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열사와 합치거나 계열사에 팔더라도 일감을 계속 몰아주는 건 마찬가지
일요신문 취재 결과 지난해 6개 대기업집단 내 12개 회사가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의 사익편취 제재 강화에 대응하기 위해 총수 일가의 지분율 감소를 통한 일감 몰아주기 해소에 나선 것으로 확인됐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총수 일가가 상장사는 지분 30%, 비상장사는 지분 20%를 보유한 회사에 대기업 계열사가 유리한 조건으로 일감을 몰아주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바꿔 말하면, 총수 일가 지분율을 낮추면 규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 SK해운, LG서브원, 한화S&C를 포함한 12개 회사 중 9개 회사가 합병·매각의 방법으로 총수 일가 지분율 낮춘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은 합병과 매각은 진정한 의미의 일감 몰아주기 해소로 볼 수 없다고 지적한다. 합병의 경우 지분율이 희석될 뿐 합병된 수혜 회사의 지분을 계속 보유하고 있으며, 해당 회사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도 지속할 수 있다. 매각과 관련해서도 계열회사로 매각이 이뤄져 규제 대상에서만 벗어난 것에 불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재계 한 전문가는 “합병과 매각은 기준을 피하는 수단일 뿐 진정한 사익편취 해소는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실제 지난해 한화그룹은 공정위 사익편취 규제 대상 기업에 오른 한화S&C를 한화시스템에 합병했다. 태광그룹도 티시스 사업회사와 태광관광개발을 합병, 총수 일가 지분율을 낮췄다. 문제는 사익편취와 연관된 A 회사가 영업이익률이 높고 우량한 B 회사로 (흡수) 합병되면 총수 일가가 받는 배당은 오히려 늘어난다는 데 있다.
내부거래 및 총수 일가 부당이익 여부를 따지는 공정거래위원회 심판정. 사진은 관계자들이 심판정으로 들어가는 모습. 연합뉴스
경제개혁연구소가 발표한 ‘기업집단의 일감 몰아주기 등 사익편취 해소 사례’에 따르면 2003년 이후 지난해까지 회사 간 합병으로 총수 일가 지분율을 감소시켜 일감 몰아주기를 해소한 회사는 35곳이다. 이중 26%인 9개 회사는 합병 이후에도 일감 몰아주기 등 사익편취행위 대상 기업으로 남아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대림그룹 계열사 대림코퍼레이션은 2008년과 2015년 각각 대림에이치앤엘과 대림아이앤에스를 합병했지만, 여전히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에 포함돼 있다. 사익편취 지적을 피하고자 대상 회사 수만 줄인 결과라는 게 경제개혁연구소 분석이다.
지난해 일감 몰아주기를 해소한 6개 대기업집단 내 12개 회사 중 한화그룹의 태경화성과 GS그룹의 엔씨타스, 2개사는 청산됐다. 다만 GS그룹은 지난해 4월 빌딩관리업체 엔씨타스를 청산한 후 그 일감을 GS건설 자회사 자이에스앤디로 넘겨 일감 몰아주기 문제가 그대로 남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엔씨타스 일감을 흡수한 자이에스앤디는 총수 일가 보유 지분이 없어 규제에서 자유롭지만, 자이에스앤디를 지배하는 GS건설에는 총수 일가 지분율이 28%에 달한다.
계열사간 합병·매각 외에도 사모펀드 매각이 크게 늘었지만 이 또한 총수 일가의 새로운 사익편취 수단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해 공정위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벗어난 12개 회사 중 4개 회사가 총수 일가 지분을 외부 사모펀드로 팔았다. GS그룹은 최근 총수 일가 회사로 내부거래 비중이 상당한 시스템통합(SI) 계열사 GS ITM을 사모펀드에 매각했고, LG그룹 구본준 부회장의 장남인 구형모 LG전자 과장도 개인회사 지흥을 사모펀드에 매각했다. SK그룹 총수 일가도 SK해운·SK D&D 등에 있던 지분을 사모펀드 한앤컴퍼니에 매각했다. 그러나 이들 매각에 콜옵션 등 이면약정이 있어 훗날 되살 수 있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상황이 이렇자 공정위 내부에서 총수 일가 지분을 외부 사모펀드에 매각하는 것과 관련해 예의주시해야 한다는 의견이 일고 있다. 지난해 12월 신봉삼 공정위 대기업집단국장은 ‘2018년 대기업집단의 자발적 개선 사례 발표’ 자리에 나와 “일감 몰아주기 혐의에서 벗어나기 위해 총수 일가가 지분을 사모펀드에 매각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면서 “제3자가 아닌 사모펀드에 매각하는 부분은 진짜 매각이냐는 의심이 있어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밝히기도 했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사모펀드가 대기업의 규제 대상 기업 인수자로 정해지는 것은 사모펀드와 대기업 간 이해관계가 맞기 때문”이라며 “공정위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 회사를 인수한 사모펀드는 안정적인 일감을 기반으로 회사 가치를 키워 나중에 되팔 수 있고, 대기업은 사모펀드가 기업을 되팔 때 정권 분위기 등을 보고 다시 집단 안으로 끌어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GS ITM의 경우 사모펀드가 보통주가 아닌 우선주를 보통주 가격에 사간 만큼 공정위는 이 딜에 옵션이 있을 것으로 보고 조사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현행 일감 몰아주기 등 사익편취에 대해 더 철저히 제재하기 위해서는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간접 지분에 대한 규제는 물론 일감 몰아주기 제재를 특정 기업에 한정하지 않고 전체 기업에 대한 보편적 규제로 확대해야 한다는 것. 이총희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은 “합병과 매각의 경우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얻은 가치가 합병비율과 매각 가격에 반영되기 때문에 오너 일가에 부가 그대로 이전된다”며 “특히 합병은 총수 일가 지분율이 줄어 규제 대상에서 벗어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완벽한 해소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배동주 기자 j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