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져가는 한국의 미 알리기
▲ 정월대보름날 색동저고리를 곱게 차려 입은 어린이들이 대보름 맞이 지신밟기를 하고 있다. 뉴시스 | ||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곱고 고운 댕기도 내가 들이고/
새로 사온 신발도 내가 신어요//
우리 언니 저고리 노랑 저고리/
우리 동생 저고리 색동 저고리//
설날이면 듣던 동요다.
설날 아침 색동저고리에 다홍색 비단치마의 설빔으로 차려 입고 조상들에게 차례를 지내고 어른들에게 세배를 드리는 모습이야말로 가장 한국적인 장면이 아닐까 싶다.
옛날 설날이나 추석 같은 명절이면 남녀를 막론하고 어린아이들은 색동저고리를 입는 것이 가장 큰 바람이었다. 양쪽 소매 깃에 붉은색, 파란색, 노란색, 흰색, 검은색의 다섯 가지 색을 잇댄 색동저고리는 그 모습이 화려하기도 하거니와 음양오행에서 말하는 오방색(五方色)을 시현한 것으로 액땜을 하고 복을 받는다는 뜻도 간직하고 있어 부모들도 어떻게든 자녀들에게 색동옷을 해 입히려 했다.
명절이면 여자아이들은 색동저고리에 치마, 배자(저고리 위에 덧입는 단추가 없는 짧은 조끼 모양의 옷), 두루마기를 입고 조바위(뒤를 덮을 수 있는 부녀자용 방한모)나 굴레(남녀 어린이가 쓰던 방한모)를 썼으며 주머니와 노리개를 차고 타래버선(유아용 누비버선)과 태사혜(신발)를 신었다.
남자아이들도 색동저고리, 풍차바지(유아용의 밑이 터진 바지), 조끼, 마고자(저고리 위에 덧입는 방한복의 하나)를 입고 그 위에 두루마기를 입었으며 전복(소매, 섶이 없고 등솔기가 허리에서부터 끝까지 트여 있는 조선 후기 무관들이 입던 옷으로 조선 말기 이후에는 문무 관리들이 평상복으로 입게 되었고 오늘날에는 어린이들이 명절에 입기도 한다)을 더 입기도 하고 복건(머리에 쓰던 건으로 원래는 유생들이 썼으나 그 후에는 사내아이가 명절이나 돌 등에 썼다)을 쓰고 타래버선과 태사혜를 신는 것이 정장이었다.
우리 민족의 역사에 색동이 처음 나타나는 것은 고구려 벽화다. 고구려 벽화에 나오는 여자들은 대부분 주름치마를 즐겨 입었는데 수산리 고분의 여성은 주름마다 색이 다른 색동치마를 입고 있다. 또한 신라에서는 무관의 직책을 깃의 색으로 구별하는 등 색에 대한 관념이 상당히 발달해 있었으므로 색동옷도 이미 존재하였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당시의 색 배합이 어떠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오늘날과 같이 된 것은 음양오행설의 영향을 받은 이후로 보인다. 일반인들 사이에서 색동저고리를 즐겨 입은 것은 고려시대 이후라는 설이 있으며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색동 옷감이 많이 쓰였고 궁중에서도 4월 초파일에 어린 왕자가 색동 두루마기를 입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색동의 유래는 확실치 않다. 음양오행설에 따라 액땜을 하고 복을 받기 위해 오방색을 이어 붙여 입혔다고도 하고, 승려들이 자신의 아이들을 다른 사람의 아이들과 구별하기 위하여 입혔다는 설도 있다. 여인들이 바느질하고 남은 여러 색의 비단 조각을 모아 두었다가 아기의 돌에 색을 맞추어 이어 붙여 입히면서 만들어졌다고도 한다.
원래 음양오행설에서 주장하는 오방색은 남쪽은 적색(火), 북쪽은 흑색(水), 동쪽은 청색(木), 서쪽은 백색(金), 중앙은 황색(土)이라는 논리에서 나온 색이다. 이 오방색은 색동저고리 외에도 우리 생활 주변에서 널리 사용됐는데 전통 혼례 때 신부가 바르는 연지곤지, 간장 항아리에 붉은 고추를 끼워 두르는 금줄, 잔칫상의 국수에 올리는 오색 고명, 붉은 빛이 나는 황토로 집을 짓거나 신년에 붉은 부적을 그려 붙이는 것, 궁궐·사찰 등의 단청 등이 그 예다.
예로부터 색을 사랑했고 또 지혜롭게 이용할 줄도 알았던 우리 민족은 이런 화려한 색깔을 색동저고리와 단청은 물론 아이들의 연이나 장난감, 떡 같은 먹거리에도 쓸 줄 알았다.
우리 민족이 색깔에 얼마나 섬세했는지는 흰색도 장독대에 곱게 내려 쌓인 눈처럼 눈부신 설백색, 노르스름한 기운이 감도는 한지의 지백색, 뽀얗고 화사한 쌀밥의 유백색, 가을밤의 달빛을 담은 흰 도자기의 소색. 그리고 난백색(현대에는 무슨 색인지 알 수가 없다고 한다) 등 다섯 가지 색깔로 분류했을 정도다.
때문에 색동에 오방색만 쓴 것이 아니라 오방색이 만나 만들어지는 오간색(녹색, 벽색, 홍색, 유황색, 자색)도 사용됐다.
색동은 저고리뿐만 아니라 치마, 마고자, 두루마기 등에 사용되었으며 이 색동옷은 까치설날, 즉 섣달 그믐날 즐겨 입는다고 하여 까치저고리 또는 까치두루마기 등의 별명이 붙기도 했다.
오늘날 색동옷은 색깔이 더욱 다양해지며 어린아이는 물론 어른들도 많이 입고 있으며, 주머니나 포장지 등 각종 디자인에까지 사용이 확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