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편 들어 퀄컴과 재협상 계기 마련한 삼성전자 ‘벤치마킹’할 듯
세기의 대결로 주목받는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와 퀄컴 간 ‘1조 원대 과징금 행정소송’이 중반으로 접어든 가운데, 공정위 연합군 구성원에 변화가 생겼다. 이미지=백소연 디자이너
당초 공정위와 퀄컴의 소송에는 애플, 인텔, 미디어텍, 화웨이, 삼성전자 등이 공정위 측 보조참가인으로 참여하면서 공정위에 힘을 실었다. 그러나 지난 2월 삼성전자는 퀄컴과 라이선스 계약을 확대 체결하며 참여를 철회했다. 당시 삼성전자 측은 “퀄컴과 계약을 갱신하면서 자연스럽게 빠진 것”이라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의 빈 자리가 소송에 미칠 영향을 우려했다. 삼성전자가 국내 최대 기업인 데다 그간 소송에서 광장과 태평양을 소송대리인으로 내세워 적극적으로 자료를 제출하는 등 중요한 역할을 해온 것으로 알려진 터다. 새롭게 보조참가인으로 참여한 LG전자의 행보가 주목받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지난 11월 본격적으로 참여하기 전부터 LG전자는 소송에 관심을 가져온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소송의 ‘사건진행 내용’을 확인한 결과, 이미 2017년 5월 24일 ‘기타 엘지전자 주식회사 소송위임장 제출’이라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LG전자 관계자는 “소송에 참여한 것은 지난 11월부터”라며 “2017년 소송위임장 제출은 소송 제기보다 자료열람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LG전자가 최근 소송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은 퀄컴과 계약 재협상의 접점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공정위의 시정명령에 따라 퀄컴은 칩셋 제조사와 핸드폰 제조사 등 이해관계자와 새로운 계약을 체결하거나 기존 계약을 수정해야 하지만 지난 2월 삼성과 재협상을 한 것 외에는 공정위 조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
앞서 퀄컴은 2017년 2월 공정위의 시정명령 등에 대한 취소 소송과 효력정지 신청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이 바로 ‘세기의 대결’이 됐다. 효력정지 신청은 취소 소송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시정명령 집행을 중지해달라는 것이다. 서울고등법원은 2017년 9월 퀄컴의 효력정지 신청을 기각했으며 퀄컴의 재항고에도 대법원 역시 2017년 11월 최종 기각했다. 판결에 따라 퀄컴은 시정명령을 이행해야 하지만 시정명령에 시간 제한이 없는 탓에 이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공정위 관계자는 “시정조치 자체가 이해관계자의 요구가 들어왔을 때 성실히 협상에 응하라는 취지기 때문에 퀄컴이 현재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단정짓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전해철 의원실이 제공한 ‘퀄컴 시정조치명령 실효성 문제’에는 2017년 퀄컴의 시정명령 불이행 상황이 명시돼 있다. 해당 문건에는 ‘실제 휴대폰 제조사인 삼성전자와 LG전자는 퀄컴과의 기존 계약에 대한 수정 의사를 표명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LG전자의 경우 관련 소송이 종결되는 시점에 계약 수정을 요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적혀 있다. 즉, 퀄컴과 관계에서 ‘을’의 입장인 삼성전자가 퀄컴에 먼저 재협상에 대한 의견을 표명하기 힘들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제조사의 요청이 있어야 수정 계약을 할 수 있도록 한 공정위 시정조치는 강제성과 실효성을 갖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상황으로 미뤄 보건대 삼성전자가 일찌감치 소송에 뛰어든 까닭은 소송을 통해 퀄컴과 재협상 구실과 접점을 찾은 것으로 해석된다. 결국 삼성전자는 퀄컴과 재계약에 성공하면서 소송에서 빠졌다. 갑작스레 소송에 참여한 LG전자도 이 같은 길을 밟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LG전자 관계자는 “소송과 관련해서 따로 할 말은 없다”며 “사실 그대로 소송에 참여했다는 정도로만 이해해 달라”고 말을 아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
공정위의 딜레마 ‘퀄컴이 시정명령 이행하니 기업이 소송 발빼네…’ 퀄컴은 앞서 공정위의 시정명령에 대해 효력정지를 신청했으나 대법원에서 최종 기각된 탓에 시정명령을 이행해야 한다. 그러나 퀄컴은 현재까지 지난 2월 삼성과 라이선스 계약을 확대 개정한 것 외에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는 “퀄컴이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당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시정명령을 적극적으로 이행하라고 독려하고 미시행시 고발 등 추가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공정위와 퀄컴 간에 진행 중인 소송에서 보조참가인의 역할이 중요한 만큼 공정위가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 퀄컴이 보조참가인으로 참여 중인 기업에 한해 시정명령을 이행할 경우 기업들이 삼성의 경우처럼 소송에서 발을 뺄 수 있고 이것이 공정위에 타격을 줄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공정위가 소송에서 패할 경우, 이미 지난 3월 퀄컴이 완납한 과징금을 돌려줘야 할 뿐 아니라 환급가산금까지 지급해야 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공정위는 기업들의 보조참가인 참여와 이탈에 별다른 언급을 않고 있다. 공정위 송무담당관실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보조참가인으로 참가하는 기업들은 퀄컴의 시정명령 이행 유무와 관계없이 소송 참가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보조참가인으로 참여하는 것도, 빠지는 것도 기업의 선택이라는 이야기다. 공정위 송무담당관실 관계자는 “공정위가 (재판에) 들어오라 마라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보조참가인도 증거를 제출하는 등 재판에 역할을 하지만 (기업이 들어왔다가 빠진다고 해서) 소송에 지장이 있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