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수생’ KB노협, ‘국책은행 최초 추진’ IBK기업은행 노조 적극적…안팎 관심 낮아 ‘가시밭길’ 예고
노동이사제(근로자추천이사제)는 쉽게 말해 노동자, 즉 직원이 이사회의 구성원인 이사가 되는 것을 말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자 국정과제다. 문 대통령은 노동이사제 도입을 통해 ‘근로자 대표 1~2명의 경영 참여’를 보장해주겠다고 약속했고, 금융위원회 민간 자문기구인 금융행정혁신위원회도 지난 2017년 12월 금융행정혁신보고서를 통해 이 제도 도입을 권고했다.
현재 국내 은행 중 노동이사제 도입에 가장 적극적인 건 KB금융노동조합협의회다. 국민은행 노조와 KB금융지주 우리사주조합으로 구성된 KB노협은 오는 3월 정기주주총회를 앞두고 일찌감치 백승헌 변호사를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했다. KB노협은 지난 2월 7일 전체 0.194%에 해당하는 주주 위임장을 받은 뒤 백 변호사를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하는 주주제안서를 이사회에 제출했다.
KB노협은 오는 3월 정기주주총회를 앞두고 백승헌 변호사를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했다. 사진=이종현 기자
현행 금융사 지배구조법을 보면, 6개월 이상 보유한 지분 0.1% 이상의 주주 동의를 받으면 주주제안을 할 수 있다. KB노협의 노동이사제 도입 추진은 삼수째다. 앞서의 백 변호사는 KB노협이 2017년 11월과 지난해 3월 각각 하승수 비례민주주의 연대 공동대표와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를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한 데 이은 세 번째 후보다.
한 KB노협 관계자는 “KB금융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이 노동이사제 도입 관련 검토를 진행 하고 있는만큼 오는 3월 주총에서 노동이사제 도입안에 찬성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실제 국민연금은 앞선 KB노협의 두 차례 시도에서 한차례 찬성표를 던지기도 했다.
IBK기업은행 노동조합은 국책금융기관 최초로 노동이사제 도입에 나섰다. 기업은행 노조 는 지난 2월 15일부터 오는 22일까지 언론 광고를 내고, 내부 추천 등 여러 경로로 접수를 받아 노동계 및 인권 분야에 경험과 연륜이 풍부한 인사를 사외이사로 추천할 방침이다. 기업은행 사외이사는 3명이다. 이 가운데 이용근 이사가 지난 2월 18일 임기가 만료됐다. 기업은행 노조 관계자는 “외부에서 우려하는 것처럼 경영권을 침해할 의도는 전혀 없다”며 “노사가 경영에 참여해 의사결정의 투명성과 책임을 높이기 위한 취지”라고 설명했다.
기업은행 노조는 국책은행 최초로 노동이사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사진=박정훈 기자
하지만 은행권에선 노동이사제 도입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기업은행의 경우, 노조에게는 사외이사 후보 추천 권한이 없다. 권한을 가지려면 이사회 승인을 받아 기업은행 지배구조내부규범을 바꾸거나 국회를 거쳐 중소기업은행법을 개정해야 한다.
중소기업은행 정관에 따르면 기업은행의 사외이사는 은행장이 제청하고, 금융위원회가 임명하도록 규정돼 있다. 기업은행 노조는 지금까지 은행장의 제청 과정이 유명무실했기 때문에 노조가 사외이사를 추천하더라도, 금융위에서 승인만 하면 절차상 문제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금융위는 지난해부터 이 제도에 유보적인 입장이었다. 여기에 최종구 금융위원장도 지난 18일 최근 금융권에서 추진되는 노동이사제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최 위원장은 이날 그동안 노조가 주장해 온 노동이사제 도입 의무화 방안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기도 했다.
그는 “다른 산업부분에 앞서 금융에 선제 도입할 필요성이 크지 않아 보인다”며 “취지는 대주주 전횡 방지와 근로자 권익보호 측면인데, 금융회사는 적격성 심사보고 규제도 있고 계열사 거래도 제한되며 영업활동도 감독한다”면서 “대주주 전횡이 없다고 볼 수 있다. 방지 장치가 매우 잘 돼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근로자 권익보호는 금융부분, 특히 은행 쪽을 보면 임금이나 복지 등 근로여건이 다른 산업보다 훨씬 양호하기 때문에 이쪽에서 먼저 도입할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노동이사제 논의에 적극적이던 금융감독원은 한 발 뺀 모양새다. 윤석헌 금감원장은 앞서의 금융행정혁신위원회를 이끌면서 금융위에 노동이사제 도입을 권고한데 이어, 원장 취임 이후 “금융사 지배구조 보고서에 노동이사제 공시를 강화하고, 사회적 의견을 수렴할 공청회를 열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금융위가 “노사 합의, 사회적 합의가 우선”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여기에 공공기관 정책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에서도 국회 법안 통과를 핑계로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자 현재는 “정부 움직임을 지켜본 뒤 결정하겠다”는 입장으로 전환했다. 한 금감원 관계자는 “금감원에 법적 권한도 없고 적극적으로 나서는데도 한계가 있는 건 사실”이라고 귀띔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지난 18일 기자간담회에서 금융권 노동이사제 도입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사진=임준선 기자
KB노협의 상황도 낙관적인 건 아니다. 지분율이 약 70%에 달하는 외국인 주주들 설득이 쉽지 않아서다. 앞서 두 차레 사외이사 후보 추천에서 통과되지 못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외국인 주주들의 표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KB노협이 처음 추천한 사외이사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는 국민연금의 찬성표를 받았지만 총 17.73%의 찬성표를 받으며 부결됐고, 두 번째로 추천한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국민연금이 반대하면서 찬성표가 4.23%에 그쳤다.
노동이사제에 대한 내부 직원들의 관심도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도 걸림돌이다. 기업은행 노조는 오는 22일까지 당초 회사 안팎에서 사외이사 후보 10여 명을 추천 받는 것을 목표로 했지만, 유력 인사 등은 접수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KB금융 쪽에선 파업 직후 진행되는 노동이사제 추진에 대해 ‘피로도’를 호소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으로 전해졌다.
KB금융과 기업은행을 제외한 다른 금융지주 노조에서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는 점도 이번 노동이사제 ‘흥행실패’ 관측에 힘을 싣는다. 신한지주는 오는 3월 10명의 사외이사 가운데 6명의 사외이사 임기가 만료되지만, 노동이사제 추진 가능성은 낮다. 김진홍 신임 신한은행 노조위원장이 최근 공식 취임한 만큼 시간이 촉박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KEB하나은행과 우리금융지주는 현재까지 노동이사제 추진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한 금융권 관계자는 “KB노협과 기업은행 노조 가운데 둘 중 한 곳이라도 성공하면 금융권 전반으로 확산될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지지부진한 정부 제도화에도 속도가 붙을 순 있다”면서도 “다만 현재로선 각사 노조가 안팎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자력으로만 추진하고 있는 모양새라 현실화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