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차단 기술 도입 반대 청와대 청원 20만 돌파…인터넷 검열, 사생활 침해 주장도
https 차단 정책에 대한 반대하는 청와대 청원 참여 인원이 20일 25만 명을 넘어섰다.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 ‘https’가 뭐길래
지금까지 정부의 불법 사이트 차단 방식은 단순했다. 인터넷 이용자가 접속하고자하는 홈페이지 주소를 입력하면 맨 앞에 ‘http’가 입력되고 그 뒤에 주소가 나타난다. 이 http는 보안 조치가 미흡해 누가 어디에 접속하는지 쉽게 알 수 있었다.
쉽게 말해 인터넷 이용자가 보내는 편지 봉투에 주소와 이름 등 주요 정보가 다 드러나 있는 셈이다. 정부는 불법정보 사이트를 미리 등록해 두고, http로 이 사이트들에 접속을 시도하면 자동으로 경찰청의 ‘불법·유해정보 차단 안내(warning.or.kr)’ 페이지로 이동하도록 했다. 이 방식의 정확한 명칭은 ‘URL 차단’이다.
접속 차단이 활성화 되면서 불법 사이트 운영자들은 새 대안을 찾았다. ‘http’를 ‘ https’로 전환한 것이다. https는 http보다 보안이 훨씬 강화된 접속 방식이다. 앞서의 편지 봉투에 적힌 정보는 그대로 있지만 암호화 돼 있어, 인터넷 이용자와 사이트를 연결해 주는 통신사 등 인터넷 사업자, 즉 ‘편지를 전달하는 사람’만 볼 수 있다. 고작 ‘s’를 하나 더 붙인 것으로 그동안의 ‘URL 차단’ 기술은 무용지물이 됐고, https를 활용한 불법 사이트들은 시간이 갈수록 확산됐다.
이번에 정부가 도입한 차단 기술은 https를 쓰는 불법 사이트 접속을 막는다. 원리는 간단하다. https는 접속하려는 사이트로 가기 전에 암호화되지 않은 사이트 주소가 한 차례 살짝 드러나는 허점이 있다. 정부는 이 허점을 노려 차단할 불법 사이트를 정하고, 인터넷 서비스업체들은 주소명이 드러날 때 정부가 정한 차단 목록과 대조해 사이트로 가는 길목을 막는다. 정식 명칭은 ‘SNI(서버 이름 표시) 필드 차단’이다.
방송통신위원회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KT, LG유플러스, SK브로드밴드, 삼성SDS 등 7개 인터넷서비스제공사업자(ISP)는 지난해 6월부터 해외 사이트의 불법정보를 차단하는 새로운 기술방식을 협의하고, 관련 시스템의 차단 기능을 고도화했다. 이를 토대로 방심위는 지난 2월 11일 해외사이트 895건에 대한 차단을 결정했다. 776건이 도박 사이트, 96건이 음란 사이트였다.
# 논란은 인터넷 ‘검열’ ‘감청’에 초점, 정부는 “무관하다” 해명
KT 인터넷 이용자들을 시작으로 각 인터넷 서비스 업체들이 이 방식을 도입하면서 불만이 치솟기 시작했다. 논란 초기 “더 이상 야동을 못본다”는 식의 주장이 나오긴 했지만, 문제제기를 하는 쪽의 주장을 들어보면 이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다. 최근 논란은 이번 차단 기술 도입이 ‘감청’ 또는 ‘검열’에 해당한다는 데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문제제기를 하는 쪽은 ‘암호화되지 않은 정보’를 중간에 살펴보는 행위에 ‘패킷 감청’ 우려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 감청 방식은 회선을 오가는 인터넷 활동을 실시간으로 모두 감시할 수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도·감청보다 위험성이 크다는 게 주장의 골자다. 실제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패킷 감청의 근거가 돼 온 통신비밀보호법 제5조 제2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이에 대해 방통위 관계자는 “정보통신망법 등 근거 법령에 따라 불법인 해외사이트의 접속을 차단하는 것은 인터넷을 검열하거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은 아니다”며 “암호화되지 않고 공개돼 있는 SNI 필드 영역을 활용해 접속을 차단하는 방식은 암호화된 통신 내용을 열람 가능 상태로 전환하는 감청과는 무관하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불법 사이트를 일방적으로 규정하고 접근을 원천 차단하려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 주장은 청와대 청원에서 출발해 인터넷 커뮤니티와 정치권 등에서 빠르게 퍼지고 있다. 편지로 비교하면 맨 앞에 주소나 받는 사람 이름만 보고, 그 정보가 정부가 정한 ‘유해 리스트’에 있으면 전달할 수 없도록 하는 게 문제라는 얘기다.
