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횡령 상황 파악조차 못한 경우도…협회장, 회계감사 교체 요구 묵살하고 기존 감사 연임 시도
럭비협회가 1년 동안 대한체육회 등으로부터 받는 지원금은 23억~25억 원 상당. 스포츠토토 기금 등 혈세에 의존해 운영되는 곳이었지만 이를 관리 감독해야 할 협회장은 되레 자신이 추천한 인사를 회계감사 자리에 앉히기에 여념이 없었다. 제3자를 통한 감시가 목적인 회계 감사. 하지만 외부 회계법인을 고용해 회계 문제를 바로잡자는 이사회의 일부 의견을 묵살하려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이사회 멤버들에게 “회장 추천 인사를 앉힐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전화를 돌리는 등 업무방해에 해당할 수 있는 불법적인 행동도 벌였다.
# 개최 보조금 횡령 의혹
대한럭비협회 사무처 김 아무개 과장은 2016년 강원도 영월군에서 개최된 13회 생활체육 전국 7인제 럭비대회 당시 대한체육회 보조금을 수령했지만 이를 일부 횡령한 의혹을 받고 있다.
김 과장은 보조금 중 일부를 사용한 후 나머지 금액을 다음해인 2017년 대회 참가 시 사용키로 하고 영월읍 관내 숙소(여관)에서 숙박비 명목으로 선결제했다. 하지만 김 과장은 다음해 열린 2018년 행사에서 해당 모텔에서 숙박하지 않고 이를 현금으로 환불받았다. 그리고 그 돈으로 전자부품을 구매하는 등 개인적으로 사용했다.
불투명한 자금 집행은 물론 횡령에 해당하는 ‘불법 행위’였지만, 협회 측은 회계 감사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징계는커녕, 이 사실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이 같은 문제는 위에서부터 곪은 문제였다. 럭비협회는 지방에서 대회가 진행될 경우 숙박비 등을 지자체 등에서 지원받는 구조다. 하지만 럭비협회 임원진은 그 동안 이중으로 돈을 받았다는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이런 의혹에 대해 최 아무개 전 럭비협회 전무는 “당시 296만 원이 입금된 것은 사실이지만, 여비 규정에 따라 형식적으로 받은 것일 뿐 바로 다음 날 296만 원을 협회 통장에 다시 입금했다”며 “출장비는 물론이고 럭비협회에서 일하는 동안 사실상 상근직임에도 월급조차 받지 않고 헌신했다. 각종 대회로 출장을 가면 추가로 사비를 쓴 경우도 많은데 회계 처리 과정에서 괜한 오해를 받아 안타깝다”고 설명했다. 실제 2017년 11월 13일 출장비를 지급받은 최 전 전무가 바로 다음 날 이를 다시 럭비협회로 입금한 내역이 확인됐다.
# 문제 막아야 할 협회장의 안일한 인식
그렇다면 이런 만연한 인식의 시작점은 임원 뿐 이었을까. 결국 럭비협회장의 태도부터 비롯됐다는 게 럭비협회 정상화를 바라는 사람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현재 럭비협회장은 세방그룹 이상웅 회장이다. 이 회장은 2세 경영인으로 세방그룹 창업주 이의순 명예회장의 외아들이다. 직접 럭비를 한 경험은 없지만 해병대에서 복무하던 중 럭비선수 출신들과 친분을 쌓으며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지난 2015년 제22대 럭비협회장으로 선출됐다.
그리고 이때부터 럭비협회의 ‘돈 관리’가 더 허술해지기 시작했다. 앞서 언급한 횡령 등이 발생하는 상황 속에서도 럭비협회장은 협회 운영에 전념하기보다는 해병대 출신 등 개인적인 인연을 협회 요직에 앉혔다. 상근직으로 실질적으로 럭비협회를 관리해 온 최 전 전무는 물론, 이번에 이사로 신규 선임된 오 아무개 회계법인 고문도 해병대 출신이다.
보궐인사 선임 관련 럭비협회 내부 문건.
# 회계감사 교체도 협회장 벽에 막혀…
럭비협회 내 문제를 바로잡고자 하는 시도도 협회의 저지로 무산됐다. 지난 1월 29일 열린 2018년 결산 이사회를 앞두고 “‘외부 회계법인’을 선정해 제대로 된 감사를 하자”는 일부 이사회 멤버의 주장이 제기됐다. 하지만 되레 이상웅 회장은 이를 막고, 조 아무개 회계감사의 연임을 시도했다.
럭비협회 이사회 멤버 A 씨는 “협회 내 자금 운영 과정에 문제가 있으니 S 회계법인을 내 돈으로 선임해 제대로 된 회계 감사를 진행하자”며 새로운 회계 감사 후보를 추천했다. 하지만 이 회장 측은 A 씨에게 “회장이 추천하는 현 회계감사(조 회계감사)를 그대로 연임하게 해 달라. 추천을 취소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럼에도 A 씨가 후보 추천을 강행하자, 럭비협회 오 아무개 전무 등은 이사회에 참가하는 대의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협회장님의 뜻대로 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요청했고, 결국 10 대 3의 의견으로 조 회계감사가 연임하게 됐다.
럭비협회가 가지고 있는 ‘대회 개최권’이라는 힘 앞에 지방협회 사람들로 구성된 대의원총회 멤버들이 굴복했다는 평이다. 앞선 럭비협회 전 직원은 “럭비협회가 지방에서 열리는 대회 개최권을 가지고 있어 이사회에 참여하는 대의원들이 철저하게 협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위계 또는 위력으로써 정당한 표결권을 방해했다면 업무방해죄에 해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문제 있다면 바로 잡겠다”는 럭비협회
이 같은 문제제기에 대해 럭비협회는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협회에 악의적인 문제 제기”라는 설명이다. 이사회 멤버들에게 전화를 돌렸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오 전무는 “1명에게 전화를 건 게 전부이고 전화를 거는 것이 왜 문제가 되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설명했다. 또 앞선 횡령 의혹들에 대해서는 “사실관계가 확인되면 절차대로 징계 등을 진행하겠다”면서도 “제대로 운영되는 협회에 대해 일부 사람들이 악의적으로 언론 플레이를 하려 한다”는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앞선 최 전 전무 역시 “이 아무개 전 사무처장, 심 아무개 럭비협회 부회장 등이 악의적인 제보를 한 것”이라며 “전무로 재직하는 동안 럭비협회를 더 발전시키고 재정문제도 정상화시켰는데 억지로 문제 삼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협회 정상화를 바라는 럭비인들은 이를 문제 삼겠다는 입장이다. 앞선 럭비협회 전 직원은 이 같은 내용이 담긴 럭비협회 내 각종 비위에 대한 조사요구서를 대한체육회 클린스포츠센터에 접수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