳곳에 조합장 해임을 위한 총회를 알리는 노란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단지 안으로 조금 더 들어가자 건설사들의 현수막이 사라진 이유를 알 수 있었다. 5명가량의 남성이 사다리차를 동원해 단지 곳곳에 걸린 건설사 홍보 현수막을 철거하고 있었다. 조합원으로 보이는 주민 예닐곱 명은 현수막을 내리는 남성들을 저지하고 나섰다. 순식간에 고성이 오가고, 신고를 받고 경찰이 출동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자신을 조합원이라고 밝힌 한 주민은 “총회를 통해 (현산의) 시공사 자격을 박탈했는데도 용역을 보내 다른 건설사들의 현수막을 막무가내로 철거하고 있다”며 “용역과 함께 온 저 어르신은 현 조합장이 물러날 경우 임시로 조합장 역할을 맡을 사람인데, 현산과 함께 움직이고 있어 유착이 의심된다”고 지적했다. 다른 주민 또한 “쟁쟁한 대형 건설사들이 참여해 경쟁하면 조합원들 입장에서 더 좋은 일인데, 일부 조합의 윗선에 있는 임원들이 현산의 시공사 자격 유지를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서초구 반포 주공1단지 3주택지구 재건축 사업은 올해 강남 재건축 최대어로 꼽히고 있다. 사진=여다정 기자.
현산의 시공사 자격 박탈 이야기는 지난해 말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조합장을 포함한 조합원들은 현산을 배제하고 다른 시공사를 선정할 것이라는 계획을 밝혔다. 현산이 당초 약속했던 986억 원 규모의 특화설계 무상제공 내용이 입찰제안서에서 누락한 데다 계약 일부 내용이 입찰 기준에 미달해 법적 문제가 우려된다는 이유에서다. 업계에서는 “현산이 900억 아끼려다 8000억 원 규모의 사업을 날렸다”는 말까지 나왔다.
지난 7일 반포 주공 3주구 조합은 임시총회를 통해 현산의 시공사 자격을 박탈했지만, 현산도 물러서지 않았다. 지난 4일 열린 건설인 신년인사회에서 김대철 HDC현대산업개발 대표는 “시공사로 선정된 후 협상이 잘 진행됐으나 조합장이 갑자기 단독으로 움직이며 취소 논란이 나왔다”고 언급했다. 이후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는 공식 입장을 밝히고 총회 전 개최 취소 가처분신청을 제기했으나 기각됐다.
해당 지역은 여전히 시끄럽다. 일부 조합원은 지난 15일 총회효력정지가처분 신청을 접수했다. 현산과 협상 결렬은 조합장과 일부 조합원 때문이며, 7일 현산의 시공사 자격을 박탈한 임시총회 당시 서면결의서 또한 위조됐다는 것. 현산의 입장은 일단 조합원들이 접수한 가처분 신청이 진행되는 과정과 오는 20일 열리는 조합장 해임 총회 등을 지켜보겠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입찰의향서를 제출한 건설사들은 처음과 달리 몸을 사리는 모양새를 보인다. 현산과 조합의 갈등이 언제 봉합될지 모르는 데다 여전히 현산이 시공사 지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건설사들은 법적 분쟁이 계속될 경우 새 시공사로 선정된다 해도 위치가 애매해지고 사업이 표류될 경우 피해를 볼 수도 있어 조심스럽다고 설명한다.
입찰의향서를 제출한 한 건설사 관계자는 “입찰의향서는 말 그대로 의향 여부를 뜻하기 때문에 ‘관심이 있다’ 정도로 받아들이면 된다”며 “실제 입찰에서는 다수 건설사들이 참여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다른 건설사 관계자는 “강남 재건축 시장에 사업이 몇 개 남지 않아 (반포 주공 3주구가) 매력적인 것은 맞다”면서도 “사업조건 등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실제 입찰 참여 여부를 결정할 수는 없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지난해 경쟁입찰에 현산만 단독으로 나선 탓에 유효 경쟁이 성립하지 않아 3차례 유찰된 사례를 언급하며 “그간 현산이 오랜 시간 공을 들인 사업지라 다른 건설사들이 섣불리 들어가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현대건설과 GS건설 등은 반포 주공1단지 1·2·4주구에 집중하느라 3주구 사업을 돌아보지 못했고, 다른 건설사들도 다른 사업지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다만 삼성물산 래미안이 등장하면서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한때 매각설에 휘말릴 정도로 침묵하던 래미안은 약 4년 만에 강남 재건축 시장에 등장해 존재감을 알리고 있다. 8개 건설사 가운데 가장 늦게 입찰의향서를 제출한 삼성물산 래미안은 의향서 제출을 앞두고 고심이 깊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의향서 제출 여부가 입찰 참여에 제한이 되지는 않았기 때문에 가장 늦게 제출했다고 해서 고심이 깊었던 것은 아니다”라며 “적극적으로 검토할 것이고 입찰에 최종 참여하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반포 주공 3주구는 예전부터 워낙 현산 분위기가 센 탓에 다른 건설사가 엄두를 내기 어려웠는데 (삼성물산) 래미안이 귀환하면서 업계 관심이 하루아침에 뜨거워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삼성물산 래미안의 완주에 대해서는 의문을 표시한다. 삼성물산에 정통한 한 인사는 “클린경쟁을 모토로 내세우고 콤플라이언스(준법) 기준이 높은 만큼 콤플라이언스에 반하는 요소가 생길 경우 입찰 참여를 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전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