이번 기술 도입에 반대한다는 한 통신업계 관계자는 “인터넷 통신 정보가 정부에 의해 쉽게 통제되거나 노출 될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도 이용자 자유와 권리가 침해된다고 본다”며 “최근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쪽은 앞으로 불법 사이트를 넘어 정치나 정서와 관련한 다른 종류의 ‘유해 사이트’ 등이 이 방식으로 차단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과거 방심위가 심의한 ‘유해정보’ 가운데 불법 도박이나 음란물과 관계없는 일부 사례가 앞서의 주장과 함께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 등을 통해 빠르게 퍼지고 있다. 파일 공유 사이트 ‘포쉐어드’ 차단, 외국인 기자가 북한 정보통신기술현황을 전달하는 ‘노스코리아테크’ 사이트 국가보안법 위반 정보 차단 등이 법원에서 위법 판결을 받은 대표적인 사례다.
# “논란 과도하다” 지적 나와
정부는 엄격한 기준에 따라 불법 사이트가 결정됐다는 입장이다. 불법 사이트를 지정하는 곳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다. 경찰과 여성가족부 등 정부기관은 신고는 할 수 있지만 최종 차단 결정은 방심위가 내린다. 방심위는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규정에 따라 불법 사이트를 정한다. 심의 대상은 도박, 성매매 알선, 음란물, 불법 촬영물, 마약 거래, 장기 매매 등 헌법을 위반하는 사이트들이다. 방심위 관계자는 “최근 우려의 목소리가 높은 정치적, 정서적 ‘유해사이트’는 심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일부 전문가들도 이번 논란이 과도하다고 지적한다. 서울의 한 정보통신학과 교수는 “이번 차단 조치는 ‘편지’의 내용을 보는 게 아니라 봉투에 적힌 주소만 보는 것이다. 통신사들도 개인정보보호법 상 이용자들의 동의를 받아 운영하는 것이라 법리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정보보안 업계 관계자도 “새 기술이 도입되긴 했지만, 기본 원리는 기존 ‘URL 차단’과 같다”고 말했다.
다만 SNI차단 방식 도입 실효성에 대한 지적은 정부도 피해가기 어려워 보인다. 이번 논란이 점화되면서 인터넷에는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라는 영화 ‘인터스텔라’의 한 대사가 떠돌았다. 그리고 차단 기술 도입 수 시간 뒤에 ‘답’이 나왔다. 클릭 몇 번이면 차단 기술을 돌아서 불법 사이트에 접속할 수 있고, 휴대폰에 앱을 설치하는 것만으로도 정부가 새로 만든 ‘방패’를 쉽게 피해갈 수 있다.
이에 대해 다른 통신업계 관계자는 “이번 차단 기술은 사실상 시한부에 불과했던 만큼 앞으로 또 다른 차단 기술이 도입될 것으로 전망된다”면서 “원천적으로 접속을 차단하는 건 불가능하다. 장기적으로 어차피 우회할 수 있는 방패를 계속 만드는 것 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불법 콘텐츠들을 제거하는 방식을 추진하는 게 더 효율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