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지역구 챙긴다는 소문…당내 비토기류 여전 ‘걸림돌’
김민석 민주당 민주연구원장. 박은숙 기자.
김 원장의 가장 유력한 행보는 제21대 총선 도전이다. 출마 예상 지역구는 김 원장의 정치적 고향인 ‘서울 영등포을’이 1순위로 꼽힌다. 이 지역은 김 원장이 15대와 16대 총선에서 내리 승리한 곳이다.
다만 당내 역학 관계에 따라 영등포갑이나 타 지역에 도전장을 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재 영등포 갑·을 지역구는 민주당 김영주·신경민 의원이다.
최근 여의도 안팎에선 김 원장이 영등포 지역 행사에 자주 보인다는 말도 들린다. 여권 한 관계자는 “2002년 대선 이후 풍운아 생활을 한 김 원장이 차기 총선을 발판으로 정치 재기를 하고 싶을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대(82학번) 총학생회장 출신인 김 원장은 1990년대 중후반, 여의도 ‘세대교체론의 아이콘’이었다.
김 원장은 15대인 1996년 4·11 총선에서 새정치국민회의 소속으로 출마, 48.9%의 득표율로 원내에 진입했다. 1964년생인 김 원장은 30대 초반에 불과했다. 그의 맞상대는 최불암으로 더 잘 알려진 최영한 전 신한국당 의원(득표율 32.5%)이었다.
김 원장은 이듬해 한보그룹 청문회 당시 뛰어난 언변으로 일약 ‘전국구 스타덤’에 올랐다. 16대인 2000년 4·13 총선에서 김 원장은 득표율 60.4%로 재선에 성공, ‘차세대 정치 리더’로 급부상했다.
그러나 이후 김 원장의 정치 인생은 순탄치 않았다. 200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전날 광주 한복판에서 벌어진 이른바 ‘새천년 NHK 사건’은 김 원장뿐 아니라 86그룹 전체의 도덕성에 상처를 냈다. 같은 해 12월 여권에서 터진 ‘권노갑 2선 후퇴’ 등 쇄신 파동 당시 김 원장은 당 주류 편에 서면서 개혁성에도 흠집이 났다.
이후 김 원장은 30대 후반의 나이로 여권 서울시장 후보로 나섰지만, 이명박(MB) 전 대통령에게 패했다. 같은 해 치른 대선 과정에선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 지지를 선언, 민주개혁진영으로부터 배신자로 낙인찍혔다.
운동권 출신의 진보진영 관계자는 “운동권 그룹 내부에 김 원장에 대한 비토 기류가 여전히 강하다”라며 “차기 총선에서 재기할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윤지상 언론인